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이 있는 집은 주기적으로 다락방 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의 온갖 짐이 블랙홀 같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다락방 입구에는 선풍기나 여행가방처럼 주기적으로 사용하지만 당장은 필요 없어 임시로 올려놓은 물건들이 놓여있다. 입구에서 먼 위치에 자리 잡았다는 것은 그곳에 있던 시간도 그만큼 길다는 얘기다. 정글 깊은 곳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 알기 힘든 것처럼 다락방 깊은 곳에는 어떤 물건이 방치되어 있는지 들추지 않으면 모른다.
작년 이맘때쯤 대대적인 집 정리를 했다. 다락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박한 정리>라는TV 프로그램과 당근 마켓의 흥행에 자극을 받았던 탓이다. 덕분에 정신없던 뒷베란다, 컴퓨터방 책장, 아이들 방 옷장 등이 한결 가벼워졌고 생각 없이 올려두었던 다락방 물건들도 상당수 처분했다. 그렇게 모아진 돈 120만 원으로 16년째 침침했던 등을 LED로 전면 교체했으며 앞뒤 베란다 새시 방수공사를 했다. 비움의 미학을 제대로 경험한 셈이다.
다락방 제일 안쪽도 그때 드러났다.
그곳에서 발견된 것들은 나의 어렸을 적 일기장, 남편과의 연애편지, 아이들 어렸을 때의 작품집이다. 40년 가까이 되는 오랜 시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로 가득한 내 초중고 시절 일기장이 한 상자, 20년 동안 다행히도 이혼을 안 했기에 버리지 못한 연애편지 한 상자, 쑥쑥 크는 애들에게 신경 쓰느라 안으로 안으로 밀려들어간 작품집이 세 상자였다.
아이들 작품집은 작년 대정리 때 버리려는 시도를 해보았으나 남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다시 다락방으로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분리수거 일마다 늦게 들어오던 남편이건만 그날따라 일찍 들어왔으며, 그날따라 현관 앞에 쌓아둔 상자를 유심히 봤다.
"이게 다 뭐야?"
"애들 유치원에서 했던 작품 모음집."
"버리려고?"
"어. 다 무슨 소용이야. 생전 열어볼 일도 없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버려~ 애들이 한 건데. 이건 버리지 말자. 이건 버리면 안 돼."
"왜? 당신도 이제야 처음 관심 간 거잖아. 괜히 자리만 차지하지."
"나중에 손주들 보여줘야지. 일단은 그냥 올려놓자."
남편의 청대로 세 상자 모두 원상 복귀시켰다. 버리지 못한 아쉬움보다 지켜낸 안도가 더 크게 느껴졌다. 이미 내 것이 아닌 물건, 아이들의 소유이니 먼 훗날 아이들이 직접 처분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박한 정리>에서 신애라는 "그런 추억들은 사진으로 찍어 남겨두고 모두 버리세요~"라고 했지만 그것도 후일을 기약했다.
언젠가, 가족 모두가 목장갑을 끼고 다락방을 정리하러 우르르 올라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상자 저상자 열어보고 "에잇, 이런 건 버려야지."하고 대동 단결할 것이다. 그러다가, 약간은 아쉬워 작품집 하나를 열어보게 되겠지. "와~ 이건 뭘 그린 거야?"라며 모두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추억에 빠질게 뻔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추억 놀음을 하다 보면 이구동성 얘기하겠지.
"이건 남겨두자."
정리의 맛이란 그런 것 아닐까.
물건에 내주었던 공간을 다시 사람의 것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깃들었던 추억, 잊고 지냈던 과거를 소환해내 현재의 힘으로 끌고 오는 것, 현재의 고달픔에 가려져있던 긍정의 시그널 같은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주는 것 말이다.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에서 신애라는 말했다.
"추억을 누리고 사는지, 묻어두고 쑤셔 넣고 사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비워야 추억도 보인다."
"필요한 게 아닌 건 욕구다. 비우면 삶이 단순해진다. 아주 편안해진다. 나한테 진짜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만 남게 되고, 그것들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다."
나 역시 정리로 추억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비움을 택하지는 못했다. '반드시 필요와 욕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나? 비우는 것만이 미덕인가?'를 고민하다가 제3의 선택지를 만들기로 했다.
필요 박스, 욕구 박스 옆에 '당위 박스'를 두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버릴 수 없는 것, 당연히 함께 가야 하는 것, 누가 뭐래도 나누거나 팔 수도 없는 것들을 담아두기로 했다. 평생 이고 지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좁은 집으로 이사 가게 되면 발에 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당연히 남겨두어야 할' 것들이다.
1년 전 시작한 정리와 1년 전 시작한 매거진을 마무리하려 한다.
존재는 하되 기억에서 잊혔던, 버려진 물건을 찾아보자는 시도였다. 여전히 발굴해내지 못한 유물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또 앞으로의 재미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