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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1. 2020

며느리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을,  소시지 떡

"고추장 맛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과거 유명했던 광고 문구다. 자신의 비법 레시피는 며느리에게도 전수하지 않겠다던 즉석떡볶이 할머니.

자신만의 고유함, 독특함은 지켜야 한다는 의미 이리라. 나는 결이 다른 의미로 며느리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고 싶지 않다. 사실, 뭐 알려줄 만한 특별한 뭐도 없는데 말이다.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음식 중 남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육포와 떡이다.

육포는 언젠가 글로 소개한 적이 있듯이 만드는 공정이 꽤 복잡하고 힘들다. 전통음식연구소에서 배운 레시피와 나의 떡 선생님에게서 배운 방법을 기초로 몇 년 만에 나만의 그것이 탄생했다. 나만 알고 있고 싶을 만큼 소중하지만 가르쳐달라는 사람에게는 얼마든 가르쳐줄 수 있었다. 배워도 만들 엄두를 못 냈으며 그대로 만들어도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만드는 과정만 나열해 설명해 주어도 지레 포기해버리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떡은, 집에서 동네 엄마들에게 가르치기도 했고 주문하는 지인들에게 조금씩 판매도 했다. 지인들에게 '떡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아직도 날 그렇게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도 있지만 이 역시 배웠다고 해서 부지런히 해 먹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초반에는 내손으로 아이 떡을 해먹인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만들지만 대부분이 이내 힘들어 포기하고 말았다. '떡과 빵은 사 먹는 게 싸다'라는 명언만을 남긴 채...

결국 떡도 나만 열심히 해 먹고 파는 음식이 되었다.


난 설기를 좋아한다. 찰떡이나 다른 떡들보다 기교가 덜 필요하고 기본에 충실한 떡이라는 이유 하나와, 여러 가지 실험정신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종목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얗고 포실포실한 백설기는 나름의 담백함이 있어 좋다. 거기에 건포도나 각종 콩을 섞어 쪄내면 새콤달콤하거나 고소하며 식감도 좋은 떡이 된다.


설기를 조금 더 색다르게 즐기는 첫 번째 방법은 쌀가루에 천연재료로 색과 향, 맛을 입히는 것이다. 찐 단호박과 섞으면 호박설기, 데친 쑥이나 쑥가루를 활용한 쑥설기, 푹 고운 대추를 체에 내린 대추고를 사용한 대추 설기, 에스프레소를 섞어준 커피 설기, 물 대신 딸기나 블루베리를 갈아 쌀가루와 섞어 찐 설기 등... 다채로운 색만큼이나 향도 진하다.


여기에 내가 주로 하는 두 번째 방법은 여러 가지 추가 재료를 넣는 것. 속에 뭔가 씹는 식감이 더해지면 좋겠다는 욕심에 하나둘 재료를 더해보았던 것이다. 삼각김밥 느낌이랄까?

요즘 시중에서도 간혹 보이던데, 노란 체다치즈를 듬뿍 넣으면 짭짤하고 고소한 치즈 설기가 된다.

블루베리 설기 안에는 깍둑 썰기한 크림치즈와 호두를 넣어준다. 고급진 케이크를 먹는 것 같은 블루베리 크림치즈 설기...

딸기설기 안에는 딸기잼을 듬뿍 넣고 쪄서 달달함이 배가된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스파게티 소스에 모차렐라 치즈를 섞어 설기 사이에 살포시 넣고 찌면 피자 설기가 되고,

볶은 김치에 참치를 섞어 넣어준 설기는 참치김치 삼각김밥 맛 설기다.

코코아 가루로 빛을 낸 설기 안에는 진한 초콜릿을 넣어주는데 찌는 동안 초콜릿이 녹아 먹을 때 흘러내리는 것이 먹음직스럽다.

이렇게 다채로운 시도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소시지 떡'이다.

휴게소에서 먹는 소떡소떡이랑 뭐가 다르냐고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 소시지 떡이라고 파는 집이 있던데 검색해보니 이미 찐 백설기로 소시지를 감싼 형태였다. 나의 소시지 떡은 그들과 다르다.


물주 기한 쌀가루를 체에 세 번 이상 내린다. 곱디고와진 쌀가루에 적당량의 설탕을 조심스레 고루 섞어준다. 여기까지는 백설기와 같다.

속에 들어가는 소시지는 두툼해야 한다. 줄줄이 비엔나처럼 빈약하거나 길이만 긴 애들은 씹는 식감이 덜하다. 국산 돼지고기로 만든 두툼한 비엔나소시지를 고집하는데, 세 봉에 7,990원 정도 하니 200원짜리 소시지가 떡 하나에 들어가는 것. 단가가 훅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직사각형 틀의 높이 3분의 1 지점까지 쌀가루를 채워주고 간격을 맞춰 물에 데친 소시지를 살포시 넣어준다. 쌀가루가 눌리지 않게 조심조심... 그 위로 쌀가루를 덮어주어 소시지를 감춘 다음 윗면을 평평하게 만든다. 소시지 사이사이 틈으로 칼집을 넣어 쌀가루를 잘라주고 끓는 솥에 25분 정도 쪄낸다. 미리 넣어준 칼집 때문에 하나하나가 깨끗하게 떨어진다. 한 김 식힌 떡을 떡 비닐로 포장하고 스티커까지 붙여주면 완성.

소시지 떡은 우리 아이들의 최애 간식이기도 했고,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아이 어른할 것 없이 계속 찾는 떡이다. 아이들도 내가 없을 때 친구나 손님이 찾아오시면 냉동실에 넣어둔 소시지 떡을 꺼내 레인지에 데워서 대접했던 떡이었으니,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독특해서 자랑하고 싶던 음식이었나 보다. 쌀과 소시지라는 기본 재료는 같건만 밥반찬으로 먹는 소시지와 떡안에 들어간 소시지는 맛이 달랐다. 달달한 떡 안에서 톡 터지는 육즙과 오도독한 식감...


지인들에게 무한정 무상 공급할 수는 없으니 개당 1200원에 팔기는 했으나, 남는 건 늘 없었다. 재료비에 가스비며 인건비를 정확하게 계산할 줄도 몰랐거니와, 10개를 시키면 2,3개를 덤으로 주었으니 뭐가 남겠는가. 게다가 누군가 10개를 주문하면 이때다 싶어 30개 정도를 만들어서는 이 집 저 집 퍼 나르기 바빴으니...


고급진 설기만을 파는 떡집을 해볼까 고민하던 적도 있고 인터넷으로만 팔아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 마음은 진작에 접었지만 언젠가 장사를 하고 아들들이 결혼을 해도, 며느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만 간직하고 싶은, 새어나가면 안 되는 영업기밀이어서가 아니다. 너무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만을 생각하며 힘을 내서 만들기에는, 떡이란 너무 힘든 음식이다. 요즘은 기계도 잘 나왔고 사람 손을 덜 쓰도록 편해졌겠지만 그럼에도 떡은, 사 먹기를 권한다.


내 며느리는 그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보고 싶던 드라마를 보기를, 자신의 일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쏟기를, 아니면 그냥 푹 쉬기를... 손 마디마디는 굵어지고 지문은 없어지며 팔뚝엔 힘줄이 드러나게 되는 그 일을 굳이 배우려 하지 말기를... 그래도 소시지 떡이 먹고 싶다면 내가 해줄 터이니 편히 살기를...

내 지금의 이맘이 변치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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