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라이팅 연옥에 빠져 꼬르륵거리고 있었는데, 한글로 글을 쓰게 되니 무척 반갑(?)네요. 일기는 정말 신나게 두들기며 써제겼습니다만, 어휴, 논문 쓰기는 대체 언제쯤 쉬워질까요... ㅠㅠ
첫출발이 나쁘지 않았으니, 2년 차 훈련도 무난하게 흘러갈 줄 알았어요.
뭐, 첫 학기 수업 구성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늘 그랬듯이 '어떻게든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했답니다. 필수적으로 맞춰야 하는 학점 요건 때문에, 썩 끌리지 않지만 듣게 된 수업이 2개나 되었어요. 하나는 필수과목인 정치 이론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제관계의 세부 과목이었는데, 제 관심사와 썩 맞지는 않았으나 그나마 가장 덜 지루해보이는 수업으로 골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철학/정치이론 (political theory)을 전공하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대단히, 존경합니다. 농담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어요. 정치이론을 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천재라고. 같은 정치학이라도 세부 전공에 따라 다루는 주제가 매우 상이할 수 있는데요. 저는 데이터가 있고 실재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를 분석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권력'이니 '제도'니 하는 것들은 전부 추상적인 개념이지요. 하지만 이 추상적인 개념을 여러 가지 지표로 측정하여 일정 패턴을 보이고, 왜 그러한 패턴이 발생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제 주된 업무(?)입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설명하는 것을 '추상성의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는 아주 관념적인 무언가가 자리하고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서 차츰 구체화를 더해갑니다. '힘'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사다리의 중간 부분 정도에는 군사력, 경제력, 소프트 파워, 등이 자리할 수 있겠지요. '힘' 보다는 조금 구체적이지만 여전히 추상적입니다. 사다리를 계속 타고 내려오다 보면 군비 증강률, 국방비 지출, GDP 증감률, K-pop 아이돌들의 음반 판매량, 여권 파워, 등 다양하고도 한층 더 구체화된 '힘'의 하위 개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결국 연구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을 실증적인 데이터로 얼마나 잘 나타내는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저는 정치이론에 대해 말을 보탤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 짧은 식견으로 보건대 정치이론가는 추상적인 개념과 규범적 이슈를 위주로 정치적 현실의 근본적 원리와 이상을 탐구합니다 (벌써 어렵네요...). 이들은 이론적 사고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학자들과 같지만 경험적/실증적 방법론이 아닌 철학적 방법론을 활용합니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한나 아렌트, 등등, 다 정치이론가들이 분석하는 대상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주로 "정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왜 정당한가?" "삼권분립이 왜 이상적인가?"와 같이 보편적 가치, 윤리, 정당성 등을 다루지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경험적/실증적 방법론을 통해 데이터로 주장을 증명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상적인 상위 관념을 '관념'으로만 분석하는 일에 젬병입니다. 즉, 상위 관념을 하위 개념으로 쪼개고 이들이 다른 개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풀어내는 일 말이죠. 일단 제가 그 작업을 할 만큼 비상한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고, 관념을 관념으로 설명한다는 작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또 모르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정치학자들이 대체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실증분석보다는 규범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 연구를 하다가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많이 보다 보면, '(데이터) 다 소용없다'는 현타를 느껴서 그럴지도요...).
정치이론 수업의 교수님은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좋으신 분이었으나, 수업을 따라가기가 대단히 힘겨웠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으면 그녀가 천재라는 것은 잘 알겠으나, 당최 그 논리전개 방식이나 주장이 마음이 와닿지 않았어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에요. 다만, 그 논리를 설명하는 방식이 제 귓등에만 앉았다가 뇌로 들어가지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에 참석하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꿔다논 보릿자루도 저보다는 많은 부시럭 거렸을 거예요. 나름 활발하게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이어가던 저는 온데간데없고, 입술 사이에서 공기라도 새어 나올까 봐 3시간 내내 '가로왈'의 형태로 입을 붙이고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그 얼뜨기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정말 머저리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입을 몇 번 열어봐도 덜 머저리 같아 보이진 않았어요. 물론, 머저리가 되든지 말든지 하고 싶은 말을 맥락 없이 내뱉는 학생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무슨 이유에선지 입을 열어서 머저리가 되는 것보다는 침묵을 택했습니다.
다른 국제관계 수업은 상황이 나았을까요?
일단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만 보면 훨씬 나았습니다. 문제는 담당 교수의 티칭 태도가 저랑 안 맞았다는 점입니다. 강의계획서만 보면 특정 주제를 기반으로 13주에 걸쳐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꽤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풀어보고 싶었던 이슈가 수업계획서에 빠져 있길래, 교수에게 수업 등록 전 이메일을 보내 물어봤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이슈에 대해 수업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냐고. 교수는 매우 열린 자세로 답장을 주며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지요. 하지만 수업을 진행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전체 수업이 '제도'에 관한 것이라면, 규범에 대한 제도도 있고, 금융 기관도 있고, 사법 기관도 있고, 입법 기관도 있고, 등등 다양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관심 있는 제도가 강의 계획서에 없다고 해서 수업 시간에 그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담당 교수의 스타일이었는데요. 그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해 새로운 토론 주제를 던지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건 우리 수업 범위에 해당하지 않으니까 나중에 하자"라는 식으로 흐름을 끊었습니다.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나중에 다룰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여러 번 끊김을 당하니까 그냥 입 다물고 있으라는 뜻으로 들리더군요. 정치이론 수업에서의 고뇌가 옮겨온 것인지 이 수업에서도 점점 입을 닫게 됩니다. 닫고 싶어서 닫은 것은 아닌데, 중간 평가에서 "좀 더 참여도를 늘리면 좋겠음"이라는 코멘트를 받으니 더 입을 닫고 싶더군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교수는 제 중국인 동료에게도 비슷한 평가를 한 전적이 있습니다. 아, 물론, 제 다른 한국인 동료에게는 나름 친절(?)한 편이었다고는 하나, 자기 관심사 외의 것을 말할 경우 차단당하는 느낌은 똑같이 받았다고 하니 해당 교수의 특징이 그런가 봅니다.
정치학과 수업에서 침묵의 미덕을 자랑하며 신비한 동양인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던 (그리고 속으로 곪아가던) 저는, 중국어 수업에서 유일하게 입을 뗄 수 있었습니다. 정치학과에서 중국어까지 해야 하냐고요? 그건 아니고, 제가 중국어를 늘 배우다 말다 하던 터라 커리큘럼 좋기로 유명한 학교 수업을 활용해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생각보다 수업이 힘들어서 매일같이 중국어 숙제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해당학기에는 영어보다 중국어를 더 많이 쓴 것 같군요.
2년 차 시작 무렵, 제가 지내던 기숙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보통 기숙사 인원이 대거 물갈이됩니다. 평균적으로 2년 정도 살다가 다른 기숙사로 옮기거나 아예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큰 집을 렌트해서 같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해에는 기존 인원의 80%가 이사를 나갔습니다. 첫 해의 저를 보듬어준 사람들이었고 그들 덕분에 기숙사를 집처럼 생각하고 살 수 있었는데, 친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빠져나가니 너른 기숙사가 더 넓어 보였습니다. 물론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죠. 새 룸메도 생기고 중국인 친구도 생기고 했지만, 왜인지 첫 해만큼 제가 새로운 사람을 두루 사귀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업에서 느끼는 불만족감이 커지고, 1년 차만큼 해맑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안감이 커졌기에 타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겠지요. 다 같이 먹는 아침과 저녁을 스킵하거나 재빨리 먹어치우고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일상이 이어졌으니까요.
사실, 제가 정치학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적고는 있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 중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잖아요. 기숙사에서도 누가 누구랑 썸을 탄다거나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기가 많지요. 첫 해의 무수히 많은 '사랑과 전쟁'을 직관하면서 늘 귀만 쫑긋거렸는데, 제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제 옆에 붙어있는 제 짝꿍도 역시 같은 학교 다른 학과 박사생이었습니다. 저보다 한 해 먼저 입학한 그는 쭉 off campus에서 살다가 이 기숙사에 사는 같은 과 학생의 추천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더라고요. 크게 교우관계를 넓힐 생각이 없었던 저는 밥만 퍼먹고 사라지기 바빠서 이 '한국인'의 존재를 한 달이 넘도록 몰랐어요. 1년 차부터 저랑 친했던 친구가 갈라 파티에서 새로운 한국인이 있다며 소개해준 덕에 겨우 존재를 알았지요. 그러고 보니, 오며 가며 멀리서 윤곽만 보던 사람이었네요. 저는 처음에 일본인인 줄 알았어요. 곤니찌와, 라고 인사할 뻔했지 뭐예요.
대부분의 만남이 그렇듯이, 저희도 특별할 일 없이 시나브로 가까워집니다. 오랜만에 한국어를 할 수 있어서 입이 터진 저는, 처음 그의 존재를 확인한 자리에서 짝꿍에게 1시간 정도 한국어 수다를 내리꽂았죠. 인내심이 대단한 친구였어요. 어디 앉은 것도 아니고 파티 끝나고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서서 그걸 다 듣고 있더라고요, 세상에. 저희도 그러다가 몇 번 말 나누고, 소소한 선물 주고받고, 애들 모아서 밥 먹으러 나가고, 그러면서 친해졌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에게 자꾸 뭘 갖다 주는 것이 짝꿍의 애정 표현이었나 봐요. 저는 그냥 제가 밥도 잘 안 먹고 맨날 도서관으로 돌아다니니까 짠해 보여서 하나씩 던져주는 줄 알았거든요. 뭐 저도 곰탱이는 아니니까, 도토리 선물하는 다람쥐처럼 자꾸 방문 앞에 먹을 걸 두길래 '관심이 없진 않나 보구나'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는 이 각박한 박사 과정을 같이 헤쳐나가기로 합니다. 꼭 도토리 선물을 받아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닌데, 짝꿍은 아직도 자기가 먹을 걸로 저를 꼬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숙사 친구들과 굳이 어울리지 않아도 짝꿍이 있으니 놀 거리가 더 많아졌어요. 첫 해에는 주로 학교 근처에서만 서식했었는데, 운전을 할 수 있는 짝꿍을 두니 활동 반경이 매우 넓어졌습니다. 저보다 먼저 이 도시에 정착한 자 답게, 각종 관광명소를 잘 데리고 다녀주더라고요. 얼마나 빨빨거리고 싸돌아 다녔는지, 둘이 만난 첫 학기에는 둘 다 저축을 전혀 못 했답니다.
사랑처럼 학업도 수월하면 좋겠거늘. 안타깝게도 사랑이 찾아왔으나 마음이 곪아가는 것을 막을 순 없었어요.
수업에서 자기 효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매주 수업 가기 전 코뚜레에 걸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도교수에게라도 고민 상담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늘 그랬듯이 '스스로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죠. 그렇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이하고 곧이어 두 번째이자 코스웍 마지막 학기가 옵니다.
마지막 학기 수업은 더 헬(hell)이었어요. 정말 우울의 정점을 찍습니다.
아마 박사과정 들어온 후 처음 겪는 고난의 시절이었을 겁니다. 여기에는 학과의 방법론 커리큘럼이 개판이었다는 아주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저희 학과는 양적 방법론 역량을 강화하고자 이런저런 교수를 뽑던 중이었는데요, 새로 임용된 교수가 방법론 커리큘럼의 두 번째 수업을 맞게 됩니다. 이 커리큘럼에 대해 잠시 말씀을 드리자면, 단계별로 총 3개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당시에는 2번째 수업을 정기적으로 개설하지 않았어요. 필요하면 다른 학과(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비슷한 수업을 듣고 학점을 인정받거나, 운에 맡기며 2번째 수업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었죠. 물론, 학과에서 언제 열릴 예정이라며 공지는 해 주지만, 방법론이란 것이 일종의 수학과 비슷하여 앞 단계 수업을 듣고 다음 단계 수업을 연달아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인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죠.
진짜 문제는 새로 임용되어 해당 수업을 처음 맡은 교수가 본인이 정치학자인지 경제학자인지 분간을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냥 봐도 경제학과 커리큘럼 그대로 베껴온 것 같았거든요. 물론 정치학에서, 특히, 양적 방법론을 주로 활용할 경우, 경제학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할 수 있다면 큰 자산이 됩니다. 단순히 통계 프로그램을 돌려서 숫자놀음하는 것으로 분석의 완결성을 말할 수는 없으며, 무수히 많은 이론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계량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이 '이해'가 반드시 수식을 증명해낼 수준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거면 경제학과를 가겠지요). 연구자의 주 전공이 방법론이라면, 네, 경제학자에 준하는 지식을 갖고 있어야겠죠. 하지만, 정치학자는 결국 정치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특정 방법론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 방식은 경제학, 역사학, 철학, 등 무궁무진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정치학과'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경제학자들처럼 수식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방법론을 실질적으로 써먹기 위해 필요한 기본개념을 가르치고 그 방법론을 활용해서 어떻게 분석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정치학의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훨씬 더 많은 방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저희 학과에서는 당시 이런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요. 3개의 수업 중, 첫 번째 수업이 아주 기본적인 통계학 개념을 다루게끔 계획되었다면 (이미 석사 과정에서 비슷한 수업을 들었어도 필수적으로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조금 발전한 경제학/통계학 개념을 다뤄야 하잖아요? 애석하게도 이 신입 교수는 수업의 수준을 경제학과 석사 수업 수준으로 올려 버립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수업 들으면서 하도 화나서 제가 다음 학기에 경제학과 수업을 아예 청강했거든요. 커리큘럼이 똑같더라고요. 뭐, 해당 교수는 그럴 수 있다고 쳐요. 막 임용되었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을 수 있죠. 문제가 심각해서 학생들에게 항의가 들어오면 학과장 선에서라도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거나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 수업은 그렇게 유야무야 지속되었습니다. 아, 더 큰 문제는 '학생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이 어려운 수업을 맡았다는 점이었을까요.
경제학과 석사 수준의 이해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던 저와 제 동료들은 정말로 울면서 신입 교수의 수업을 듣습니다.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고요. 코스웍 마지막 학기라서 '다음 학기'를 노릴 수도 없습니다. 첫 2년 안에 36학점을 다 채워야 하니까요. 모든 클래스메이트들이 2주에 한 번씩 과제를 하다 웁니다. 저도 멘털이 여러 번 부서지다 못해 바스러졌지요. 아직도 이 당시 밤새서 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그 무력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노력해 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2주에 한 번씩 맞닥뜨리는 건 생지옥과 같았어요. 그 당시 밤샘 과제를 했던 연구 공간은 지금 지나치면서 봐도 그때의 그 암흑 같던 절망감이 떠오릅니다. 과제 수준이 어땠냐고요? 마치 프랑스어를 처음 배워 이제 겨우 인사말 날릴 수 있는데 과제는 불어로 에세이를 써오라는 수준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교수랑 딜을 시도합니다. 어차피 이 방법론 쓰지도 않을 건데, 숙제 면제해 주는 대신 학점을 B로 주고 자기를 살려달라고 했대요 (물론,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그나마 나머지 다른 이론 수업 때문에 아주 망가지지 않고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첫 해에 미국교수에게 받았던 독침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습니다. 특정 문제점을 누군가 입 밖에 꺼내서 말하는 순간, 그 문제가 실제로 문제인지와 상관없이 정말로 문제가 되어 버린, 그런 형국이랄까요. 게다가 이전 학기 수업에서 '가로왈' 입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더니 점점 입을 떼는 것이 더 어려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이론 수업 교수의 수업 방침이 전혀 폭력적이지 않고 관대한 사람이었기에 버텼습니다만, 입을 떼는 순간 쏟아져오는 눈동자들을 보며 심장이 뛰는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누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때는 조금씩 긴장을 하죠. 하지만 제 상태는 '조금'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나중에 상담가를 만나면서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제가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고 스스로를 쪼아대기 바빴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업 준비도 괴롭고, 수업에서 제가 원하던 대로 말을 내뱉지 못하면 더 자괴감이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죠.
지금에서야 명확히 아는 것입니다만, 저는 제 머릿속의 생각, 정보, 의도 등이 언어 장벽을 만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과정을 크게 못 견뎌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 아픈 일이 될 줄은 몰랐어요. 제 고민을 들은 제 친구들과 지도교수 모두 저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냐, 너굴아, 나는 지금 네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겠다니까" 라며 아무리 말해줘도, 제가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신건강이 크게 나빠지는 상황이 옵니다. 물론, 제가 소리나 언어에 민감하여 이 부분을 유난히 크게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 당시 '한국어로 말하는 너굴이'와 '영어로 말하는 너굴이' 사이에 간극이 꽤 크게 벌어져 있었다는 점이에요. 저는 MBTI 테스트를 신봉하지는 않습니다만, 심심풀이로 하는 이 테스트에서조차 한국어로 할 때와 영어로 했을 때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앞자리가 E에서 I로 바뀌었거든요. 영어로 말할 때 훨씬 더 조심하고 생각을 많이 한다는 방증이었지요. 심지어 제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입을 열기 전에는 입술이 살짝 떨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백인 남성 앞에서 더 크게 나타났는데요. 그렇습니다. 그 독침 날리던 미국교수가 바로 백인 남성이었지 뭡니까. 점차 혼란이 커져만 가더니 정체성이 섞이는 느낌까지 듭니다.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렇듯, 언어 장벽과 커리큘럼 개판인 방법론이 합치하여 악을 이룬 탓에, 저의 매일은 더 고달파져 갔어요. 짝꿍이 2주에 한 번씩 울어재끼는 제 눈물도 닦아주고 데리고 나가서 입에 먹을 것도 넣어주고 한 덕분에 꾸역꾸역 버텼지만, 근본적인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와중에 한국 석사 지도교수님과 진즉에 마쳤어야 할 프로젝트가 끝이 안 납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였는데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 24시간을 30시간으로 늘릴 재간은 없으니, 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교수님,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하면 될 것을, 밤을 새워서라도 해보려고 아등바등 버텼지요. 다음날 들어야 할 수업이 있고 해내야 할 과제가 산더미인데 밤을 새운다고 새워지겠습니까. 매일 뜬눈으로 지새우고, 그러다 울고, 수업 가서 죽상으로 앉아있고, 머릿속은 다음 할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고, 그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꾸역꾸역 해서 초안을 보냈지만 퀄리티는 안 봐도 똥망이었지요.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설명하시던 교수님이 어느 날은 답답하셨는지 보이스톡을 하자고 하십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있던 저는, 1시간이 걸친 그 전화에도 단답형으로 일관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애초에 눈치채셨겠지만, 일단 일을 해야 하니 초안을 수정하는 방안에 대해 열불 나게 설명하시던 교수님. 이제나 저제나 전화가 끊기려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대답만 잘하면 되겠거니, 하며 시계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딘가 지친 듯 들리는 선생님도 전화를 마무리하려는 듯하셨고요. 정말 그럴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날밤을 까서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제발 빨리) 끊으려는 찰나, 말 한마디가 툭, 귀에 들어옵니다.
"너굴이, 많이 힘들어?"
어이쿠...
그 말씀 끝에 참 잘 참아냈던 눈물이 와아아 터지면서 꼴사납게 흐엉, 울고 맙니다.
"으엉, 교수님, 히끅, 차라리 그 말씀을, 으흑, 하지 마시지, 흐엉"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교수님은 아이고, 허허, 하며 깔깔 웃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물으셨죠.
"왜, 네가 수업 시간에 제일 찐따 같아?"
(찐따... 예... 저랑 교수님은 실체에 보다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네, 맞아요. 제가 교실 안에서 제일 찐따 같지만, 그 순간 또 생각을 좀 해봅니다. 아냐... 그래도 진짜 멍청해 보이는 애 하나 더 있는 거 같은데... 이러면서 말이에요. 으이그.
"흐극, 제일은 아니고, 흐엉, 뭐 하위 2-30%는 되지 않을까요, 히끅"
"뭐야아, 그럼 제일 찐따도 아니네".
제가 제일 찐따가 아니라는 사실에 교수님은 조금 실망하셨나 봅니다. 그렇게 제가 제일가는 찐따인지 두 번째로 멍청한 찐따인지를 가리는 질문을 주고받다가,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이고, 너굴아. 남의 나라에 공부하러 가서 잘하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니. 네가 학교에서 봤던 여기 교수들, 다 대단해 보여도 그 과정에서 너랑 똑같은 일 겪고 왔어. 누구나 다 그럴 거다. 그저, 쪽팔리고 한심하고, 그런 과정을 견디는 거야. 공부해 보겠다고 갔으니 속 터져도, 찐따 같아도, 그냥 그 시간을 버텨야지. 거기서 또 잘하겠다고 나서는 건 욕심 아니겠어."
그러면서 학기 중이라 힘들 테니 프로젝트는 미뤄두고, 몸과 마음을 좀 추스르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어느새 짝꿍이 제 방까지 찾아왔네요. 퉁퉁 부어 터져 있는 제 눈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혹시나 또 안 좋은 소리 들은 건가 하여. 하지만 저는 이 과정을 미리 겪은 자만이 해 줄 수 있는 진짜 격려를 받고 더 펑펑 우는 중이었습니다. 이 날의 통화는 엄청나게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제 가슴 속에 안개 속 등대처럼 남게 됩니다. 그 이후로, 무수히도 많이 찐따 같은 순간을 맞이했지만, "그저 견디는 거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힘들지만 묵묵히 나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돌고 돌아, 일관성 없는 커리큘럼이 야기한 이 방법론 수업이 저를 얼마나 괴롭혔냐면요.
같은 지도교수 밑에 있는 한 선배가 제 고충을 듣고 판다곰선생에게 "너굴이한테 수업 때문에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다고 네가 말 좀 해줘라. 우리 다 알지 않느냐, 코스웍 수업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 없다는 걸"이라며 언질을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판다곰 선생이 얼굴 썩어가는 저를 부릅니다. 그는, "little bird"가 말해줬다며 운을 떼는데, 저는 속으로 누가 이렇게 고마운 이야기를 해줬단 말인가, 하며 감동받고 있었죠. 아참, 우리 판다곰 선생이 장점이 참 많지만 비밀을 절대 못 지킨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는데요. 코스웍 수업을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며 한참을 저를 설득(?)하던 판다곰이, 제가 먼저 묻지 않았지만 그 little bird가 저의 선배라는 걸 알려주더군요.
정말...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아직도 이때를 생각하면 약간 울컥합니다. 참고로, 이 선배는 참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 입에서 남에 대한 나쁜 말이 나온 적이 거의 없고, 늘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지도교수에게 제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내가 오지랖 부리는 것은 아닌가' 하여 여러 번 망설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입도 못 떼고 있던 것을 판다곰 선생에게 대신 말해주다니. 내 어려움에 진짜로 귀 기울여 줬구나. 썩어가던 내 얼굴 너머에서 진심으로 어려움을 읽어줬구나... 원래, 문제 해결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죠. 당연히 타인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어려움을 듣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음을 써줬다는 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어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하고도 진심 어린 마음에 힘입어 2년 차를 버텨 나갑니다. 물론, 2주에 한 번씩 과제 때문에 울어재끼는 저를 부여잡느라 짝꿍이 제일 고생 많았습니다.
우여곡절 넘쳐났던 2년 차 훈련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다음 큰 산이 있지요. 종합시험. 이 때문에 2년 차 여름방학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자, 그 롤러코스터 같은 이야기는 2주 뒤인 12월 28일에 풀어보겠습니다.
대단할 것 없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말씀 올리게 되었습니다. 1주일 뒤인 12월 21일에는 제가 잠시 숨 쉬러 다른 도시로 가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1주 휴재를 예고드립니다. 데드라인이 이렇게 몰아치는 시국에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싶지만, 인간은 원래 비합리적인 존재이지요. 가서 숨구멍 좀 트고 오겠습니다.
다들 어디에 계시든, 평안한 크리스마스 시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