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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아이랑 필라테스에 가는 법

part2. 살기위해 시작한 운동이 엄마를 살리다

by 다우

코로나가 한바탕 휩쓸고 간 우리 집에 남은 것은 남편과 나의 콜록대는 기침 소리였다. 코로나가 괜히 무서운 게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한 1차 증상에서는 벗어 났지만 기관지를 중심으로 해서 몸이 전체적으로 약해진 게 느껴졌다. 첫째를 낳은 지 18개월 만에 둘째를 낳고 38일 만에 코로나에 걸렸으니 안 그래도 허약한 내 몸이 한층 더 약해졌다.


부모의 몸이 골골대어도 아이들은 알아줄 리 만무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안 오는 주말에 남편 없이 혼자 아이 둘을 돌봐야 하는 날이 있었다. 동생도 일하러 가서 집에 없었다.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아이 둘이 동시에 우는 것이었다. 동생이 우니까 좀 기다려준다는 것을 첫째가 20개월도 안 되었으니 기대할 수 없었다. 일단은 아이들을 안아서 진정시켜야하니 연두는 등에 포대기로 업고, 아직 좀 가벼운 앵두는 앞쪽에 두 손으로 안아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달랬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연두가 막 태어났을 때처럼 아이 둘이 빨간 토마토가 되어 미친 듯이 울어 제끼는 상황은 없었다는 점이다. 엄마인 나만 좀 힘들면 되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괜찮은데?’했다. 이내 점점 등과 팔이 모두 아파왔다. 이 상황이 너무 강렬해서 셀카를 남겼는데, 사진으로 봐도 너무 웃펐다. 나중에 산후도우미 이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주말에 부르지 그랬어요.”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하지만 언제까지도 남의 손을 빌리며 아이 둘을 키울 수 없기에 엄마 혼자 아이 둘을 동시에 돌보는 이 공포를 스스로 극복하려고 애썼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실 때는 낮잠을 자고, 햇빛에 산책을 하며 몸 회복에 힘썼지만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가시고 나니 아이 둘을 돌보며 내 몸 회복까지 신경 쓰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갔다. 멀리 사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 산후 보약 좀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보약을 2채 지어 먹었다.


보약을 먹어도 통 몸이 낫는 느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연두 낳고 운동할 때 아이를 돌봐준 동생에게 고마워서 필라테스 30일 권을 끊어줬었는데, 그 원장님은 내가 원래 필라테스를 하던 곳에서와 달리 산후 100일부터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며 산후 회복을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100일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운동을 하느냐였다. 아이가 한 명이어도 엄마가 의지가 아무리 있어도 운동을 지속하는 게 힘들었는데, 아이가 둘씩이나 되니 더 힘든 일이 되었다.


운동은 해야겠고 아직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에는 너무 어려서 고민이었다. 이 고민을 전하니 원장님이 “둘째를 데리고 한 번 나와보시겠어요?”라고 제안하셨다. 본인도 아이를 낳고 체력이 떨어진 것을 경험하고, 계단 오를 힘도 없었는데 필라테스를 하며 힘을 찾았다는 그 이야기를 해주시며 아이를 낳고 체력 회복을 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에 공감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엄마랑 필라테스에 가는 아기

고작 50분 필라테스를 하러 가는 데, 아이랑 함께가니 짐이 많았지만 기분 좋게 챙겼다. 아이를 눕힐 깔개와 아기 체육관을 챙겨 한 팔에 커다란 쇼핑백을 걸쳐 들었다. 앵두는 아기 띠에 쏙 안겨 집을 나섰다. 아직 100일 밖에 안 된 앵두는 엄마가 평소랑 달리 활기차게 옷을 갈아입고 어딘가로 함께 나가니 눈이 동그래져서는 놀라기는 했지만 어딜 가는지 궁금해하며 좋아하는 눈치였다.


새로운 공간에 잠시라도 자기를 내려놓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연두와 달리, 앵두는 새로운 환경에 혼자 눕혀놨는데 이곳 저곳을 쳐다보며 신나했다. 오빠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서부터 엄마가 통 말이 없으니 심심 했을텐데, 엄마가 필라테스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소리도 듣고 엄마가 활기찬 눈빛으로 열심히 움직이니 아이도 함께 그 에너지를 느끼는 것 같았다.


집에서도 얌전히 잘 누워있던 앵두는 여기서 혼자 누워서 놀다가 잠드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푹 마음 놓고 운동을 했다. 중간에 보채는 날에는 강사님이 앵두를 안아주며 코칭을 해주시기도 했다. 둘째에게 푹 애정을 많이 주기에는 엄마의 기력이 많이 부족한 시기였는데, 필라테스 선생님은 오랜만에 아이를 본다며 아이를 볼 때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안아주시는 그 모습 덕분에 기력이 딸리는 엄마가 정신을 차리며 내 아이에 대한 애정을 좀 더 장착하려고 애쓰는 시간이 되었다.


동생이 집에 있을 때는 앵두를 맡기고 가기도 하고, 남편 연차를 쓸 수 있을 때는 남편의 찬스를 쓰며 필라테스를 이어갔지만 앵두가 기어다니기 전까지는 순전히 필라테스 선생님의 이해로 아이를 데리고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둘째를 낳기 전에는 나를 위해 운동 시간을 내려면 한참이 걸릴거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둘이어도 나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도 아이 키우는 것을 안쓰럽게 여기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손길이 내 가까이에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만 해도 내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이었던 내가, 공동체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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