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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24. 2019

고흐〈구두〉 A pair of shoes, 1886

강변의 신발들





빈 여행 중 이틀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지냈다.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그래선지 다뉴브 강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풍경들은 어두운 회빛 속에 잠겨 잘 보이지 않았고 운무 속에서 가끔 배가 지나다녔다.

한강처럼 제법 폭이 큰 강이었는데 물길이 세찼고 그 빛은 탁했다.

독일에서 시작해 흑해로 흘러간다는,

나라마다 이름이 다른 다뉴브 강은 실제 핏빛 물이 흐르던 홀로코스트의 현장이었다.

헝가리에 살던 육십만의 유태인들이 신발을 벗고 총에 맞아 강으로 떨어져서 죽었다.

그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강변의 신발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육십만을 생각하기 위한 신발 육십 켤레에는 아이들의 신발부터 하이힐 남성들의 작업화도 있다.

영화감독 캔 토가이의 제안으로 헝가리 출신 조각가 귈라 파우가 만든 작품이다.

누군가가 이름 모르는 꽃 한 송이를 구두 위에 꽂아놓았다.

고통과 두려움, 슬픔이 빚어낸 꽃.

실제 꽃이 꽂혀 있던 노동자의 작업화는 자연스레 고흐의 <구두>를 떠오르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구두>에서 자기만의 꽃을 발견 하듯이

다뉴브 강가 <강변의 신발들>에서 피어난 꽃을 

나만의 꽃 ㅡ기억을 향한 마음과 기억한다는 마음이 빚어낸 기억의 꽃ㅡ으로 이름 지었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에서 대지의 습기와 풍요로움을 보았고

해가 떨어질 무렵 밭길을 걸어가는 외로움을 느꼈다.

대지의 소리 없는 외침과 그 진동 소리 까지 들어냈다.

그는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삶의 흔적이며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여겼다.  

하이데거에게 고흐의 <구두>는 사물의 존재를 확연히 보여주는 실례가 되었을 것이다.

미술사가들은 고흐의 구두가 농부의 구두가 아닌 도시 노동자의 것이라고 했고

어느 학자는 바로 고흐 자신이 신었던 신발이었을 거라는 편지를 하이데거에게 보내기도 했다. 

 구두를 벗는다는 일은 하루를 벗어나는 자유의 선언 같은 것, 힘든 하루 일과를 마쳤다는 표식일 것이다.

이제 나 아닌 나에서 나로 돌아가야지, 라는 방향을 전환하는 시간일수도 있다.

한쪽 구두는 꽤 풀려 있으나 다른 한쪽은 그나마도 풀기 귀찮은 듯 덜 풀려 있고

그래서 잘 벗어지지 않는 구두의  뒤쪽을 꺾어서 벗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사라졌을까. 

내일이면 다시 또 입어야 될 옷 아닌가.

그래서 그의 삶은 주인의 뜻대로 주인을 혼자 두기 위하여 말 잘 듣는 사랑스러운 개처럼

신발위에 고요히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농부의 구두일거라는 내 느낌은 저 신발이 놓인 장소 때문이다.

고흐 특유의 붓질로 나눠진 벽과 바닥의 공간은 나무로 지어진 창고 일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농가구가 여기저기 놓여있고,

버리지 못한 낡은 살림살이도 한 귀퉁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의 땀이 가득 밴 구두를 주인은 헤진 나무판 사이로

마지막 남은 해가 길게 새어 들어오는 저 자리에 놓았을 것이다.

햇살에 활짝 마르고 바싹 건조해지렴,

축축한 내 삶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을지도. 

 고단한 삶에 벗처럼 스며든 낡음,

색조차 바랜 낡은 구두끈을 표현할 때 고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대성당보다 인간의 영혼이 더욱 흥미롭다고 말했던 그는

아마 구두끈을 그리면서도 사람의 영혼을 생각했을 것 같다. 

 어쩌면 저 구두는 농부도 노동자도 아닌 광부의 신발일수도 있다.

고흐는 광산촌선교사로 일할 때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광부들처럼 소박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삶이  선교사의 품위를 헤친다는 이유로 면직 되었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할 수 없다면 그들을 그려야겠다고. 

먼지로 가득한 광부들을 그리고 싶어 했으니 광부의 구두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고흐의 나이 서른일곱, 그의 마지막 잠자리는 오베르에 있던 다락방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날마다 새로운 작품을 그렸다.

고흐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독했다.

단 한 사람 그의 영혼의 친구이자 동반자이던 동생 테오와의 관계조차 이 시기에는 소원했다.

그의 작품이 단순한 풍경이나 사물의 재현을 떠나

누구도 그리지 못한 감정의 초상화에 이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저 낡은 구두가 자리하고 있는 환함은

구두 위에 웅크리고 있는 신산한  삶에 위로를 주고 새로운 힘을 부여해주고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찾아내고

그 푸름에서 표현되기 어려운 깊이를 느꼈던 고흐,  

어떤 사람의 시선도 끌지 못할 낡은 구두를 그리는 고흐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가 성탄절 마다 찰스 디킨슨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다는 사실이 저절로 떠오른다.

스쿠루지의 시간을 따라가며

정말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내면이며, 돈이 아니라 사랑이란 것을.

거대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고흐는 저렇게 낡고 보잘 것 없는 <구두> 속에 깃든 다양한 삶의 결을 직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다뉴브 강 앞에 서면 생명의 젖줄이면서도

먼 나라에서 여행온 사람들을 거침없이 안고 흘러가버리는 무심한 강물을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강변의 신발들>을 만난다면 더 깊은 슬픔에 목이 메지 않을까, 

그 때쯤이면 고흐의 <구두>는 나에게 어떤 삶의 층위를 깨닫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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