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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0. 2020

라라랜드 집밥

2015년 9월 26일.

우리 네 식구를 포함한 10명의 가족들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최종 목적지는 애리조나 피닉스였지만 우리는 LA에서부터 차로 이동하는 여정을 택했다. LA에서 출발해 팜스프링스,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케년, 앤틸롭 케년, 세도나, 피닉스로 이어지는 서부여행은 큰고모의 칠순과 사촌동생의 결혼식 참석이 명분이었다. 친지 방문을 핑계로 친정 부모님, 동생과 조카 둘, 우리 가족 넷에 작은아버지까지 10명이 이동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먼저 차량이 문제였다. 미국에서 10인 이상의 벤을 운전하려면 한국 대형버스 운전면허가 필요하다고 했다. 차량 두대를 렌트해 움직일까 고민하던 남편은 대형버스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몇 달여 앞두고  총 5번의 낙방만에 대형버스 면허를 취득했다. 덕분에 열흘을 차 한 대로 다닐 수 있었지만 제대로 독박을 쓴 셈이었다. 싫은 내색 할 만도 한데, 언제 이 광활한 도로에서 운전해보겠냐며 온 가족을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


10명의 가족이 미국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또 다른 문제는 숙소와 식사였다. 대가족이 머무를 만한 괜찮은 숙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깨끗하면서도 넓어야 하며 이동 경로에서 멀지 않아야 했다. 게다가 예산상 매 끼니를 사 먹을 수는 없으니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딸려야 했다. 1박을 계획한 곳마다 적당한 곳들을 추려내고 가족들에게 후보지를 보여준 후 가장 선호하는 곳들로 예약했다. 여행지에서 직접 확인해 본 바 최고의 숙소들이었다. 특히 부엌 시설은 우리나라 콘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갖춘 식기와 주방 조리도구, 식기 세척기, 큼직한 오븐 덕분에 우리는 매일 밤 최고로 만족할만한 집밥을 누렸다.


하루에 한 끼는 미쿡 현지식을 사 먹었지만 아침, 저녁 식사를 위해 귀가 전 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매일 밤 프라임, 초이스 등급의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며 연신 감탄을 했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남편은 양주를 소주 마시듯 하며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즐기셨다. 로메인과 고수를 잔뜩 사서 쌈을 싸 먹었고, 날김에 밥과 명란젓을 올린 다음 장 봐온 아보카도를 얹어 고추냉이 간장 소스에 찍어먹으면 한없이 들어갔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여행 일정 속에서도 모두가 짜증 한번 안 내고 지낼 수 있었던 저녁 시간. 매일매일이 축제였다.


온 가족이 열흘간의 미국 여행 동안 건강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친정 엄마의 준비와 숨은 노고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특유의 준비성으로 엄마는 열흘 여행의 음식거리를 한국에서부터 철저히 준비하셨다. 장난 삼아 엄마를 오지랖녀라고 놀리고는 했지만 덕분에 누군가는 늘 편안하고 걱정 없이 배려를 받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즉석밥, 동결건조 즉석국, 포장김치, 단무지, 각종 젓갈과 장아찌, 쌈장, 김, 누룽지,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기본이고 장시간 이동하는 차에서 먹을 오징어, 쥐포까지...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의 완벽한 준비였다. 덕분에 어린 조카들도 배앓이 한번 없이 씩씩하게 따라다녔으며, 70이 가까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역시 입이 깔깔할 새가 없으셨다.

장 한번 볼 때마다 늘어나는 식재료 때문에 짐을 쌀 때면 아이스박스가 터질 듯했고 여행지에서 뭘 이렇게까지 챙겨 먹나 싶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미슐랭 별을 받았던 멕시칸 음식점이나 싱싱한 대게를 즉석에서 쪄주어 망치로 깨 가며 먹었던 LA 맛집보다는 밤마다 숙소에 부지런히 차려졌던 밥이 기억에 남는다.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주던 하얀 쌀밥과 소고기, 시원한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그날의 여행 일정을 함께 추억하나누던 소소한 이야기들. 깨고 싶지 않은 꿈같던 라라 랜드와 그곳에서의 집밥. 여전히 가족모임 대화의 단골 소재다. 다음 여행지는 뉴욕으로 기약했었는데... 언제쯤 그 꿈같은 집밥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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