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엄마를 살리다
둘째를 데리고 필라테스를 하며 체력 회복을 서서히 해나갔다. 하지만 앵두가 점점 커서 기어다니기 시작하자 아이를 데리고 운동을 가는 게 힘들어졌다. 녹의 퇴근은 여전히 늦어서 나의 운동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아이 둘을 나 홀로 돌보는 이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남편과 부인이 육아에 있어서 똑같을 수 없는 상황임을 실감한 게, 녹은 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동안에도 꾸준히 매일 새벽에 테니스를 치러 나갔다. 신혼 초에 함께 테니스 레슨을 받을 때도 이미 많이 있던 테니스 실력의 격차는 말도 못하게 더 벌어져서 나의 로망인 ‘함께 같은 운동하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조바심이 났다. 아직 몸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은 출산 6개월 차의 주말에에 녹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20분씩 테니스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내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 있으면 계속 내가 육아에 관여하게 되고 녹도 나에게 계속 의존하기 때문에 1주일에 딱 하루 1시간 남짓의 아빠 혼자 아이 둘 돌보는 참육아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첫째를 낳고 했었던 필라테스처럼, 둘째를 낳고 하게 된 테니스 또한 ‘아이들을 맡기고 운동하러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최대의 동기부여가 됐다.
귀한 시간을 낸 만큼 아이를 낳기 전, 흐지부지하게 치던 때와 달리 매 레슨에 열정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전에 6개월 레슨을 받았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2회까지는 완전 초심자 같은 아니 오히려보다도 초심자보다도 더 못한 듯한 내 모습에 속상했다. 하지만 3번째 레슨부터 공이 잘 맞기 시작했다. 너무 재밌었다. ‘이래서 녹이 테니스를 좋아하는 구나.’ 하며 처음으로 이해가 갔다. 테니스가 잘되니 아이 둘 돌보며 우울에 빠질뻔한 엄마의 일상에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산후 8개월차에 하기에 테니스라는 운동은 과격한 운동이었다. 테니스가 아니어도 충분히 아이들을 안는 순간이 많아 근육과 관절에 이미 무리가 되는데, 테니스를 하니 본격적으로 몸에 무리가 왔다. 안그래도 둘째를 낳고 아팠던 손목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꾸준히 받기 시작했다. 한 달 병원비와 약 값이 30만 원이 넘었고, 친정 엄마에게 SOS도 잠깐 쳐보고, 산후보약도 지어먹었지만 손목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 잊고 있었다. 둘째를 낳고도 꾸준히 필라테스를 했으니 이 정도쯤은 문제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는 허약체질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 시기의 나의 삶의 빛인 테니스 레슨을 겨우 세 달만에 중단하기로 했다. 코치님께는 “저 손목터널증후군 다 나으면 돌아올게요.”라고 말은 했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었다. 아쉬웠다. 필라테스를 갈 수 있을 때는 남편과 시간을 맞춰가며 꾸준히 이어가기는 했지만, 체력이 올라오는 느낌이 더뎠다. 둘째를 안고 재활의학과 치료를 가는 게 일상이 되어가는 나날이었다.
아이 둘을 낳고 나니 한동안 열심히 했던 블로그 기록도 소홀해졌다. 인스타 역시 로그인 비번 오류로 순식간에 잃어버린 계정이 되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기록까지 이어가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의지도 있어야 하지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나의 체력이 문제였다. 그래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블로그 기록을 꾸준히 하는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준 친구를 보며 아주 가끔씩은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체인지러닝크루’ 달리기 모임 모집 소식을 보았다.
나와 같은 초등교사이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달리기 모임을 운영하시는 런예지님. 살면서 내가 달리기라는 운동을 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진심어린 글에 마음이 동해서 그 글을 보자마자 댓글을 달았다.
육아하며 골골대는 엄마인데 유모차 달리기도 가능할까요라고 질문을 남겼다. 본인도 둘째를 낳고 운동을 시작했다며 흔쾌히 가능하다며 신청하라고 안내를 주셨다. 그 이름 답게 정말로 내 인생을 변화시켜 준 ‘체인지러닝크루’와의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허약체질 자영씨의 팁
엄마의 운동을 함께하는 인증 모임이 마음을 열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함께하면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