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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9. 2020

극성맞아야 맛있는 먹꼴뚜기

때는 바야흐로 2016년 2월.

즐겨 찾는 인터넷 수산물 쇼핑몰 한 구석에서 그 녀석을 발견했다.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주문을 해 처음으로 마주한 그 녀석은 시커먼 땟국물이 줄줄 흐르다 못해 몸뚱이가 온통 검은색이었다. 어른 새끼손가락 한마디도 안될 정도로 작은 그 녀석을 물에 담가 짠기를 빼내고 포도씨유, 간장, 물엿을 이용해 졸여 상에 냈다. 평소에도 종종 먹던 꼴뚜기이니 색이 좀 검다고 맛이 다를까 했는데, 어라? 이 녀석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몸통 가운데 가득 들어찬 먹의 맛이란... 오징어를 내장째 통으로 쪄서 먹을 때 느껴지는 진한 꼬수함. 거기에 단짠 양념까지 더해져서 밥을 포기하고 바로 맥주캔을 따게만드는 마성의 맛.


좋은 건 나누어야 한다. 맛나게 볶은 먹꼴뚜기를 동네 친구들과 조금씩 나누었는데 그들도 반해버렸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을까? 맛있는 것, 입에 맞는 것을 찾았다 하면 우리는 병적으로 집착하고 대량으로 주문해 씨를 말려버렸다. 처음 먹꼴뚜기를 주문했던 쇼핑몰에서 250g짜리 10봉을 주문하다가 급기야는 판매자에게 직접 전화해 주문했다. 아마 반찬 장사하는 사람인가 여겼을 것 같다.

먹꼴뚜기는 크기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어른 중지만 한 것까지 천차만별인데 어획량이 적어 기호에 맞는 사이즈를 선별 주문할 수가 없다. 때문에 택배 상자를 열 때까지는 사이즈를 알 수 없다. 당연히 작을수록 먹기도 좋고 맛도 좋았지만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판매자에게 작은 사이즈로 부탁하기도 했지만 맞춰주기는 힘든 일이었다. 점점 큰 놈들만 배송이 오고 어떤 때는 반년 이상 품절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지치지 않고 해 먹기를 몇 년... 언제부터인가 시큰둥한 반찬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겐  먹꼴뚜기를 대체할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했다. 반찬이든 간식이든 상관없었다. 좀비처럼 달려들어 먹어치워 줄 새로운 맛. 그때 또 해성처럼 등장한 아이가 '왕발'이다. 특별할 것 없는, 오징어 다리를 낣작하게 눌려 만든 건어물인데 구워서 심심풀이로 먹다 보니 턱이 너무 아팠다. 남아도는 왕발을 어떻게 소비할까 하다가 생각해 낸 반찬이 히트였다. 물에 불려 툭툭 잘라 간장, 물엿, 청양고추, 통마늘 한 움큼과 함께 조려내면 매콤 달콤한 반찬이 됐다. 생긴 건 타이어같이 생겼는데 씹어보면 보들보들한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물에 불린 김에 부침가루를 묻혀 구워내면 오징어튀김보다도 더 깊은 맛이 나는 전이됐다. 우리는 이걸 '발전'이라고 불렀다. 이름은 엽기적이지만 맛은 기가 막혔다.


먹꼴뚜기와 왕발 이후로도 우리는 서로서로 경쟁하듯 신문물을 물어왔다. 옆동네에 새로 생긴 방울떡, 빵 두께보다 속 두께가 몇 배 되는 샌드위치, 40분을 차 타고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축산물 도매센터. 무엇하나 조금 사는 법도 없었다. 6집이 나눠야 하니 항상 넉넉히 주문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추억의 과자 브이콘은 100봉짜리 한 박스.

오이지를 담기 위한 백오이는 100개짜리 3박스.

장아찌용 퍼펙토 고추 15kg.

베란다에 말려먹는 감 10kg짜리 10박스.

떡집에 주문해 먹는, 편육 10 근짜리 한 박스.

편육과 함께 먹을 가오리무침 5kg.

오징어가 비쌀 때는, 산지직송 선동 오징어 8.5kg 35마리.


밖에서 맛난 걸 먹으면 집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나는 것처럼 특이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발견하면 서로가 생각났다. 잔뜩 주문해놓고 나누느라 한번, 같이 먹어보느라 한번, 먹고 난 후기를 공유하느라 또 한 번. 갖은 핑계를 생각해내서 일단은 모인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도 만나기 위함이요 잔뜩 주문하는 것도 만나기 위함이다. 그렇게 잔뜩 주문해 같이 먹어보고 같이 얘기하고 같이 깔깔거리면 더 맛있다. 6집의 저녁 반찬이 똑같아서 한번, 모든 식구들이 잘 먹어서 한번, 또 시키자고 으쌰 으쌰 하면서 또 한 번 웃는다.

극성맞고 지랄 맞게, 허나 재미있게 살았다.

그렇게 극성맞지 않았다면 맛난 것을 찾아 헤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랄 맞지 않았다면 잔뜩 사서 누군가와 나누고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면 또 찾아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먹꼴뚜기가 먹꼴뚜기 맛이지 뭐 그렇게 맛있겠는가 싶을 땐, 극성맞고 지랄 맞게 누군가와 나눠 먹어보시라.

그러면...

더 맛있다.


너무 큰 꼴뚜기는 통째로 튀기면 술안주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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