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목을 그렇게 잘 짓지 못한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지도교수와 잘 지내는 법"이 아니라 "잘 다루는 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거든요.
히히.
사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고, 제 코가 석 자인데 누가 누구를 다루겠습니까. 제가 누구를 다룰 깜냥도 되지 않고요. 다만, 지도교수랑 잘 지내는 법은 만국공통 모든 대학원생들의 관심사일 것 같아서 한 번쯤 다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기에, 상당 부분 운이 작용합니다. 따라서 제 이야기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는 차원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사실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만큼이나 애매모호한 인간관계도 없을 겁니다.
이건 뭐, 상사랑 부하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공자왈 하던 시대의 스승과 제자도 아니고 (특히 북미의 학풍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서로 '일하는 동료'로 취급하기엔 그것도 뭔가 급이 안 맞는 것 같고요?
박사과정에서 지도교수는 흔히 professor라고 부르지 않고 supervisor라고 칭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선생님', '스승님'의 개념보다는 일의 진행과정을 '감독'하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 supervisor의 개념을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수 바이 교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이기 때문에, 북미에서도 철저한 도제식 교육방식을 통해 '스승님'의 권위가 살아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요?
저는 첫날부터 제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이런 말을 남기더군요.
"너는 미래의 내 동료고, 나는 그 미래의 동료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야"라고요.
우왕.
제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성격 (진짜) 좋은 판다곰'입니다.
인맥 넓고, 하는 일 많고, 1년의 절반은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죠. 보통은 어떤 토픽에 대해 전문가라고 말을 해도 특정 지역 (e.g., 미국, 캐나다, 유럽, 동아시아, 등)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분은 아시아/북미/유럽을 다 다루며 최근엔 인도와 중동 문제까지 건드리려고 합니다. 영역도 다양합니다. 정치경제, 안보, 무역, 외교관계, 등등. 저같이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관심 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죄다 맡아서 하고 계세요. 일단 다른 것보다 체력이 넘사벽인 것 같습니다.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하는데, 나이가 50 중반을 넘어도 매년 새해맞이 얼음물 입수를 하는 걸 보니, 매우 특이한 케이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판다곰은 여러모로 특이합니다. 일단, 권위의식이 1도 없습니다. 저도 처음 몇 개월은 Dr. 판다곰으로 불렀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그냥 "hey, Panda"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ehehehe" 하는 웃음소리가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집니다. 권위의식은 둘째치고 아직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그의 아내와 동료 (그를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제 석사 지도교수님을 포함해서요) 모두가 인정한 사실입니다. 본인만 몰라요 ㅎㅎ
판다곰은 박사과정이 행복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학생의 well-being에 진심으로 신경을 씁니다. 이 긴 박사과정을 보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죠. 제가 아플 때, 집에 큰일이 생겨 잠시 일에 집중을 못할 때, 번아웃이 왔을 때, 발목을 삐었을 때, 약물성 발진이 생겼을 때 등등, 여러 가지로 일에 지장을 주는 일을 '상사'에게 말함에 있어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 상태를 잘 알고 있으니 필드워크 일정이 무리였거나 너무 일이 많아 보이면 먼저 휴식을 권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교수가 먼저 휴식을 권하다니...! 아름답지 않습니까? 비단 저에게만 잘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판다곰의 수업 조교를 여러 번 했었는데요. 그는 학부생을 거의 업어 키우다시피 합니다. 잘하는 친구들에게는 더 잘하라고 응원해 주고, 못하는 친구들에게서도 반드시 장점을 찾아냅니다. 뾰족하게 '어디 틀린 곳 없나' 하고 학생들의 에세이를 채점하던 제가, 판다곰 선생 덕분에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어차피 모든 과제가 완벽하지도 않고, 저 조차 완벽하지 않은데, 에세이 못 썼다고 탈탈 털어봐야 이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 하나 없더라고요. 무언가를 하려 노력했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잘한 것은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부족한 부분은 부드럽게 말해도 세상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판다곰은 사람의 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늘 강조하죠. 실제로 그는 동네방네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친화력도 짱입니다. 출장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옆 자리 승객을 본인의 family doctor로 섭외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참고로 캐나다는 현재 의사가 부족하여 family doctor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학업과 관련해서도 어느 것 하나 그의 도움 없이 진행된 것이 없습니다. 제가 필드워크를 다닐 때에도 거의 판다곰의 인맥에 의존했을 정도이니까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는 첫 문을 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데, 이때 판다곰의 태평양 인맥/친화력/말빨이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이후의 인터뷰 및 현지조사는 제가 알아서 했지만, 첫 문을 열 때의 막막함을 타개하는 데에 판다곰 선생의 공로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판다곰과는 같이 하게 된 일이 많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공저도 해보고, 프로젝트 기획도 해보고, 수업도 같이 짜보고, 그의 집으로도 초대받아서 몇 번 가곤 했네요. 그의 부인과도 종종 만났고, 그 만남이 캐나다뿐 아니라 아시아에서까지 반복됩니다. 그러고 보니 3개국 필드워크를 다닐 때에도 각각의 나라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는 1년의 절반을 날아다닙니다). 그중 대만 필드워크 때에는 그도 안식년을 보내러 대만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판다곰 선생과 등산도 가고 티하우스도 갔네요 ㅎㅎ
판다곰은 비밀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밀로 부치고 싶으면 "비밀이야!"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본인도 자기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터놓는 스타일이라, 저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충 압니다. 겉으로 보기에 순탄해 보여도 백조가 미친 듯이 물 밑에서 발을 젓듯이, 다들 각자의 깜냥을 해내느라 피똥(...)을 싸면서 살아내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역경과 고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그토록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늘 감탄을 불러일으키지요. 판다곰은 자연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100평짜리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며, 각종 과일과 채소를 길러서 먹습니다. 판다곰의 아버지가 가르쳐주셨다는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블루베리 잼을 만들어 매년 저와 짝꿍에게 전달해 주시죠. 저도 텃밭에서 기른 각종 한국 야채를 줘 봤는데, 애호박이며 오이며 청양고추를 싹 다 오븐에 구워서 먹고는 맛있다고 사진도 보내주더라고요.
저는 판다곰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제가 대만에서 바퀴벌레에 시달린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판다곰은, 본인이 대만에 갈 때마다 메신저로 "오늘은 바퀴벌레 없네" 혹은 "오늘 한 마리 잡았어"라고 저에게 꼭(!) 말해줍니다. 자기 숙소에서 어느 날 아침, 거대한 검붉은 바퀴벌레 (덧: 고생대 때부터 내려오던 종이라고 합니다)가 이마에 앉아서 아침잠에서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굳이 저에게 합니다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
이제 판다곰의 어두운(?) 면을 말해볼까요.
세상이 너무 아름답기만 하면 현실성이 없으니까, 이 세상의 균형을 위해 장점 가득한 우리 판다곰도 치명적인 단점을 세상과 공유합니다. 그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time management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일단, 판다곰은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스케줄만 보면 대통령 스케줄인데, 대통령 같은 전담 비서팀도 없고 본인이 모든 것을 다 관리해야 합니다. 게다가 판다곰은 예스맨입니다. 물론, 그의 말을 빌자면, "하루에도 300통씩 오는 이메일과 그중 5-70건에 해당하는 부탁의 절반 이상은 거절한다"라고 하네요. 그가 받는 부탁은 정말 가지각색입니다. 글 써달라는 부탁, 프로젝트 같이 하자, 워크샵/학회 가자, 무슨 공개 강연 하자, 새로운 수업 개설하자, 등등은 그나마 학술적인 부탁이고요. 높으신 분들이 판다곰을 자주 부르기도 합니다. 점심 먹자, 저녁 먹자, 누구 귀한 사람 왔다더라, 너도 와라, 등등. 학생들 역시 판다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요. 오피스 아워에 만나고 싶다, 내가 하는 연구 및 작성 중인 기말 페이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추천서 써 달라, 프로젝트 참가 시켜달라, 연구조교로 써달라, 이런 책을 읽고 내 생각은 이런데 피드백 좀 줘라, 뭐 등등. 말하자면 끝이 없겠어요.
한 때 그의 Microsoft calendar 접근 권한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스케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재미가 쏠쏠했지요. 많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무수히 많은 일을 맡아서 일정이 중복되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요. 그의 부인이 판다곰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특명을 내리길, 토요일은 컴퓨터 프리 데이로 지정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 되면 미친 듯이 이메일을 처리하는 판다곰을 볼 수 있습니다. 일요일 저녁을 마치고 빨리 일어나고 싶어서 식탁에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판다곰이 눈앞에 선합니다.
박사 과정 초반에는 이런 최악의 time management를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물론 미팅을 제 때맞춰서 시작한 적도 10번 중 2-3번이었고요. 늘 15분에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다 보니 아예 미팅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마주칠(?) 일이 없어 그럭저럭 견딜만했습니다.
박사 과정 중반쯤, 공저 논문을 작성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제가 한 분량을 돌려주면 자기가 2일 내로 수정/보완한 후 저에게 다시 돌려줄 테니 추가 보완을 하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참고로 저는 제 계획이 어그러지면 성질이 많이 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생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하나의 일만 바라보고 살 수가 없습니다. 한 프로젝트를 위해서 학기 중 1-2주일 정도를 할애하면 많은 편이에요. 수업을 듣거나 학과 내에서 요구되는 사항들을 수행하기에도 한 주가 벅차거든요. 판다곰과의 공저 논문은 (늘 그렇듯이) 갑자기 추가된 일이었고, 그의 요청사항을 맞추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을 마쳤습니다 (물론, 그는 절대 잠을 줄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요. 본인이 약속한 2일 내로 연락이 오리라 애초에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메일을 보내봐도, 메신저로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봐도, 1주일, 10일, 기약 없이 제가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일부터 하면 되지'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그때 제 깜냥이 충분치 않아 그처럼 유연한(?) 전환이 힘들었고요. 무엇보다 언제 연락이 올 지 몰라 다른 작업을 손도 못 대는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났습니다 (저는 멀티태스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학술적 과제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더더욱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판다곰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는 항상 본인이 왜 늦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정말 구구절절 다 해줍니다). 승질이 있는 대로 오른 저는 정중한(그렇지만 매우 빡친) 이메일을 썼습니다. 여봐요, 판다곰 선생. 네가 바쁜 것 누구보다 잘 알고, 가족과의 행사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고 네 말이 다 맞는데, 나한테 미리 언질을 줄 수 있지 않냐. 그런 거 없으면 나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다른 일을 하지도 못한다. 오늘 파일을 돌려주기로 했지만 못 주겠으면 못했다는 말만이라도 해라, 그래야 내가 네가 못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너도 나도 시간 손해 아니냐.
그 이메일에 별다른 답은 없었던 것 같네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마도 앞으로 쭉), 그는 여전히 많이 늦고 몇 년째 마치지 못한 프로젝트도 우릴 기다리고 있는 둥, 판다곰의 time management에 큰 개선은 없습니다. 다만, 그는 저에게 재깍재깍 경과보고(?)를 합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 가 있어서 연락이 느릴 거고, 무슨 일이 있어서 이번 데드라인은 못 맞추고, 그래서 다음 몇 날 며칠, 무슨 요일 오전 5시간 정도를 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고, 등등. 읽다 보면 결국 '당분간 이 일은 못한다'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알려주는 게 어딘가요. 저는 미리 사정 설명하는 사람에겐 화내지 않아요. 사정은 늘 생길 수 있는걸요.
판다곰과 같은 스타일은 함께 일하기에 적격이라고 말하긴 힘듭니다. 저뿐 아니라 그의 동료, 프로젝트 파트너들, 숱한 학생들 모두 그의 (최악의) time management의 희생자입니다. 그런데 이 판다곰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한참 늦을 때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다가 그의 정중한 이메일과 구구절절한 사정 설명, 그리고 직접 만났을 때 '에헤헤헤헤'하고 웃는 모습과 스마일 인형 같은 얼굴을 보면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가 저의 지도교수라서 화를 못 내는 것 아니냐고요? 음. 뭐, 그 부분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지위'보다는 '무해한 웃음'이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 판다곰과 같이 일을 하고 그의 supervising을 받으면서, 저도 나름 요령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변치 않고요. 대통령이 온다 한들 판다곰의 스타일이 변할까요. 근데 기껏 학생에 불과한 저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포기했습니다. 판다곰은 항상 늦을 거고, 항상 데드라인을 못 지킬 것이라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화가 전혀 안 나더라고요.
다만 데드라인이 코 앞인데도 판다곰한테서 답장이 안 오거나 그가 컴퓨터를 못 쓰는 곳에 가 있으면 저만 손해이니까, 저도 나름의 전략을 씁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은 자주 reminder를 줍니다.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요. 물론, 그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저에게 답을 줘야 할 일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1주일이 넘어가면 저는 참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는 답하기 곤란한 일일수록 답장을 더디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프로젝트 초안을 내가 썼는데, 한 번 봐줄래?"라는 이메일에는 답이 느릴 수 있습니다. 일단 초안을 읽어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거든요. 그의 대통령 버금가는 스케줄을 고려하면 무언가를 진득하니 읽고 깊고 깊은 분석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물론, 이메일 보내는 타이밍을 잘 맞추긴 해야 하지만요. 제가 그것까지 어떻게 맞춥니까). 한 번은 판다곰과 미팅을 하는 다른 학생을 통해 "너굴이가 너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용케도 먼저 알고 (제 발 저린 스타일입니다) 선수를 칩니다. 제 친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너굴이가 나 찾지? 나 곧 답장할 거야"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 친구는 그날 이후 저와 판다곰을 보면서 지도학생과 지도교수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놀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너굴이가 맨날 판다곰 추격하는걸 (she's chasing him down)".
자, 판다곰의 무해한 웃음이 많은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한다 해도, 지도교수의 가장 큰 책임에서 그를 면제시켜주진 않습니다. 그 말인즉슨, 언젠가 그는 저의 300페이지에 달하는 박사 논문을 진지하게 읽고 비상한 머리를 굴려서 분석적 코멘트를 줘야 한다는 뜻이죠. 저보다 먼저 졸업한 동료들이 이 마지막 단계에서 마음 졸이고 오지 않는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똥줄 타는 모습을 많이 본 저로서는, 일찌감치 전략을 세웁니다. 이름하여, '가랑비에 옷 젖는 전략'이었습니다.
판다곰은 머리가 비상합니다. 그가 집중해서 무언가를 분석하고 써낼 때면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하룻밤에 8000자를 후딱 쓰는 사람인 걸요. 분석 모드의 판다곰이 오시면 질문과 코멘트가 날카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지도학생들은 말하곤 합니다. 그의 무해한 웃음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속으면 안 된다고. 박사과정의 매 단계마다 그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답을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오기까지 7번이고 10번이고 draft를 돌려보내 다시 쓰게 만듭니다. 학생들 -- 특히 학부생이나 석사생 -- 중에는 그가 쉽게 졸업시켜 줄 것이라 착각하는 순진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건 크게 퀄리티를 따지지 않는 학부 졸업논문이나 석사 논문에 한해서만 적용됩니다. 판다곰은 박사 논문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깐깐합니다.
이렇게 기준도 높은데 제 때 리뷰를 안 해 줄지도 모르는 지도교수라니!
하지만 이건 비단 판다곰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공을 막론하고 박사 졸업 단계에서 지도교수랑 틀어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요. 상당수는 논문 챕터 리뷰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제 때 안 해주거나,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서 코멘트가 '논문 수정'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나오는 경우이지요. 굳이 교수들을 위한 항변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도교수들도 사람이라는 점을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그들도 업무가 과중하고 본인의 연구를 할 시간도 쪼개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장문의 글이 투척되었다고 칩시다. 그 글은 누군가의 일기장이라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글을 쓸 때처럼 꼼꼼하고 분석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리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요되지요. 그걸 하룻밤에 하려고 들면 교수들도 거부감 듭니다. 특히 본인이 친숙하지 않은 주제일 경우 더더욱.
그래서 저는 '가랑비' 전법을 썼습니다. 제 연구 방향을 그와 끊임없이 공유하는 것이죠. 연구 주제, 가설/주장 등을 판다곰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일단 다 취했습니다. 공저도 좋은 방법이고요. 미팅도 정기적으로 제가 요청한다든지, 혹은 이메일로 저의 progress를 보고한다든지의 방식으로 그의 기억에서 제가 소멸되지 않게끔 노력했습니다. 일단 제 연구결과를 그와 공유할 기회를 많이 포착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아이디어로 글을 쓸 거고 --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흘려주면 찰나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그에게서 흥미로운 피드백이 돌아옵니다. 피드백은 반드시 글로 쓴 형태일 필요가 없어요. 그저 학술적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아이디어는 샘솟을 수 있으니까요. 관건은 그에게 제 연구를 많이 노출시켜 친숙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리뷰 단계에서 똥줄 타면서, 그가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을 부디 찾아내어 나의 글을 읽어주길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아는 내용이니 보다 빠르게 제 챕터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판다곰은 순발력이 좋은 동시에 단기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제 아이디어를 알리고 발전 과정을 공유하는 편이 그의 호기심을 유지시키는 데에 더 적합했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그는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저의 리뷰 요청에 응했고, 통찰력있는 피드백을 주었으며, 다른 학생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저는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제가 잘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당시 판다곰이 제 논문과 데드라인들을 잘 기억해준 덕분이지요. 참 다행입니다.
최악의 time management만 빼면 성격 좋고, 권위의식 없고, 사람 착하고, 태평양 인맥을 지녔고, 비상한 통찰력을 지닌 판다곰을 지도교수로 둔 것은 제 행운 아닌가 생각합니다. 네, 맞아요. 결국 "잘 지내는 법" 혹은 "잘 다루는 법" 따위는 없습니다. 건방지게 누가 누굴 다루겠어요. 그저 '저와 판다곰은 만날 인연이었고, 운 좋게 좋은 인연을 잘 유지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요약 같네요.
DNA가 비슷한 걸로만 따지면 저는 석사 지도교수님의 스타일과 잘 맞았습니다. 직설적이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며 결과에 조금 더 경도되어 있는 방식이요. 가감 없이 핵심부터 찌르는 훈련은 박사 과정 전체를 통틀어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사람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바로 말하는 것은 훈련의 결과 라기보다 기질과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 대화에서도 잘 드러나요. 석사 지도교수님이나 저나 호불호가 매우 분명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러한 칼 같음에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비슷한 점이 많았기에 제가 따로 적응할 필요 없이 그저 편했습니다. 그렇지만 전기차 배터리에 화재가 나면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가 건물 하나를 삼키듯이, 비슷한 성정이 만나서 원래도 공고한 기질을 강화시켜 버리니 제가 부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한 번, 두 번씩 부러지면서 깨달았어요. 오래 살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겠구나.
판다곰은 그 존재 자체로 저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주어진 현상의 장점부터 그의 눈에 포착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남들은 비현실적이라며 비웃을 '세계 평화'를 바라는 그 순수함이 신기하면서도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곰으로 만들까. 혹자는 '원체 성격이 좋은가 보지' 혹은 '좋은 집에서 태어나 잘 먹고 잘 자라고 지금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와서 뾰족할 틈이 없는 것 아니야' 등등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판다곰의 인생 역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판다곰이 구구절절 다 이야기해 준 덕분에 그의 인생을 조금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년기는 제가 알 길이 없지만, 성인이 된 이후 판다곰이 겪어야 했던 인생길은 그렇게까지 평탄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한 사람의 성격을 바꿔버릴 정도로 힘든 순간도 많았으리라 짐작할 뿐이지만, 판다곰은 그저 웃는 쪽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판다곰은 저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모든 일에 칼 같이 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죠. 그 대상에는 제 자신도 포함됩니다. 정치학 박사로써 갖춰야 할 자질에 관해서도 정말로 중요한 3-4가지를 체화하는 것에 집중할 뿐,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둬도 좋다고 말이에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만 얻어가면 되는 것이죠. 완벽주의적 성향을 하루아침에 뿌리 뽑을 순 없겠지만, Plan B, Plan C... Plan Z로 가도 죽지 않으니 매사 전전긍긍할 필요 없다는 그의 말도 이제는 이해합니다. 직사각과 정사각으로 이뤄진 레고 인형 같았는데, 모서리도 조금 다듬어지고 동그라미 부품도 더해진 느낌이에요. 이런 변화에는 캐나다의 분위기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쟁의 화신 같은 우리 학과의 분위기를 고려하자니, 모든 공을 판다곰에게 돌리는 것이 맞겠습니다. 무엇보다 제 지도교수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저는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매 고비마다 험상궂게 부러져 나자빠져 깊고 깊은 우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겁니다.
아무쪼록 판다곰의 건강을 진심으로 빌며 한국에서 홍삼 한 박스 갖다 줬어요.
그와의 인연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