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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은 없다. 아픈 사람만 있을 뿐

HURT PEOPLE HURT PEOPLE

안녕하세요, 알이즈웰 전도사(성선설 전도사)입니다. 2014년에 성선설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어느덧 10여 년. 복이 많아서인지, 교직을 맡아 수많은 학생들과 성선설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대학생들(그리고 초중고등학생들과 일반 성인)의 궁금증이 대부분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히틀러, 무솔리니, 조두순, 조주빈과 같은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 들끓는데 어떻게 성선설이란 말을 할 수 있냐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우선 어떤 사람이 악한 언행을 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로 곧바로 귀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악한 언행의 원인(cause)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라는 결론은 논리 비약이지요.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 아닌 다른 무엇이 악한 언행의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요. 실제로 과거 중세에는 인간 본성이 아니라 사악한 마귀가 들려 사람들이 악한 짓을 한다고 믿기도 했지요.  

사실 악한 언행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라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여러 악한 언행들은 내가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을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살인, 강간이나 폭언 등타인의 악한 언행들은 과연 끔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나의 현생을 챙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만 같습니다.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는 모두 나와 상관 없는 책상물림들의 유희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항상 "나 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나의 잘못된 언행이 내 남편이나 아내, 나의 어머니나 아버지, 나의 아들이나 딸, 더 나아가서 내게 가장 소중한 여러 사람들에게 거듭 상처를 입힌다면,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나쁜 녀석" 또는 "답이 없는 쓰레기" 등으로 비하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지요. 또한 타인에게 상처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신에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은 이미 의학적-생리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오히려 본인이 그런 과학적 팩트를 모르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혀가며 자기 자신에게 데미지를 입혀간다는 것이 더욱 위험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다가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이면 이미 췌장암 말기 환자와 같아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차라리 타고난 심성이 소심하고 유약하여 타인에게 조금만 상처를 입혀도 자신이 괴로워하는 편이 오히려 이런 정신적 악순환(vicious cycle)로부터 보다 쉽게 탈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이겠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Xb-JneauRzs

<It hurts to hurt someone: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것이 실은 본인에게 상처입히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TED 강연>

저는 성선설을 10년 넘게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다른 분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감성코치 박대선 님의 "나쁜 사람은 없다. 아픈 사람만 있을 뿐"이라는 짧은 동영상을 접하고서 매우 공감했습니다. 박대선 님은 2022년 10월에 <서툰 어른 처방전>이라는 책도 펴내신 작가이십니다. 조만간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좀 더 배워볼 생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7JVPi0ba8

하지만 그 책을 읽기에 앞서, 제가 성선설 전도사의 입장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 아픈 사람만 있을 뿐"이라는 주제를 간단히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 "악한 언행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의 선천적 본성이 아니라, 내가 후천적으로 습득한 심리적 상처, 마음의 아픔이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내가 후천적으로 입은 심리적 상처가 타인에게 상처를 줄 명분은 되지 못합니다. 또한 길고 짧은 삶 속에서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리고 항상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입은 상처 그리고 그에 따른 두려움을 "사랑으로"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욱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마음 속에 큰 상처와 그로 인한 두려움이 자리한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여기서 "나쁜 사람은 없다. 아픈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했을 때, "아픔"은 의학적 관점에서 질병으로 분류된 상태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병의 레벨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좀 더 쉽게 말해 정신과를 찾을 정도가 아니더라도 많은 현대인들은 가슴속에 다양한 종류의 상처, 그리고 그로 인한 아픔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워서 타인에게 마음을 닫고 무뚝뚝해지거나, 자신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이에게 오히려 더욱 거칠게 대하거나,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상처 입은 "나쁜" 자신과 얽히는 것이 타인에게 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작은" 폭력으로써 문제 발생을 사전 차단하는 것이지요. 이렇듯이 마음의 상처를 해소하지 못하고 이것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우리가 "착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타인에게 무뚝뚝해지고 공감력을 상실하며, 자기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무관심한 언행들을 거듭합니다. 그 결과, 결코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하지요. 

하지만 이 정도는 오히려 약과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가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타인들 또한 이와 같은 상처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착각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 자신이 당한 방식 그대로 불특정 다수에게 갚아주고자 합니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놀랍게도 타인을 성추행합니다. 부모로부터 아동학대를 받은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똑같은 방식으로 괴롭힙니다. 사회적 차별(인종차별, 남녀차별, 직업차별 등)로부터 상처와 불이익, 부당함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나서거나 적어도 자신은 그와 같은 차별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생각해야 논리적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자신이 받은 상처와 그로 인한 분노를 연료 삼아" 이 차별적 사다리의 끝에 올라가 타인을 똑같은 방식으로 짓밟아 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상처를 입어 아픈 사람들이 그 상처를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을 알지 못할 경우, 도리어 나쁜 언행으로 자신과 타인 더 나아가 사회를 파괴하는 현상이 도처에 만연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인간이 악한 언행을 하는 원인(cause)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 "본인이 입은 마음의 상처 및 그로 인한 아픔과 두려움"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간 본성은 바꿀 수 없지만 잘못된 생각은 고칠 수 있고 아픈 마음은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우리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는 다행스러운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부모나 사회의 잘못된 언행들이 우리의 "인간 본성"에 어긋나기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언행들의 잘못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인간 본성이기에, 우리는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언행을 외부로부터 접할 때 인간 본성상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악이라고 보기에, 역으로 인간 본성을 선 또는 올바름 판단의 기준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이렇게 이해해야만 논리적으로 일관되며,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보편적 개선책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치료가인 샌드라 윌슨(Sandra D. Wilson) 박사는 저와 동일한 생각을 <HURT PEOPLE HURT PEOPLE(상처 입은 사람이 타인을 상처 입힌다)>라는 재치 있는 제목의 책에 담았습니다. 중학교 때 배운 문법 구조 분석을 적용하면, HURT PEOPLE(주어) HURT(동사) PEOPLE(목적어) 순이겠지요.

핵심은 BAD PEOPLE이 HURT PEOPLE하는 것이 아니라, HURT PEOPLE이 HURT OTHER PEOPLE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BAD PEOPLE이라고 판단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HURT PEOPLE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로 달라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의 어리석은 지난 행위들, 내 아들 딸들이 매일 보여주는 터무니 없는 언행들에도 보다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잘못된 행위들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사랑과 이해와 관심을 통해" 그 행위들의 원인을 파악하며 그에 대한 원천적 치유를 통해 그 사람을 살리고 나도 사는 솔루션을 궁구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으며, 나도 그들만큼 아프고 약하기에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용서의 심리학도 이 지점에서 비로소 성립의 근거를 갖게 됩니다.  

세상에 본성상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아픈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거듭 밝히건대, 이 아픔이 타인에게 악행을 저지를 명분이나 구실은 절대 되지 못합니다. 악한 언행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관심은 항상 결과보다는 원인에, 결과에 대한 처벌보다는 원인에 대한 인식에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처벌보다 문제에 대한 원인 파악이 항상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아니, 원인 파악이 되지 않을 경우 그 문제들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 여정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할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상처와 아픔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나 자신이 아픈 사람이다, 나 자신은 상처가 깊은 환자다"라는 점에 대한 자기 인정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 아픈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순간, 내 자신은 오히려 편안해집니다. 왜냐하면 아픈 것은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픈 것은 고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 자신이 자신과 타인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대한다고 느끼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면,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며 포기하는 대신에 "아픈 사람"으로 인정한 뒤 치유의 방법을 찾아나서도록 합시다. 수많은 치유법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결국 내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일만큼이나 내게 유익하고 기쁜 일이 없기에, 이 과정은 때로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면서도 내게 안심과 평안을 주는 여행일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샌드라 윌슨의 여러 저서 가운데 한국어로 출판되어 있는 <상한 마음으로부터의 자유> 링크를 소개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성선설 전도사였습니다. 알이즈웰!! 

https://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prdNo=258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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