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절친 한국 아줌마가 기록하다!
그녀가 온다! 드디어 그녀가 온다!
솔직히 이 표현은 좀 어색하다. 우리가 무슨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녀가 온다니... 그런데 연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마른침을 꼴깍거리며 기다린 그녀는.. 내 친구다.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와는 달리, 친구는 금발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캐나다에서 나고 자라고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내 친구는 캐나다인이다.
6년 만에 만난 우리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엉엉 울었고 그 광경이 한국인들의 시선을 당연히! 끌었다.
6년 전에도 한국에서 늘 붙어 다녔던 우리는 항상 의도치 않게 시선을 받았다.
눈에 띄게 다른 둘의 외모가 그랬고, 영어로 떠들어서도 그랬겠고, 아줌마스런 웃음소리 때문에도 그랬다.
내 친구 이름은 태미이다. 한국에 10년 전에 남편의 영어 선생 일로 와서, 한국에서 4년 동안 지내면서 큰 아이 코헨(아들)과 둘째 에머슨(딸)을 모두 한국에서 낳았다. 같은 단지에 살았던 우리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만났고 수다로 친해졌고 공감하면서 가까워졌고 성격과 궁합이 딱딱 맞았다.
매일 보는 것이 새롭고 낯선 태미에게 나는 한국의 생활과 모습에 조금의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태미의 모든 가족은 한국 생활을 너무 사랑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어렸을 때 코헨은 김밥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김밥을 먹겠다고 했었지만, 사실 코헨의 목적은 항상 단무지였다. 코헨의 단무지는 항상 제일 먼저 빠져나와 코헨의 입 속에 있었고 코헨의 김밥은 항상 단무지가 빠져나간 구멍이 있었다. 에머슨은 태어난 후 딱 1년 정도만 한국에서 살았었는데 지금까지도 1주일 이상 여행을 하면 쌀밥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불평을 해댄단다.
이 모든 것은 한국 음식을 대체적으로 꽤 좋아했던 태미의 영향이었다.
태미가 갑자기 한국을 오겠다고 갑자기 나타난 이유, 내가 90% 이상 확신하는 것은, 물론 나를 보고 싶은 이유도 나머지 10%의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먹을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같이 온 친구 칼라는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 대한 정보도 충분치 않은 , 태미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종의 '도전'으로 한국에 방문한 것이었다.
우리 셋은 수다에 강한 아줌마들, 당연히 금방 친해졌다.
캐나다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전 태미가 메신저로 문자를 보냈다.
"OO! 나 지금 비행기 타. 좀 있다 보자! 나 완전 흥분 상태야!!. 그리고 도착하면 저녁 시간인데 우리 저녁은 갈비 먹자!"
내 이럴 줄 알았어! 먹는 게 목적일 줄 알았지!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돌고래 소리로 인사하고 울고 불고 한바탕 난리 후에 언제 울었냐는 듯 깔깔대며 바로 갈비 집으로 고고!
- 먹는데 정신 팔려서 사진이고 뭐고 없다! 태미는 찍었다. 사진.. 캐나다에 있는 남편 약 오르라고 찍어서 보냈다.
갈비 먹으면서 쓱 물었다.
'너 한국에서 뭐 하고 갈 거야? wishing list 가 뭐냐?'
'음, (우물우물) 우선 깻잎에 갈비 엄청 먹고, 닭갈비 먹고, 김치도 잔뜩 먹고, (우물우물) 깍두기 먹을 거고... 글구 또 뭐더라.. 하여간 우선 김치랑 (한국말)아!줌!마! 김! 치! 더! 주! 세! 요!... 그리고 소주랑....'
'계획은 있어? '
' 야! 너나 나나 애 키우는 엄마들인데 지금 이거 휴가 낸 것도 벅차구먼 무슨 계획표를 짜고 왔겠냐. 칼라는 한국 처음이니까 궁에 가고 인사동 갈까.. 그 정도 생각 중이야. '
그렇지 태미! 우린 역시 천생연분이야! 연인들도 이렇게 쿵짝이 잘 맞진 않을 거야! 난 널 이해해!
(가끔 기분이 업 되면 태미는 가끔 soul sister 소리를 입에 담는다.. 혈맹이라도 맺어야 한다며! )
피곤과 시차 적응으로 정신이 없을 친구들을 위해 아침 일찍 북엇국을 먹고 서울의 다운타운 종로 쪽으로 향했다. 청계천과 인사동 그리고 사찰 하나는 방문해보자 목적으로..
청계천에 간 태미가 입을 열었다.
'칼라. 내가 한국에 가면 놀라운 거 많이 볼 거랬지? 그중에 하나가 이 청계천이야, 물론 한강이 무척 크기는 하지만 여긴 고층 빌딩 많은 한 가운데야. 근데 이렇게 천을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나. 게다가 이렇게 쭉 이어진 공원이 얼마나 이쁜데! '
내 설명을 조금 붙이자면,
'이건 새로 만든 건 아니야. 도시의 계획 상에 도로를 만들면서 사라졌던 부분을 복원한 거지. 중간중간에 있는 다리를 보면 복원한 것들이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단 흔적을 찾을 수 있어. '
태미는 항상 한국을 그리워하고 경외하고 있으며, 사랑하고, 매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태미 한국 사랑의 증거 하나.. 1년 전쯤 우리는 거의 2일 간을 진지하게 새벽 밤 시간에(시차 때문에) 메신저로 대화했다. 태미네 가족이 새로 입양하는 강아지 이름 짓기... 어마 무지한 후보들이 왔다 갔다 했는데 태미의 질문은 ' 김밥 어때? 김치는? 돈가스라고 할까? 단무지? 깍두기? (발음 어렵다고 깍두기는 탈락) 나는 코헨의 열혈 애정 공세였던 '뽀로로' 등등 생각나는 이름을 다 대봤지만 이틀 동안 끙끙 대던 우리는 결론을 못 내리고 있었다. '음식 이름은 하지 마. 한국 사람들 안 그래도 개를 식용으로 대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너 그렇게 김치 먹어대면서 강아지 이름을 김치로 지을 거야? 하지 마!' 설득도 하고 신경질도 내고 바빴다.
2일간의 열혈 메신저 토론과 고민 후, 일주일 뒤에 새로운 가족은 '소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인사동에서 소주를 위한 정성 어린(?) 선물을 샀다. 나이스! 맘에 쏙 들어 그냥!
인사동 찻집에서 열혈 쇼핑후 잠깐 쉬며 수정과를 마시던 태미가 갑자기 김치 만두!(깜짝이야!) 나 김치 만두 먹을래!
그리하여 우리는 점심으로 김치만두전골을 먹었는데, 알싸한 맛이 부족하다나 어쩐다나. 너무 순한 맛이라는 둥 그녀의 김치 평가는 어디에서건 멈추질 않는다. 하이라이트였던 삼계탕 집에서는 깍두기를 먹다가 배추김치가 안 나오는 곳은 진정한 한국 음식점이 아니라는 둥 깍두기가 이렇게 부드럽고 신맛이 강하면 안 된다는 둥 김치에 대한 지론이 확실하게 잡혀있다.
만두를 먹고 김치 평을 끝내고 길상사를 갔다. 평소에 조용하고 사람 발길이 많지 않아 자주 찾던 곳이었는데 아.. 여기도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조용하고 한편으론 화려하고 (한 때 요정이었던- 요정 좀 영어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또 한편으론 법정 스님의 의자 하나가 놓여있는 그 독특한 공간에 항상 매료당한다. 백석 시인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곳이어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지만 서울의 다른 유명한 절보다는 좀 덜 유명하지만 나름 매력이 있는 곳을 같이 가보고 싶어서랄까. 서울 도심에서의 한가함을 또 한 번 독특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마침 앞에 둔 부처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알록달록 매달린 연등은 정말 이뻤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얼핏 보면 성모 마리아 상과 같은 모습을 한 불상이 있고, 길상사 내부에선 마침 수녀님 한 분이 경내의 나무 그늘 의자에서 일행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 중이셨다. 당연히 두 분의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또 한 가지 머리에 남은 기억 한 장면, 이러한 포용과 자연스러움이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 맘이 편해지는 곳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줌마들은 일상으로 복귀, 집 근처 이마트로 장바구니 하나씩 메고 출동. 이것저것 사고 폭풍 수다! 깻잎 씨앗을 산 것을 가장 큰 수확으로 만족하며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전기구이 통닭을 사가지고 집에서 저녁 해결! 근데 우리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자평한 것이 바로 순위가 바뀌어 버렸다. 태미 요 지지배가 몰래 자몽 소주 한 병을 사 가지고 온 것이었다. 헐 빠른 것!
전기구이 통닭에 할딱이던 우리는 맛만 보자던 자몽 이슬이를 순식간에 휙 비워버렸다! 이때부터였다.
되도록이면 웬만한 식사에 소주를 대동하기 시작한 건... 에라 모르겠다! cheers!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김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김밥 집에 가서 당당하게 주문하는 태미
(한국어로) "아! 줌! 마! 참! 치! 김! 치! 김! 밥! 주! 세! 요!"
뭘 먹을까 메뉴를 훑는 내 눈에 참치 김치 김밥은 없었다.
(영어로 조용히) "태미, 여기 그런 메뉴 없어! "
"알아! 근데 다 만들어 주던데? 한국 아줌마들 항상 만들어줘! 진짜야!"
아! 요 대단한 년! 결국엔 진짜로 참치 김치 김밥 받아먹었다! 짝! 짝! 존경한다 요 지지배야!
다른 날 아침. 우린 또 분식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징어 덮밥, 떡볶이, 김치 만두, 갈비 만두... 이젠 어색하지도 않다. 먹고 싶은 거 잔뜩 시켜놓고 행복하게 아침 먹었다.
단언하건대 아줌마들의 가장 맛난 식사는! 우리가 직접 안 차리고 우리가 안 치워도 되는 식사다! 전세계 아줌마 공통!
다른 날 분식집에서 오징어 덮밥(태미가 가장 사랑하는 메뉴 중 하나, 요 괴짜스런 지지배는 한국에 있을 때 중국집에 전화해서 꼭 오징어 덮밥을 시켜먹었다. 난 중국집에서 오징어 덮밥이 메뉴인 지도 몰랐다.)을 먹으면서 김치를 4번이나 리필해서 먹어치우더니만, 나중엔 밥을 김치 국물에 비벼먹고 있다. 으이구 못 살아!
물론 한국에서 모든 음식에 행복한 우리였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안을 얘기할 땐 사뭇 진지하다.
한국의 여러 모습이 각각 다른 모습과 기억으로 머리에 남았겠지만, 남북 분단 상황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외신과 실제가 꽤 대조적이라는 것을 태미는 경험으로 알고있다. 한국의 이야기를 전하는 외신은 항상 긴장 상태를 이야기하고 그러한 이야기가 외부로 전달된다. 그러나 단호히 이야기하건대 태미가 살던 4년 동안 외신에서 떠들만한 사건들이 꽤 많았지만 그 안에서는 위협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 이상한 풍경과 분위기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풍경이라 했다.
분단 상황과 수시로 나타나는 대치 상황에 대해서도 나도 전쟁을 지낸 세대가 아니어서 꽤 무심하다 설명했다. 북한의 위협이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실제적인 위협과 대립은 나쁜 결론으로 끝나지 않으리라고, 늑대가 나타났다고 해도 내 코앞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북한이 실제로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는 코앞이라고 할수도 있는 강화도 연미정을 갔다.
연미정에서 북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대충 보여줬다. (연미정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땅이 북한인 포인트가 있다.)
'저쪽이 북한이야. 우리는 같은 사람들, 우리의 친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기 위해 싸울 준비만 하는 사람들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든 남한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 대부분은 싸우면서 화해할 준비를 하지는 않아. 아마도 많은 젊은이들은 싸우지 않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리라 믿고 있을 거야. 아직 우리는 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인 거고.'
우리는 전등사를 보고 그 옆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온수리의 작고 아늑한 한옥 성당을 갔었다.
이 모든 작고, 매력적인.. 투어 가이드북에서는 볼 수 없는 포인트들을 친구들과 의미 깊게 나누었다.
이런 곳들을 소개하면서 나도 다시 돌아보는 것이 무척 좋았다.
우리는 한국에서 창덕궁을 갔고, 비원을 갔고, 경복궁을 가고, 남대문 시장도 갔었다.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가서 그 자리에서 산낙지를 맛나게 먹었고 ( 초고추장에 먹은 건 맘에 안 들었지만) 왕새우 튀김을 먹고 콜라를 마셨다. 남대문 시장에선 여러 명의 사나운 상인들과 불쾌하게 마주쳤지만 호떡이 맛있었고 귀여운 양말 1000원짜리에 깔깔대며 기분 좋게 골랐다.
한글로 문신을 하고, 찜질방에서 피로를 풀고, 때밀이를 경험하고 ( 대단하다 내 친구들!), 노래방에 가고, 점심으로 백반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삼겹살에 자몽 소주를 6병이나 마셨건만 모자랐는지 자정 넘어 뛰어내려 가 단지 옆 공원에서 자몽 소주 1병을 더 마시고 돌아오고, 자몽 소주에 엄청 맛들이고 나서는 급기야 편의점 아이스컵을 사서 자몽 소주를 넣어마셨다.
태미와 칼라는 확신하건데 나의 나라 한국을 매우 사랑하고 즐기고 돌아갔다.
모든 음식을 모든 문화를 존중하고 아끼고 배려하고 그 애정을 격하게 표현했다.
여기에 그 표현이 잘 안 보인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게으른 카메라를 누르는 손가락을 탓해야 하고, 모자란 글솜씨를 탓해야 한다.
사랑한다 내 친구들!
진짜 10일이 이렇게 짧은 줄 몰랐다.
너희들 가고 나서 너무 허해서 이렇게 조금 급하게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 쓰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짧은 줄 알았는데 우리 시간을 너무 진하게 썼나 보다. 담지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보고 싶은 친구들... 우리 또 6년 만에 다시 보지 않길 바라. 꼭 금방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