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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을 묻어놓는 것입니다










사랑했습니다




내게 말을 거는 이들마다 슬픔이 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움의 물살이 너무 깊어 

차라리 입을 다물었습니다

죽도록 사랑했노라는 고백을 들으면 차마 부끄러워

말을 못합니다

어디에 있어도 그립다는 그 말을 듣고서

울어주었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리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고백하지 못하는 건

깊어진 그리움 탓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폭하고 싶은 날에는 잠만 잤다고 

말을 합니다

눈 뜨면 죽을 것만 같아 더욱 그립다고 했습니다

잿빛 하늘에 눈을 맞추며 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언제 다시 길을 떠난 사랑이 찾아 돌아올까요

자꾸만 그립습니다.










지극한, 그리고 또 지독한




사랑이 아프다고 말하지 마라

네가 아프면 그대도 아픈 법이다

바람이 자식들을 거느리고서 강가에 섰다고 치자

어느 바람인들 속으로 아프지 않겠느냐

갈대숲으로 숨은 뒤로 강물 소리만 듣고 사는 바람에게도

아픔이 있는 법이다

그대를 기다리다가 막차가 떠나고 나면

허전하여라

돌아서는 등 너머로 노을이 찾아왔다

집집마다 불을 켜기 시작하는 창문에선

늘 쓸쓸함이 묻어 나왔다

빈 골목 안으로 들어서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이

돌아눕는다 

한 뼘씩 깊어지는 슬픔의 터널 같은 것

그 속으로 들어가 내가 살던 집의 대문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제 들어가면 다신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움을 안고 사는 동안 바깥 세상에서는 집들이 올라가고

덤프 트럭이 들어와서 세멘트를 쏟아부었다

철근 콘크리트 밑에 꽁꽁 갇혀버린 사람의 온기들은 이제

이 골목을 떠났으리라

하나 둘, 떠나는 것들만 골목 안에 수북히 쌓이고

새벽마다 청소차가 와서 그들을 싣고 갔다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골목 안에는

이제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떠나는 것들은 이제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신도림역 광장에서





떠난 사람이 돌아오려면 아직은 멀었다

1호선 전철에서 나온 이들과 2호선에서 나온 이들이 서로 만나

천변을 끼고 걷는 동안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득하게 서 있는 아파트들이 점점 침몰해 가고

가로등 불빛마저 눈 속에 파묻히면서 도시는 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소란스러웠던 일상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빈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포장마차로 들어서는 사내는

낡은 알전구 밑에 앉아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

술잔에 스미는 고독도 어쩌면

혼자인 탓일 게야

사랑이 떠난 뒤로 늘 혼자였던 이들은 눈 내리는 잿빛 하늘이

싫었다

소줏잔을 들여다보며 잊혀져 간 여인을 생각하며

목마름으로 술잔을 털어넣지만

안에서 이는 고독의 그늘을 지워낼 수 없었다

벤취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은

전철이 끊어진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듯하다

한 번 떠난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삶이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어디에도 없는 그대

뻥 뚫린 역사 입구 계단에도 눈발이 스며들고

있었다.












봄날은 간다




훠어이

꽃잎이 지던 밤에 떠난 사람

긴 그림자 이끌고 어디로 가나

굽이굽이 눈물 자국이 어지러운데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날 사람아

부디 뒤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바람 속에 얼굴 묻으며 추억일랑 잊어다오

뜨겁던 사랑을 얻고자 했던 지난 날의 그 애틋함도

이젠 안녕

이 밤 지새고 나면 꽃잎도 지리라

달빛 기우는 밤에 배 띄우는 사랑아

고독한 섬으로 가서 닻을 내리면 다신 뭍으로 나오지 않으리라

문을 닫아걸며 촛불에 불을 당기면

화르르 피어나는 몹쓸 사랑도 이젠 안녕

바람에게도 안녕

물살에게도 손 흔들며

모두 다 안녕

남몰래 봄날이 가네

꽃잎이 지네

그대 떠나는 날이네. 











철새는 날아가고





이 도시에서 사는 일이란

하루치의 바람을 마시고 또 하룻동안 걷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마다 고독에 빠져 있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쓴 커피를 마시며 들어주는 일

떠나는 그대가 창문 밖에서 서성이는 데도

새들처럼 그렇게 떠나가나 보다

북극으로 날아가는 새떼들에게 미안했다

검은 눈동자 속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보이지 말아야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빈 하늘에 혼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네

저 달이 질 때쯤이면 그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버렸을까

모두 떠난 골목 안에는 가로등만 켜져 있네

찔레꽃 같던 순정도 이젠 버려야할 때

꽃잎에 숨던 바람도 이젠 떠나야 할 때

멀리 기차 소리 철교 위를 굴러가는데

그대 어디쯤 가고 있느냐

산모롱이 돌 적에 외로운 기적소리 들려오네

붙잡을 수 없는 이 그리움으로

혼자 달빛에 젖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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