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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4. 2020

Day 9. Party Tonight

여행의 클라이맥스

대망의 마지막 날.

이 여행의 최종 종착지, 사촌동생의 결혼식이다.

오후에 시작되는 결혼식을 앞두고 오전에는 호텔에서 진한 휴식을 즐겼다. 내일 새벽 출발을 대비해 짐도 싸 두었다. 근처 마트에 들러 마지막 쇼핑을 했다. 낮잠도 자두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열 명의 식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순서대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이날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내내 끌고 다닌 정장과 원피스를 입었다. 남편은 팜스프링스 아웃렛에서 장만한 명품 구두를 신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식장을 향했다.


일곱 살경 이민을 간 사촌동생은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 집에서 자랐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빴던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가 도맡아 키워주셨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울면 업어 달래주던 기억이 남아있는 내게도 애틋한 동생이다. 

동생의 이민후 어머니는 한참을 울적해하셨다. 헛것을 보고 동생 이름을 부르며 뛰쳐나가신 적도 있다. 이민후에도 늘 바빴던 부모님으로 인해 긴 방황을 했던 동생은 대학 입학 후 정신을 차리고 미군에 지원했다. 군인에게 해택이 많은 나라라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데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고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바쁜 시동생 내외를 도와주러 자주 미국으로 건너가셨던 어머니는 그 아이가 겪었던 방황의 시간과 맘 졸이던 작은어머니의 시간을 함께해주셨다. 그래서 오늘의 결혼식이 어머니에게도 특별하다. 


티 없이 맑은 날씨. 적당한 온도. 

예쁘게 꾸민 야외결혼식장. 

옷을 맞춰 입고 신랑 신부 옆에 서서 축복해주는 들러리들. 

꽃을 뿌리며 신랑 신부의 길을 밝혀주는 화동들. 

축복해주는 하객들. 

혼인서약을 하고 키스를 나누는 신혼부부. 

행복만이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결혼식이었다. 


야외결혼식장과 연결된 건물에서 연회가 이어졌다. 

신랑 신부가 모두 한국인이라 폐백을 했다. 마냥 즐거워하기만 하던 신랑 신부도 숙연해진 시간이었다. 

신랑 측 가족 대표로 아버지만 절을 받으셔도 되건만 순서와 형식을 따져가며 나와 남편에게까지 절을 하는 바람에 어찌나 좌불안석이었던지... 


초저녁부터 식사와 함께 시작한 결혼식 2부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신랑 신부 친구들의 축사, 부케 던지기, 신부 가터 던지기, 케이크 커팅, 끝도 없는 댄스파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홀에 모여 춤을 췄다. 한국 가족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어느새 동화되어 몸을 흔들었다. 4살 조카는 전에 본적 없는 신들린 댄스로 온 가족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7살 조카도 또래 여자아이들과 돌아다니며 신나게 춤을 췄다. 사춘기 쭈삣남 아들들마저 한 군데 자리를 잡고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다. 부르스 타임엔 못 이기는 척 남편과 부르스를 췄다. 과연 끝이 있을까 싶은 광란의 파티였다.


신랑 신부가 친구들과 흥겨운 시간을 보내도록 가족들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줘야 할 시간.

우리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새벽 비행기로 떠나기 때문에 미국 가족들을 다시 볼 시간이 없다.

여행 일정의 클라이맥스를 찍고 야반도주하듯 서둘러 미국을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누구는 이렇게 됐고 누구는 저렇게 됐다는 구구절절한 후기를 전하는 드라마 마지막 회보다는 결말과 함께 뒤도 안 돌아보고 끝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장에서 헤어진 그대로 숙소로 돌아와 쪽잠을 잔 뒤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갑작스럽지만 후련하고 행복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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