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20년간 끼고 산 물건들이 있다.
TV, 세탁기, 냉장고는 진작에 고장 나 바꿨고 소파는 벌써 세 번째 바꿨는데 그마저도 가죽이 나긋나긋해졌다. 아들 둘이 뛰어대니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20년이 지나도 멀쩡한 것들은 실상 몇 개 남지 않았다. 우리 집 살림살이의 원로가 되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인공들은 안방 장롱, 화장실 쓰레기통, 오디오 세트다. 장롱은 떨어졌던 문짝을 고치니 멀쩡해졌고 플라스틱 쓰레기통은 내가 죽고도 400년은 더 멀쩡할 것 같다. 둘 다 여전히 쓰임이 있는 노후를 보내고 있는 셈.
문제는 오디오 세트다.
결혼할 때 엄마의 절친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돈으로 주는 것보다는 물건으로 주는 게 더 의미 있다시며 50만 원 상당의 오디오를 사주신 것이다. 꽤 오래도록 잘 썼다. 적어도 CD로 음악을 듣던 몇 년 전까지는 말이다.
CD가 3장이나 들어가니 아이들 동요를 끊김 없이 틀어줄 수 있었다. 조금 컸을 땐 비틀즈 노래를 좋아해 틈나면 틀어놓곤 했다. 그러던 것이 음원 사이트 정기결제를 해서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니 천덕꾸러기가 됐다. 간혹 추억에 젖어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볼 때만 전원 코드를 연결한다. 평소엔 코드도 뽑히는 신세다. 먼지만 허옇게 쌓인 폼이 처량 맞다.
식탁 바로 옆에 위치해있어 글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글 쓸 때 음악이라도 틀어 놓으라는 건가... 휴대폰에서 BTS의 <Dynamite>가 신나게 흘러나오는 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먼지떨이로 쓱 문질러준다. 세상에나.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됐는지 그걸로 될게 아니다. 물걸레를 가져와 굳은 먼지를 걷어낸다. 전원코드를 연결하고 CD 한 장을 넣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이 흘러나온다. 휴대폰으로 들을 때는 느낄 수 없던 음악의 향기가 느껴진다.
다시 쓰임을 찾은 오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