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이 넘치는 공간, 아쉬움이 더해가는 시간.
여행의 2부가 시작됐다.
1부 테마가 관광이었다면 2부 테마는 가족 행사다. 아버지의 누나, 내 고모의 칠순 파티가 내일 있고 다음날엔 작은아버지의 아들, 내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다. 관광도 숨 가빴지만 가족 행사도 숨 가쁘다.
느지막이 일어나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별장과 연결된 골프장을 감상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플래그 스태프의 별장을 떠나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 있는 고모댁으로 향했다.
고모 칠순을 준비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사는 고모의 큰아들과 필라델피아에 사는 작은 아들 가족들도 모두 모여있었다. 오빠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데다 집에서조차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큰오빠는 브라질 사람과, 작은 오빠는 중국사람과 결혼했으니 그들과 대화하려면 영어가 필수...
외국인 올케들은 얼마나 살가운지 내게 수많은 영어를 쏟아내며 말을 걸었다. 50%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눈치를 최대한 끌어모아야 했다.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보내고, 깊은 대화는 피하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흔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로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많이 컸다는 덕담도 전하고, 그러다가 어색해지만 안아주며 웃었다. 십 년 만에 만나지만 가족이라는 타이틀은 신기했다. 소통이 원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제 다시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함께 하는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달까...
저녁은,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장소로 갔다. 애리조나에 다섯 번 정도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들렀던 피자집이다. 피자집이 뭐 별게 있을까 싶겠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2층 높이의 넓은 건물인 피자집에 들어가면 주문하는 곳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곳에서 피자와 맥주, 음료를 주문하면 자리로 가져다준다. 여기까지는 뭐 다를 게 없지. 카운터를 지나 들어가면 넓은 홀이 나오는데 길게 늘어선 테이블이 홀을 가득 채운다. 2층에도 앉을 수 있는 좌석들이 벽을 따라 마련되어 있다. 한쪽면에는 무대가 마련되어있는데 여기가 핵심이다.
무대 중앙에 오르간이 있고 벽면에는 길게 늘어선 파이프가 있다. 홀 여기저기 오르간과 연결된 이색적인 장치들이 있는데, 곡에 따라 활용하는 게 달랐다. 종이 울리기도 하고 어디선가는 갑자기 뻐꾸기가 나오기도 한다. 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을 연주하기 때문에 누구나 금세 흥겨워진다. 연주자는 준비된 곡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사연과 함께 희망곡을 적어낸 쪽지를 뽑아 즉석 연주를 해주기도 한다. 사연을 읽어주면 큰 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쇼를 관람하듯 함께 웃고 즐긴다. 축하해줄 일이 있을 땐 모두가 하나 되어 박수를 쳐준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함께 모여 흥을 나누는데 일가견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장소가 있다면 참 좋겠다 싶다. 메뉴는, 치킨이 좋겠다. ㅎㅎ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나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손뼉 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 일주일 동안 쌓였던 피로가 가시는 시간. 집에 갈 시간이 가까워지는 시간. 아쉬움이 점점 커져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