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는대로 넙쭉 받아오기 어려워하던 수줍은 새색시가 이제는 주시는 족족 챙겨 오는 여우 같은 며느리가 되었다.
다락방이 있는 집에 이사 온 이후부터였다. 어머님은 쓰지는 않지만 버리자니 아까운 것들, 팔면 돈 되겠지만 마땅한 판로를 못 찾은 것들,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값나가는 물건이 될 것 같은 물건들을 하나 둘 건네주기 시작하셨다.
* 쓰지는 않지만 버리자니 아까운 것
교자상이 대표적이다. 수십 년 전 대가족의 끼니때마다 펼쳐졌거나 누군가의 기일에나 펼쳐졌을 큼지막한 상. 서너 개의 상 중에 가장 상태가 좋은 놈 한놈만을 우리 집에 입양 보낸 어머니는 가볍고 반을 접어 보관할 수 있는 새 상을 들이셨다.
"그 시절 상은 나무도 좋은 놈으로 썼을 거다. 요즘 나오는 상하고는 비교도 안되지. 버리기에는 너무 멀쩡하지 않니?"
까진데 없이 말끔한 녀석이었는데 다락방에서 십수 년을 갇혀 지내다 보니 뽀얗게 먼지가 쌓였다. 입식 생활에 길들여지고 식구 수도 적으며 손님을 치를 일은 없는 내게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버리지 못할 성싶다.
어머님이 결혼할 때, 옷을 담아 오셨다는 알루미늄 트렁크는 버리신다는 걸 주워왔다. 투박하기 그지없고 안에 무엇을 넣기 미안할 정도로 낡았지만 버려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꽤나 비싸게 주고 사셨다는 카펫도 있다. 깔아 둘 데도 없고 뉘어둘 데도 없다시며 이사오던 16년 전 트럭에 실어주신 카펫은 한동안 우리 집 마루에 깔려있었다. 아토피와 비염이 심한 작은 아이 때문에 다락방으로 올려놓고 곰팡이가 필까 봐 신문지를 끼워 넣어 돌돌 말아 둔 것이 10년이 넘었다. 다시 내려서 깔아볼까 하다가도 콜록거리는 아이를 보며 그만두었다. 폭신하면서도 탄탄하며 강렬한 붉은색의 카펫이 깔렸던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아이들과 카펫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으며 깔깔거렸다. 들어오는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다고 저녁 내내 슬금슬금 풀어내며 온기를 전해주던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한다.
* 팔면 돈 되겠지만 마땅한 판로를 못 찾은 것
2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은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틈틈이 미술작품이나 레코드판을 사 모으셨단다. 과거, 주택에 사시던 시절에는 걸어둘 곳, 전시해둘 곳도 많으셨지만 아파트로 이사 오신 후에는 방하나를 비워 온갖 것을 가두어두셨다. 팔아볼 요량으로 수집상을 불러보기도 했지만 값나가는 물건은 많지 않았다. 특히 동양화보다는 서양화, 수묵화보다는 유화를 선호하는 트렌드 때문에 어머님이 갖고 계신 병풍이나 동양화들은 돈 주고 처분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우리 집으로 보내졌다.
우리 집에 와서도 벽에 걸리게 된 그림은 두 개고 나머지는 모두 다락방행이 되었다. 너무 스산해 보이는 바닷가 그림, 아이들이 무서워했던 소녀와 강아지 그림은 몇 번 벽에 걸렸다가 퇴출당했다. 이름 부분에 덧댄 흔적이 있는 유명 동양화가의 그림, 알고 보니 대량 생산 제품인 당나라 화가 그림은 속아서 사신 건지 알고 사신 건지 궁금하다. 공짜로 얻어놓고는 걸어두기 민망하다며 다락으로 보냈다. 나 역시 팔고 싶어도 팔 곳을 모르니 결국은 어머님 바통을 이어받아 쟁여두고 있다.
*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값나가는 물건이 될 것 같은 것
1983년에 발행된 1988년 올림픽 유치 기념주화, 올림픽 마스코트 배지 액자, 성화봉이 세트로 왔다. 국가적으로 영광스럽고 인상적인 역사의 기록물이니 버릴 일도, 팔 일도 없겠지만 두고두고 기다리면 가치가 올라가지 않을까.
그 밖에도 고개를 돌리면 여기저기 어머님의 물건들이 하나 둘 보이고 그 수가 야금야금 늘어가고 있다. 가장 아끼시고 좋아하셨다는 작은 괘종시계, 버리시겠다는 걸 왠지 정이 간다며 남편이 주워온 목각 기러기, 아버님 성함이 적혀있는 각종 상패, 오래된 작은 서랍장, 박스채로 보관해두셨던 찻잔세트...
치열하게 살아오신 어머님의 젊은 날, 그 세월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있는 물건들을 어쩌지 못하고 품어버렸다. 아버님 어머님이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건져 올린 전리품처럼 느껴진다. 나라가 한창 부흥하던 시기에 한창 일하고 아이들을 키워내던 그들의 삶을 매일매일 마주하며 살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