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그 이전, 투표 그 이후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2020년 혁신 학교 5년 차인 학교에 발령을 받아 코로나19라는 모두가 처음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동료 선생님들과 진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첫 1년을 보냈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 방학 전 교육과정 워크숍 주간이었다. 이 주간에는 1년 간의 교육과정을 돌아보고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의 3 주체의 한 해의 교육과정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한 해도 교육 과정을 협의하게 된다. 2020년 교육과정 워크숍에서는 2021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코로나 19의 상황에서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에 대한 주요 논의 주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학생 자치’ 운영방식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안되었다. 학급 임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리더십 동아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동아리를 운영을 맡아줄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고 동아리 활동으로는 리더십 교육이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 할 수 있는 캠페인 활동 등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내가 이 학교에 와서 가장 새롭다고 생각된 것은 이 학교에는 전교 어린이회가 없다는 점이었다. 2020년 학생과 학부모 설문조사 결과, 이번에도 전교 어린이회를 구성하지 않고 학급 단위로만 임원을 선정하여 운영하는 것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학년 단위의 주제 수업과 자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좀 더 존중하고 다양성을 살리기를 원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이었다. 또한 전교 어린이 회장 부회장을 뽑지 않으니 각 학년 임원이 돌아가면서 대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으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코로나 19 이전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자율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이 학교의 특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자율동아리 운영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코로나 19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1년에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자율 동아리를 운영하기 어려움이 있으니 학급 내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부서를 만들어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우리 학교가 혁신 학교 졸업 해인 6년 차에 이르렀으니 전교어린이회가 없다면 이를 대체할 우리 학교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모으면서도 살릴 수 있는 학생 모임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4, 5, 6학년 학급 임원들을 대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리더십 교육과 캠페인 활동 등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최종 결정을 모으게 된 것이다.
4,5, 6학년 학급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과 캠페인 활동,
바로 이 새로 시작되는 학생자치업무가 2021년 내 업무가 되었다.
이 업무를 맡기 전 나는 혁신학교에서 보내는 첫 1년 동안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주인공이 되어’라는 초점을 바탕으로 5학년 교육과정을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해 보는 한 해를 보냈다. 이때 ‘나는 내 마음의 주인 - 나는 내 몸의 주인 -나는 내 삶의 주인 - 나는 내 꿈의 주인 - 역사 속 주인공 - 나, 너, 우리의 마음 다시 봄’이라는 6개 주제의 흐름을 연결하여 주제 수업을 디자인하고 실현했다. 이 중 ‘나는 내 삶의 주인(소중한 인권)’이라는 도덕과 사회 중심의 통합수업을 구상할 때 어린이의 인권에 큰 영향을 미친 소파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수업 자료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방정환 선생님의 호 ‘소파’의 의미를 그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소파(小波) : 어린이의 가슴에 작은 물결이 되겠다는 의미에서 소파
코로나 19라는 시점에 학교가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시점에 ‘어린이의 가슴에 작은 물결이 되는 삶’을 살아가신 방정환 선생님의 생은 내게 유난히 큰 울림을 주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 동시, 퀴즈 놀이를 담은 최초의 아동 잡지를 만들고, 그 당시 배움은커녕 농사일을 도우며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일제 강점기의 아이들을 대등한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며 잡지 표지를 어린이라고 정함으로써 그 당시 ‘애 녀석, 어린애, 아해 놈’ 등의 표현이 만연 하던 시절, 늙은이, 젊은이와 평등한 호칭인 ‘어린+이’를 일반화시키는데 크게 기 여한 방정환 선생님.
‘내 아들놈, ’‘내 딸년’하고 자기 물건 같이 알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생겨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온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방정환-
방정환 선생님의 삶과 ‘소파’의 의미를 어린이에게 소개하던 그날, 내 가슴에도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어린이의 가슴에도 작은 물결이 되는 것, 아, 이것이 교사로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구나. 그 맘 때쯤 방정환재단 누리집에서 ‘다 어린이 더 어린이’라는 슬로건이나 작은 물결 문화 운동 등을 보았는데, 학생 자치를 맡게 되자 그때 보았던 로고와 슬로건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리고 학생 자치라는 업 무가 정해지고 난 겨울 방학, 나는 리더십 동아리의 이름을 정했다.
어린이가 어린이의 가슴에 작은 물결이 된다.
방정환 선생님의 뜻을 이어 어린이의 인권이 꽃피워지는데 학생 대표들의 모임이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린이 물결단의 로고는 방정환 재단의 로고를 변형하여 만들었는데, 나 자신을 소 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자기 사랑의 의미와 어린이의 밝고 긍정적인 생각의 빛을 담을 수 있는 색인 ‘노란색’을 넣어 노란 모자로 결정했고, 어린이가 어린이의 마음을 공감하는 관계가 되길 바라면서 새싹을 하트 모양으로 바꾸어 디자인 하였 다. 이 로고와 이미지를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굿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어린이 물결단 활동을 하면서 어린이의 마음에 공감했던 기록이나 활동 일정, 회의 내용, 아이디어 등을 기록하는데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수첩을 제작하게 되었다. 기록하는 리더가 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뒷면에는 자신 만의 표정을 그려 넣을 수도 있게 하였다.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작은 물결이 된다.
어린이가 학교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학교 생활을 누리도록
어린이의 삶에 열심히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