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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0. 2020

그때 그 밥상

지금은 돌아가셨겠지... 싶다.

다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꼭 한번 뵙고 싶은 분...


20여 년 전, CC였던 남편과 학교 앞 어느 건물 1층 계단 앞에서 그분을 처음 뵀다. 지팡이를 짚고 난처해하시던 그분을 우리는 지나치지 못했다. 연애 중이었으니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랑과 배려가 충만한 사람임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2층에 있는 병원을 가야 하는데 다리가 성하지 않아 올라갈 수가 없다는 그분의 말씀에 남편은 앙상한 그분을 고민 없이 들쳐업었다.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업고 1층으로 내려왔고 택시 승강장까지 모셔다 드렸다. 고맙다는 말씀과 세상에 이런 총각, 색시가 어디 있냐는 말씀을 100번쯤 하시다가 헤어지기 전 종이를 달라 하시더니 당신의 집 주소를 적어주셨다. 이번 주 일요일 10시에 꼭 오라고, 아침밥 대접하겠노라는 말씀만을 남기고...


당황스러웠던 우리는 며칠을 고민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초면에 일요일 아침부터 남의 집에 가서 밥을 먹다니...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누누이 교육받지 않았던가... 일면식도 없는 분을 한번 도와드렸다고 해서 뻔뻔하게 찾아간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 의사를 전할 방법이 없었다. 전화번호도 없었고 딸랑 주소뿐인 쪽지 한 장...


결국 일요일 아침, 우리는 그분을 찾아뵙기도 결정했다. 혹시 아는가... 드라마에서처럼 알고 보니 재벌 회장님 일지... 주소만 들고 찾아간 그 집이 마당 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담장 안에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 일지...


택시 아저씨께 주소를 건네고 도착한 집은 흑석동 꼭대기, 택시도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골목길의 허름한 집이었다. 대문이라고는 따로 없고, 현관문인지 방문인지 모를 문 앞에서 우리는 한참 망설였다. '일요일 아침에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인데'가 아니라, '이곳에 타인과 나눌 밥이 있기는 할까... '라는 고민이 앞선던 것 같다. 한참만에 문을 두드렸고, 중년의 여성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저기, 여기, 혹시... 그.... 할머니.... "

성함도 모르니 어찌 우리를 소개할지, 누구를 만나러 왔다고 할지 모르던 차에 안쪽에 계시던 할머니가 앉은 채로 손을 흔드셨다.

"내 손님이야, 내 손님~"


할머니의 방은 세명이 겨우 앉을 정도로 작디작았다. 서먹할 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할머니는 와줘서 고맙다며, 도와준 은혜를 꼭 갚고 싶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집에서라도 식사를 대접하고 싶으셨나 보다. 식사가 차려지는 동안 할머니는 당신의 화려했던, 날아다니던 젊은 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불과 몇 년 전, 허리 수술 전까지만 해도 동네 부녀회장도 도맡아 하셨다는 할머니는 거동이 힘드니 하루하루 급격히 늙어간다며 슬퍼하셨다. 쇠약해진 몸과 덩달아 약해진 마음. 살갑게 챙겨주는 이 없는 노인에게 따스한 등을 내어준 젊은이에게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마음이 가여웠다.

그러나, 집에서의 식사 대접마저 편치 않아 보였다. 뚱한 며느리에게 미처 손님의 방문을 말하지 못하신 듯했다. 당연히 접대용 반찬이 있을 리 없었고 며느리에게 사정하듯 이 둘을 위해 간단히 아침상을 차려달라고 주무하셨다. 며느리 눈치를 보시는 것인지 우리들 눈치를 보시는 것인지 안절부절못하시던 모습...


밥만 차려놓고 당신 방으로 들어가 버리신 며느리와, 거동이 불편해 당신 방에서 나오지 못하시는 할머님 사이에서 우리 둘 만 부엌 겸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져 받아 든 밥상. 우리가 불편해 피해 주신 것일까, 할머니에 대한 시위일까 고민하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급하게 차려진 아침상엔 핏기가 없었다. 무친듯 만듯한 단무지, 씻어놓은 묵은지, 기름 없이 볶은듯한 어묵... 까칠한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밥만 겨우겨우 넘기 두서없이 놓인 반찬 사이에서 젓가락으로 허공을 허우적댔다. 성격 좋은 남편은 할머니를 생각해 씩씩하게 푹푹 먹었다. 남김없이 먹어치워 밥상을 깨끗이 비워드리는 게 예의인지, 그나마 남은 찬을 다 먹어버려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계속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밥을 먹자마자 우리는 집을 나섰다. 식후 과일이나 다과상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할머님의 불편함을 한시라도 덜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 골목의 풍경과 할머니의 방, 밥상이 차려진 부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불편했던 공기와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 하시는 할머니의 그렁그렁했던 눈...

이제야 그분의 마음씀이 얼마나 힘든 시도였는지 가늠이 된다.

일요일 아침, 며느리의 눈치를 보면서, 없는 살림에 변변히 내놓을 찬도 없지만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줄 아는 젊은이들이라는 믿음...

찬이 부실했다는 둥, 아침부터 고생했다는 둥의 내 철없는 투정에도 묵묵부답이던 남편은 그 마음을 이미 그 시절 다 이해했었구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딘가에 건강히 살아 계시다면...

일요일 이른 아침, 역시 누추하지만, 우리 집에 모셔서...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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