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역 중,
유독 피하고 싶은 곳이 있으니 상계동 당고개 마을과 중계동 한켠의 '104 마을'이다.
두 곳 모두 산동네.
그중 중계동 104번지로 시작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백사마을,
불암산 기슭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과는 10광년 정도 동떨어진 동네 같아서 주문이 들어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
마을 중심부에는 쌈지마당이라는 쉼터가 있고
그 위에는 연탄가게인지 창고인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집집마다 연통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한때 따뜻함을 전해주던 연탄이 이제는 재가 되어 담벼락 옆에 쌓인 채
눈이 오면 온몸을 던져 미끄럼과 싸울 채비를 하고 있다.
오래된 유치원의 종탑은 녹슬었고 '빈 집'임을 알리는 낙서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벽화가 이곳까지 따라왔다.
추래함을 가리기 위해 짙게, 두텁게 덧바른 화장 같아 불편하다.
가난 또한 감추려 할수록 어느새 스멀스멀 기어 나와 얼룩져 번진다.
백사마을 초입을 뱀꼬리라 치면, 가끔 배달을 시키는 집이 위치한 곳은 뱀 대가리 조금 못 미친 뱀 모가지 언저리.
차가 밀릴까 사이드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당기고, 기어를 1단에 넣어놓고, 그것도 모자라 바퀴 뒤에 돌멩이까지 괴어 놓아야 안심.
담배가게 골목을 들어가면 '개조심'이라는 푯말에 걸맞게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고..
고객은 매번 문 앞에 두고 가라며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외출을 나서려던 그 고객과 마주쳤다.
의례히 문 앞에 둘 요량으로 봉투에 담아 골목 끝 막다른, 그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며 여자분이 나왔다.
'이 고객이구만, 우리를 욕 맥이는..' 하는데 봉투를 받아 들며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건넨다.
'이곳까지 배달을 시켜서 죄송합니다'라는 표정으로.
아마 마주치기 미안하니 매번 문 앞에 두라고 했었나 보다.
추래한 속살림을 내보이기도 싫었을 것.
개도 크고 사나웠고.
차라도 있다면 모를까 마을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까지 장바구니를 들고 온다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겠다.
부암동 같은 서울시내의 달동네는 추억팔이의 최전선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도시화를 피해 산으로 피신한 멸종위기의 흰 뱀처럼,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 백사마을의 삶은 현재 진행형.
아파트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구역의 중심부를 정신없이 달리다가 이곳에 오면
잠시 속도를 늦추게 된다.
가난한 이들로부터 상대적인 위로를 찾을 때의 나는 정말이지... 사악하다, 사악해.
좁고 기다란 골목길에 눈이라도 쌓인다면
거대한 하얀 뱀의 등 비늘을 밟고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가야지..' 하다가도 막상 뱀꼬리를 밟으면
쓸데없는 도전정신이 솟구쳐 기어이 차를 몰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비지땀을 흘린 적이 몇 번 있다.
올겨울, 눈이 오더라도 백사마을만은 제발 피해서 와주기를..
뭐 주문이 들어오면 당연히 가겠지만.. 눈길만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