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행복
오늘 나를 잔잔하게 해 주고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명상은 법륜스님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
잘못을 해도 과보는 금방 드러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잘못은 피할 수 없고 좋은 일은 공덕이 담겨 드러난다.
삶의 모습은 분명 쌓여간다. 삶은 빚으로 남거나 공덕으로 쌓이거나. 나는 매일 옳은 것 같으나 나의 과오는 오랜 시간 쌓여 오늘의 나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를 더욱 쌓아가는 것이다.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매일 몇 번이나 후회하고 반성하고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고 그러다가 언뜻 좋은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퇴근길에는 그날 있었던 나의 과오 혹은 그날 수고한 나의 공덕을 그대로 느끼며 돌아온다.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여운이 머릿속을 맴돌아 작은 자기장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매일 나아지기를 애쓰며 그러지 못한 안타까움은 명상을 통해서 잠재운다.
약간의 내리막을 만나면 편안하게 앉아서 페달을 멈춘다. “다르르르~”하는 뒷바퀴 카세트(기어 부분)의 베어링 소리가 메트로놈과 같이 들린다.
주변의 풍경을 충분히 지켜보면서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피해서 직선구간이 나오면 또다시 마음은 또르르르 소라와 함께 안정된다.
바람이 얼굴을 지나가며 흘러내린 땀을 말린다. 등 뒤로 흘러내린 땀방울도 와류로 인해 돌아가는 바람으로 티셔츠의 끝을 펄럭거리며 셔츠 안으로도 바람을 불어준다.
“오늘은 참 명상하기 좋은 날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에 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벌써 지나온 길이 있어 이제 집에 가려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수 없이 많은 비유를 하지만 결국 해석은 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같은 상황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것.
탈무드의 내용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랍비를 찾아가 아내와의 삶이 너무나 지옥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랍비는 이후에 집안에다가 양, 닭 등과 같은 동물들을 키우라는 것과 같은 조언은 한다.
아내와의 관계도 힘든데 관리 안 되는 동물까지 그리고 매일 더해만 가는 문젯거리를 랍비에게 답을 구할 때마다 더 심한 상황을 만드는 답만 준다.
며칠이 지나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랍비는 모든 동물들을 집 밖으로 쫓아내고 아내와 함께 있으라 라는 조언을 한다.
이후 그의 삶은 예상한 바와 같이 더없이 만족스럽게 된다. 즉 같은 상황도 어떤 게 보느냐가 삶의 질을 다르게 한다.
내가 하는 고민들 나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관점에 달려 있다.
물론 “내 탓이오”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현실의 삶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많이 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나의 시점을 다르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는 분명 포기 아닌 놓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일은 또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마음은 아니 최소한 나의 마음은 한번 스위치를 켜는 것과 같이 무언가 깨달음이 왔다고 해서 바로 삶의 개선이 되지는 않는다.
매일 먹는 밥과 같이 지진한 나로 돌아가는 것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삶은 나아지기를 바라는 순간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 오늘의 편안함을 벗어나는 것과 같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개선이 있다.
결국 더 많은 재화의 획득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는 삶의 선택이 실패와 성공으로 나누어질 수 있지만 삶의 개선은 그것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은 것이고 나의 가치도 당연히 하나의 기준으로는 볼 수 없다.
물론 현실은 돈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명상이 필요하다.
나를 나로 보존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