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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Feb 15. 2024

뭐~어? 주식 투자가 망해서 오히려 좋아?

아니, 딱히 정신이 나간 건 아니고요...



수많은 인생의 오점 중에 대놓고 세상에 내놓은 중대한 발자취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주식 투자 실패담.


묻지마 투자, 레버리지 몰빵, 근거 없는 물타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인지 오류와 심리적 함정에 스스로를 빠뜨리곤, 수천만 원이 날아간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글을 썼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반성과 다짐이자, 나와 같은 길을 자신도 모르게 걷고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위한다는 대의(?)의 발로였다.


관심을 가져준 출판사가 있었고 책까지 나와 버렸다. 뜻하지 않은 실패로 얻은 뜻하지 않은 성과였다. 그리고 나는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는, 그러고 싶어도 써놓은 글이 있어 그러지 못하는 투자자가 되었다. 다행히 염치는 있어 제가 쓴 글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를 단속하는 형국이다. 


첫 책이 대박나지 않은 덕분에 글로써 인생을 단번에 바꿔버리겠다는 실로 가당찮은 욕심도 접었다. 그러고 보면 투자에서든 글쓰기에서든 겸손을 배운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해야겠다. 덕분에 근거 없는 자만심과 과한 기대를 걷어 내고 느긋하고 꾸준하게 투자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실패의 연속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좋다는 믿음을 마음 한편에 쌓아 올리는 것은 그게 조금 더 잘 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아!


지나치게 사후 편향적이면서도 지극히 나 좋을 대로의 해석.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후회를 줄이고 희망을 더하는 데는 실로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잃었던 투자금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잠자고 있는 책에 날개가 돋쳐 잘 팔릴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든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떨어지는 고개를 들어 기회를 살핀다. 큰 불을 피우기 위해 자칫하면 꺼져버릴 자그마한 불씨를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게 극도의 자기 합리화가 필요한 고된 정신노동일 때가 많다. 하지만 당장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말을 툭 던져 놓고 나면, 신기하게도 오히려 좋아진 것들이 보이곤 한다. 


며칠 전, 눈 떠보니 지각이라 자책을 하다가도 오히려 잘 됐다며 반차를 써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덕분이다. 


"에잇, 몰라! 좀 더 자지 뭐... 많이 피곤했는데, 오히려 잘 됐네."


뜻하지 않은 오전 반차를 사용하고 여유로워지는 이런 상황은, 삶이 그렇게까지 팍팍하지만은 않다는 반증이 되곤 한다. 


비록 처치하지 못한 일은 여전히 나와의 일전을 기다릴 것이고 나는 별 수 없이 월급이라는 중력에 끌려 회사를 향할 테지만, 오히려 좋다. 일과 싸워서 져도 일당은 쌓이고 잠시의 틈만 있으면 나태해지는 나에게는 규칙적인 생활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많은 도움이 되니까. 


아이가 넷이라서, 외벌이라서, 왼쪽 어깨와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걱정이지만 오히려 좋다. 여섯 식구이기에 명절 고속도로 대란에도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고, 경제적으론 걱정이 많지만 아내 덕분에 아이들 케어에 있어선 큰 걱정이 없다. 뻣뻣한 어깨와 연약한 무릎 덕분에 계단 오르기와 스트레칭이 습관이 된 것은 긴 시간을 내다 봤을 땐 분명 좋은 변화다. 찾고자 하면 전화위복은 멀지 않다.


바꿀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을 접하며 크고 작은 좋은 점을 찾는 것은 어떻게든 풀어 내야할 뭉친 실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과 같다. 인생이 복잡 미묘하게 뭉쳐버린 실타래라면 꼭 필요한 엉뚱함인 동시에 여유인 셈이다.


"세상사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과 함께 믿어도 손해 볼 것 없는 "오히려 좋다."는 말. 절망적이고 막막하기만 상황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작은 실마리를 만들어 내는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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