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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해문방구 Feb 19. 2022

어린이 민주주의 길 위에선 차근차근이란 속도로.

투표 그 이전과 투표 그 이후의 이야기

어린이 민주주의 길 위에선 차근차근이란 속도로


어린이 물결단은 2021년 처음 시작되는 활동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열려있는 상태였다. 이 업무를 올해 맡게 되었을 때 내가 세운 속도는 ‘차근차근’이다.


혁신 학교 6년 차, 4,5, 6학년 학생 대표들의 모임, 학생 자치는 어린이 민주주의의 꽃 이어야 한다.


이런 숫자적 압력과 학생 자치로 쏠려있는 무게감이 주변에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도 평가와 실적에 대한 내적 부담감이 내 자체적으로 스멀스멀 뿌옇게 연기를 만들어 생각을 탁하게 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맑게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차근차근’이란 주문으로.


어린이 물결단은 투표 그 이후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기 전 투표 그 이 전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투표 전에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을 회장으로 뽑고 싶나요? 
학급 임원(회장, 부회장)이 가졌으면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 나온 우리 반의 대답은 책임, 공감, 소통, 신뢰, 그리고 감사! 였다. 일단 아이들이 회장, 부회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가치가 책임감이었다.


✔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 선거 공약을 지켜야 한다.
✔ 학급의 규칙과 배움에 대해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가치는 ‘공감’이다. 소통도 공감과 연결되는데 내 마음에 공감을 잘해주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 소통을 잘하는 친구가 회장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투표는 인기투표예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실제로 공감과 소통력이 뛰어나 많은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고 있는 어린이가 학급 임원으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 그 ‘인기’가 참된 인기라면 공감의 리더를 둔 학급은 한 해 동안 정서적으로 훨씬 조화로울 것이다. 나중에 나왔지만 인상적이었던 가치는 ‘감사’였다. 내가 뽑히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뽑힌 이유는 투표해 준 친구들 의 한 표, 한 표 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여겨주는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감사’는 겸손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때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학급 임원선거 후에 각 학년별 리더십 교육에서 ‘감사와 공감’이라는 두 가치를 중심으로 리더십 교육을 하게 되었다. 나는 리더십 교육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린이다운 사고가 마음껏 펼쳐지는 것에 있어서 ‘책임’이라는 가치는 날개보다 제한이 될 것 같았기 때문 이 다. 어린이는 이미 자신의 생활에 모든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방과 후 활동이 짜여 있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학원을 다니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학원 일정을 선택한 것은 어린이는 아니다. 이미 어린이의 시간의 대부분은 학교 수업과 부모의 교육방향에 따른 선택으로 결정된다. 이것은 5학년 어린이가 국어에서 시바 꾸어 쓰기를 한 내용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학원
                       최**

학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영원히 안 다닐 줄 알았지만
내가 다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학만 다니는 줄 알았지만 영어도 다니는 거였다.
영어를 3일만 다니는 줄 알았지만 5일을 다니는 것이었다.
영어쌤한테 엄마의 전화번호를 준 것이 후회된다.

(*교과서에 출렁출렁이란 시를 읽고 시 바꾸어 쓰기를 하는데
   한 어린이가 ‘학원’이라는 소재로 시를 바꾸어 썼다.)


충분히 쉬고 놀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어린이를 위한 마음을 낼 시간이 있는지 다른 어린이의 삶에 기여할 여유가 있을지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책임’이라는 말이 또 다른 ‘책임 회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내가 너에게 회장을 맡겼어. 그러니 너는 모범을 보이고 책임을 다해.
회장이라면 우리 반 규칙을 가장 잘 지켜야 해.’라는 잘못된 또래 압력,
‘회장 이라면서 책임감도 없이.’라는 말로부터 해방되게 해주고 싶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의 생각과 힘을 함께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런데 굳이 어린이 임원에게 책임의 무게를 더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책임은 강요에서 생기지 않는다. 과정 속에서 자발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 물결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자 했던 가치, 공감

어린이 물결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자 했던 가치는 ‘공감’이다. 어린이의 가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것에 핵심은 공감에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아픔과 어려움에 함께 느끼고 어린이의 기쁨과 행복에 공감하는 것. 나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 사람의 입장, 처지를 이해할 때 그 사람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공감이다.


어린이가 어린이에게 하는 공감이 어른이 어린이에게 하는 공감과 다른 점은 ‘동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감은 같은 상황과 처지에 있어 비슷하거나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에게 ‘공감’을 너머 ‘동감’까지도 할 수 있다. 나와 다른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고 ‘나도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어. 내 마음 하 고 똑같다!’라는 동감 까지도 가능하다. 그리고 ‘동감’을 너머 다시 ‘공감’하기도 가능하다. ‘동감’을 자세히 하다 보면 그 안에 다양하게 다른 감정들까지 섬세하게 ‘공감’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공감은 정서적으로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다. 


괴롭힘의 원이 보살핌의 원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핵심 가치

평화샘 프로젝트에서는 방관자가 방어자가 되는 것이 괴롭힘의 원이 보살핌의 원으로 바뀌는 핵심으로 보고 있다. 방관은 상황을 외면하거나 ‘나만 아니면 돼.’ 하는 생각으로 관심이 없는 상태라면 소극적 방어자는 피해자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지만 아무 행동도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방어자(적극적 방어자)는 피해자를 돕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다. 방관자가 소극적 방어자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어려움에 공감하게 되면 차마 방관자에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소극적 방어자가 적극적 방어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행동하는 용기이다. 그러나 그 용기를 혼자 낼 수 없다면 적극적 방어자와 소극적 방어자가 함께 협력하여 서로의 용기를 북돋울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용기 이전에 ‘공감’이 먼저다. 방관자에서 소극적 방어자로 나아가기만 해도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어자의 자리로 나아가는 어린이가 많아질수록 어린이가 어린이의 인권을 지키고 보호하는 안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어린이 물결단 리더십 교육에서는 첫째도 공감, 둘째도 공감, 셋째도 공감 

 

그래서 어린이 물결단 리더십 교육에서는 첫째도 공감, 둘째도 공감, 셋째도 공감을 강조한다.


“열공하라(열심히 공감하라!)”

“열심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래!”

수첩에 적힌 어린이 물결단 슬로건을 읽으며 어린이가 웃는다.




열공의 재정의, 열심히 공감하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감하라.


2021년 1학기 1 /3등교가 되면서 4,5,6학년이 함께 등교하는 날과 함께 모일 시간을 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에 딱 한번 3학년이 등교하지 않는 날, 4,5,6학년이 모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짜는 매주 달라서 모임 시간과 날짜를 잊지 않게 안내하는 것이 필요했다. 일단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찾아 모이는 것.’ 그것이 어린이 물결단의 첫 과제였다.


그렇게 모이고 보니 그저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 즐거워하는 4학년과 달리 5학년과 6학년은 학급 대표들의 모임에서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물었다.


“회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부회장에 뽑혔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기뻤어요”, “고마웠어요.”
“그 고마운 마음을 기억해 주세요. 매일 크고 작게 우리는 친구들에게서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그 고마운 마음을 잘 기억하고 새로 발견하고 간직하세요. 그 ‘감사’하는 마음이 여러분이 학급 임원으로 활동할 때 에너지가 되어 줄 거예요.”


공감’이 리더십의 핵심 초점이자 방향이라면 ‘감사’는 동력이고 에너지다. 어린이 리더는 어디에서 힘을 얻으면 좋을까? 어린이 리더는 어린이들에게서 힘을 얻었으면 했다. 그래서 학급 임원에 당선되었을 때 느꼈던 고마운 마음에서 시작해서 오늘 하 루 친구들에게 느낀 고마움들을 발견해서 기록해 보게 하였다. 이렇게 친구들에게서 고마운 점 발견하기를 해보면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받는 긍정적인 영향이 무 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감사하기’는 이렇게 한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내가 받은 도움과 공감 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쌓이면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나도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감사에서 나눔으로 이어지는 것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자존심에서 힘을 얻는 리더가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감사에서 힘을 얻는 리더는 할 수 있다.


 ‘나 역시 다른 친구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을 품는 것. 


어린이 물결단에서 기르고자 하는 리더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마음의 힘을 키워가는 리더다. 한 어린이에게서 다음 어린이로 이어지는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힘의 연결. 리더는 도움을 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 니다. 리더도 도움을 받는다. 아니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린이 물결단에서 활동하는 어린이들이 무엇보다 자기가 받은 도움에 감사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감사함을 다른 어린이에게 이어주는 연결의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어린이 물결단 리더십 교육의 마지막 활동은 회장, 부회장 사이의 공감 대화 연습이다. 같은 반 회장과 부회장, 둘씩 짝을 이루어 공감 대화를 연습해 볼 수 있도록 한다. 공감대화의 시작은 마음을 생각과 느낌으로 나누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나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을 하며 대화를 연결한다. 그리 고 나서 다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구조로 진행된다.


“어린이 물결단을 처음 하니까(생각) 설렙니다.(느낌)” 
“설레는 그 마음 공감하고요.(공감)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생각) 기대됩니다.(느낌)”
“공감 대화를 처음 연습하니 (생각) 신기합니다.(느낌)”
“신기한 마음 공감되고요.(공감) 그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 고민됩니다.(느낌)”

이와 같이 느낌을 표현하고 공감하는 대화 연습이 몇 차례 오가면 점차 긴장감이 풀리고 진솔한 공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언제나, 역시나 공감은 모두 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제, 친구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기쁨에 공감해보세요.
그리고 어린이가 어린 이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아 오세요.
행사가 될 수도 있고 캠페인이 될 수 있어요. 어떤 활동이어도 좋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도 괜찮아요.
 친구들의 마음에 공감하다 보면
어떤 경험을 기획해보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생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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