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저녁 시간에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에 들리곤 한다. 6시가 지나면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과 적당한 소음에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충분히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조용한 음악을 틀어 놓으면 얼추 카페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만 이상하게 답답하고 무료하다. 카페에 들어서면 포근한 온도와 분위기 있는 조명, 적당한 소음이 눈과 귀에 들어오는데 그 낯설지 않은 안정감이 더 좋다.
밤의 카페는 고요히 손님을 맞이한다. 하나 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나갈 채비를 할 동안 나는 반대로
낮에는 앉을 수 없던 탐이 나는 자리에 앉아 짐을 푼다. 이제 곧 여러 테이블에서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갈 것이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아 들고 노트북 옆에 놓는다. 바로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로 들어가 로그인을 하지만 거기까지만 하고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든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가운 걸 시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지만 적당히 커피가 식고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 보면 어느새 내 몸도 따뜻한 온기가 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고집했는데, 이젠 몸이 찬 것이 싫어 따뜻 한 음료를 마신다. 작년과 달리 또 변한 게 있다면 아이스크림이 입에 너무 달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31 아이스크림이나 하겐다즈 등의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 먹었는데 얼마 전 편의점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1+1 이벤트를 하길래 웬 떡이냐 싶어 맛있을 것 같은 맛을 두 가지 골라 담았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만 아이스크림은 못 참지 라는 마음으로 한 입 먹었는데 너무 달아서 그만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원래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31 아이스크림 파인트 사이즈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단 맛이 강하게 느껴질 줄이야.
그러고 보니 다이어트를 작년 11월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올 1월까지 아이스크림은 아예 먹지 않았다. 몇 달 만에 먹어 그런 것일까. 한데 아이스크림 말고도 나는 원래 단 것을 참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메리카노의 쓴 맛이 싫어 시럽을 꼭 넣어먹었고 라테 종류도 무조건 바닐라 라테만 먹었는데 어느새부턴가 바닐라 라테도 입에서 너무 단 맛이 돌아 찾지 않게 되었다. 아메리카노에 넣어 먹던 시럽도 본연의 맛을 헤치는 것 같아 이젠 넣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참 많은 것들이 변하는데 식성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점점 자극적인 맛보다 덜 자극적인 맛이 속도 편해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저녁도 이제 밥보다 샐러드나 닭가슴살, 고구마 위주로 먹는 게 버릇이 되었다. 어릴 땐 엄마가 육식보다 생선이나 나물 반찬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새었는데 다시 카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저녁의 카페엔 혼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 또 한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해 있기에 그 안에 포함된 나도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할 일에 몰두해본다. 그래 봤자 과제나 작업을 하는 것처럼 거창한 것을 하는 건 아니고 구직을 위해 구인 사이트를 뒤적거리거나 메일 정리를 하거나 브런치에 글 몇 줄이라도 쓰고 가야지 하며 끄적거리는 게 다지만 백수는 외출만 해도 성공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실 카페를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한 번 누우면 일어나기 싫어 그대로 집순이가 되는 날도 있는데 무기력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일단 행동하는 것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금세 잊고 막상 집 밖을 나가려니 졸리고 피곤해 나가려고 일어섰다 가기 싫어 다시 앉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일단 나가자 싶어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쐬니 정신이 번쩍 들고 오고 가며 지나치는 사람들 틈에 있으니 나도 활동하는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도 뜨문뜨문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다 다시 글 쓰는 것에 집중해 본다.
어떤 소재를 써 볼까, 일본 작가 하루키는 에세이로 쓸 소재거리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하였는데 한 시간은 핸드폰을 보다 멍하니 창 밖을 보다 고민하면서 소재가 별거 있나 지금 내가 카페 온 이유를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오직 음악 소리만이 귀에 울려 퍼지면 마음이 평온하고 차분해지는 게 힐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다.
한창 힐링이 유행 일 때 힐링을 하기 위해 호텔에서 1박을 하기도 했고, 여행을 가기도 했고, 비싼 음식점에서 맛있는 것을 먹기도 했는데 커피 한 잔의 여유에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보면 힐링이란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호텔에서 1박을 하면서 체크인-체크아웃하는 시간이 짧아 2박은 해야 호캉스라고 할 만큼 휴식이 되겠구나 싶었고, 밤에 홀짝 맥주를 마시며 호텔 방에서 보던 야경은 잔상에 남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홀로 보는 야경은 외로움도 컸다. 제주도로 훌쩍 여행 가서 본 바다도 예쁜 풍경도 밤이 되면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힐링이 필요했지만 날이 밝고 떠날 때가 되면 허탈함만 남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호캉스도 여행도 그 순간은 생각을 정리하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했던 행동은 맞으나 돈과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할수록 힐링이 된다고 착각을 한 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마 여름이 되면 저녁이 되어도 카페엔 사람들로 북적북적할 것이다. 늘 여름엔 마감까지 수다 떠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난 이 여유를 즐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