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명품

by 늘봄유정

"와~~ 이것 좀 봐봐. 4291년도래. 단기로 적어놓은 건가 봐~ 몇년도인거지?"

"1958년이네. 60년도 더 된 물건이잖아?"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때네. 딱 네 나이셨을 때구나..."

"그러네. 신기하다.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멀쩡하지?"

"조심해서 펼쳐봐야 돼. 잘못하면 뜯어질 것 같아. 할아버지 화학 노트도 있다~"


어머님 댁에서 온 작은 서랍장에는 오래된 노트 한 권이, 트렁크 안에는 작은 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경기고등학교 1학년 2반 육십육 번이라고 적힌 노트에는 한자와 영어로 멋 부리듯 이름이 쓰여있었다. 한 줄 한 줄 교과서만큼이나 빽빽하고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글씨와 세밀하게 구현해낸 그림은 60년 후 얼굴도 모르는 손자의 눈에 담겼다.

"실력고사모범답안집"이라고 쓰여있는 작은 책자에는 1958년 이과 시험문제와 해답이 실려있었다.

국어과, 수학과, 영어과, 독어과, 물리과, 화학과, 생물과. 총 7과목의 시험문제는 어떤 이의 정성스러운 손글씨로 각을 맞춰 반듯하게 기재되어있었다. 언뜻 보면 타이핑한 글씨 같았지만 '라'라는 글자를 찾아 서로 비교해보니 모두 조금씩 다른 '라'였다.

영어와 독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은 한자를 모르면 풀 수 없었다. 작은 아이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암호를 해독하듯 수학 문제를 읽어 내려갔다. 방정식, 삼각함수 등의 한자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험이었다. 물론 당시의 고등학생들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됐겠지만 말이다.


서랍장에 그 물건들이 들어있었던 것은 어머님도 모르셨던 일이었다.

어머님 댁에 있던 낮은 서랍장을 우리 집에 가져온 날, 걸레로 닦으며 열어본 서랍 안에는 노트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어머님은 "어머, 그런 게 들어있었니? 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아마 할머니가 잘 챙겨놓으셨나 보다."라며 신기해하셨다. 작년에 가져온 알루미늄 트렁크 안에는 아버님이 치르셨을 고등학교 시험 문제지가 들어있었다. 무려 63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진품명품.



태안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영특한 소년은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아버님은 한 번도 반찬을 제 손으로 집어먹을 일이 없으셨단다. 숟가락 한가득 밥을 뜨면 옆에 두 어머니가 앉아 생선 발라 밥 위에 얹어주고 김치도 찢어 올려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길러진 귀한 아들은 홀로 서울 유학을 떠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나와 초고속으로 대기업 사장에 오르기까지, 아버님은 두 어머니의 가슴을 늘 뜨겁게 달구는 아들이었을 것이다. 똑똑하고 자상하며 키 크고 잘생긴 아들, 남부럽지 않은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 특히나 좁은 시골 동네에서는 온 동네가 알아주는 인재였을 것이다. 그런 아들의 노트를 세상 어떤 진귀한 물건보다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싶으셨던 걸까. 두 할머니들은 서랍장 깊숙한 곳에 보물지도를 숨기듯 아버님의 노트를 넣어두셨나 보다.


네 명의 손주 중 어느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채 아버님이 유명을 달리하신 건, 59세가 되시던 봄이었다. 수년간의 암투병 끝자락,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막내아들의 여자 친구를 한번 만나보겠다고 하셔서 인사드린 게 나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한창 일할 때, 한창 잘 나갈 때, 한창 멋있을 때, 한창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에서 어머님은 헤어 나오지 못하셨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사람이 죽었는데..."라고 하시며 슬퍼하셨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때도 "사람이 죽었는데..."라며 노여워하셨다.

어머님의 칠순을 기념하는 가족 식사 모임에서 자식들이 고희상을 차렸을 때, 어머님은 음식점이 떠나가라 울부짖으셨다. "사람이 죽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해였다. 10년이든 20년이든 상관없었다. 어머님에게 아버님은 영원히 아까운 사람,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어머님은 우연히 우리 집으로 전해진 노트를 가장 어린 손주 몫으로 결정하셨다.

"호진이한테 줘라~ 잘 간직하고 두고두고 보면 혹시 아니? 호진이도 할아버지처럼 좋은 대학 갈 수 있을지."

부적처럼 전해진 노트를 작은 아이는 자신의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겉으로 내색 안 하는 아이지만 신기하고 영험한 기운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무겁게 짓누르는 중압감에 몸을 떨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부담감을 의식하셨던걸까. 어머님은 어느 날인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아무 데나 가면 어떠냐.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 그깟 서울대 안 가면 어떠냐. 죽으면 다 소용없는 걸."

학창 시절에는 정성스럽게 필기를 해가며 공부밖에 몰랐으며, 서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때는 모두의 자랑이었을 아버님.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은 모두에게 두고두고 한스러운 일이 되었다. 두 어머니에게는 불효를, 아내에게는 가장 큰 슬픔을, 자식들에게는 짙은 그리움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니, 입신양명과 출세를 보장하는 의미로 간직해야 할 노트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년만년 건강하게 웃고 떠들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 담긴 물건으로 기억해야 한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아버님의 유지.

오랜 세월 묻혀있다가 지금 이시점에 다시금 발견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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