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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Oct 06. 2019

거대한 숫염소

프란치스코 고야 Francisco Goya

   



 마치, 여름 물렀거라, 나으리 행차라도 하듯이 어느 날 아침 문득 가을 왕림하셨다. 무량한 잔서들 속에서 서늘한 기운 살짝 스미어 들며 부드러운 연착륙을 하더니 올해 가을은 좀 유별나다.

<I, Goya> 책을 빌려 들고 도서관을 나섰는데 세상에, 느티나무 우듬지 초록들이 연하게 노란빛을 품고 있다. 어느새 다른 계절 속으로 성큼 들어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계절은 짧아지고 또 다른 시간들 역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간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를 그린 프랜치스코 고야의 그림은 참혹할 정도로 잔인하고 포악한 그림이지만 기실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 당연히 사람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속절없이 다가오고 사라져 가는 시간. 크로노스에 대한 생각을 가을에는 해야만 한다. 시선을 살짝 달리해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궁구 하다 보면 지나가버린 세월과 다가올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먼지와 같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즈음 수많은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책들이 자신감 고취를 위해 준거를 논하며 죽음은 결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존재처럼 여겨버리나 사실은 잘살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미묘한 존재로 실체가 없으나 그림자 없는 실체도 없다. 죽음은 도적처럼, 언제 어느 때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자주 다짐한다. 

 고야의 그림은 삶의 그늘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을 벗어나 있고 슬픔과 고통뿐 아니라 사람의 악덕과 어리석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니 가을이 가기 전 한번 깊이 음미해볼 만한 작품이다. 

  어느 작가는 스페인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고야를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야가 없는 스페인은 스페인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고야는 실제로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화가 중의 한 명이다. 궁정화가가 되기 위해 그린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전혀 고야답지 않은 그림이다. 그러나 그는 시류를 좇은 이 작품으로 궁정화가가 되었고 초상화가로 승승장구한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실제 350여 편으로 <알바 공작부인>은 섬세한 붓질과 내면이 표현된 걸작이나 지불자의 지불 능력에 따라 대충 그린 초상화도 있다고 한다. ‘고야의 유령’이라는 스페인 영화에 이 부분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초상화를 그리며 손을 넣을까 묻는 고야, 이어 한 손을 그리면 얼마 두 손을 그리면 얼마라는 말에 초상화를 의뢰한  신부는 옷 속으로 슬며시 손을 집어넣는다.

 고야는 1808년 에스파냐를 침공한 나폴레옹에게 신의와 복종을 맹세했으며 나폴레옹은 고야를 에스파냐 기사단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다시 왕정이 복귀될 때는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전쟁의 참화를 그리기도 했다. 고야는 자신의 이름에 데(de), 데는  소귀족 칭호로 외가로부터 받았는데 이를 자신의 이름에 즐겨 사용했다. 만 오천 레알을 받는 왕의 전속화가가 되었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던 고야는 스노비즘의 전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중적 인격의 소유자며 모순이 가득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그런 그에게 찾아온 청력 상실은 삶에 대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 고야는 그때부터 의뢰받지 않는 작품, 즉 자신이 그리고 싶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지금도 스페인에 가면 고야의 집으로 남아있는 <귀머거리 집>이라 불리는 집에서 살 때 그 벽에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프란치스코 고야의 <거대한 숫염소>는 바로 이 벽화 속의 한 작품이다. 통칭 <검은 그림>이라 불리는 이 작품들은 어둡고 불길하다.  자신의 집에 자신만을 위한 그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오직 그의 깊은 마음과 정신 상태를 나타낸 작품이다.  

 회화에는 그 어떤 규칙도 없다는 그의 의도는 사실 그 시절 어느 화가들도 하지 못한 앞선 사고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악한 행위, 광기 폭력을 그는 이 그림 속에 담고 있다. 잠든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는 그의 그림 제목처럼 ‘거대한 숫염소’는 광기의 현장이다.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성은 없다. 그저 무지와 몽매 혹함에 빠져 있다. 어쩌면 그들은 공포 속에 함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듣지 않으면, 따르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두려운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 앞에 앉아있는 숫염소다. 거대한 숫염소(고야는 악마의 형상으로 숫염소를 자주 사용했다)는 실루엣처럼 보이는 것을 보니 음울하고 흐릿한 빛은 그의  등위에서 비쳐올 것이다. 사람들은 숫염소.... 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에게 집중되어 있다. 염소 옆에서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듯 보이는 사람과 사람들을 감시하면서 음울한 bgm이라도 내보내고 있는 듯한 흰 베일의 여인은 탐욕의 화신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순수한 신앙과는 괴리된 미신적인 상태나 이단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현재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의 리더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사람들과 함께 끌려가고 있는, 어둠 속에서만 편안을 느끼는..... 어쩌면 고야는 사람의 심성 중에 어둡고 습한 존재들에게 매혹을 느끼는 깊은 어둠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둠은 다시 어둠을 낳고 서로 연결되며 그 세력을 확장해간다.

 그는 어둡고 억압된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귀재였다. 더불어  전쟁 속에서 인간의 삶 속에 드리워지는 냉혹함도 절절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인간의 본성은 어둡고 창백하다.  

 고야의 희망일까? 오른쪽 끝의 한 여인만이 이 그룹에서 벗어나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거대한 숫염소>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빛이 있으라!” 저절로 중얼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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