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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달리기도 달리기다

Part 2 : 살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엄마를 살리다

by 다우

처음 신청할 때는 분명 유모차를 끌며 달리기도 괜찮다고 했건만,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참석한 온라인 줌 첫 오티에서 바로 유모차를 끌고 달리면 자세가 안 좋아서 오히려 건강에 안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순간 속으로 ‘앗, 속았다.’했지만, 이미 한 달 참가비를 내고 신청한 터였다. 뭐든 시작할 때가 의지가 샘솟는 최고의 순간이 아니던가. 달리기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OT를 듣는 순간 유모차 끌며 달리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 달리는 것은 언제 아이가 깰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제대로 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다음에는 나도 이미 지쳐서 뛰러 나갈 의지를 상실할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11개월(0세), 29개월(2세) 아이 둘을 키우는 육아휴직맘이 달릴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새벽이었다.


새벽 달리기라니. 살면서 상상해 본 적도 없던 단어였다.


새벽에라도 달려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매일 지겹게 반복하는 병원 일상 때문이었다.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병원을 돌아가며 다녔다.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동네 외과 중 어느 곳이 가장 명의인지 직접 온몸으로 체험하며 전전했다. 외과의 치료가 신통치 않는 날에는, 재활의학과에 갔다. 체력이 떨어지니 평소 늘 나를 괴롭힌 왼쪽 관자놀이의 두통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하루는 내과 다른 하루는 동네 한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한의원은 또 골고루 다 체험하며 다녔다. 약을 먹는 순간에만 통증이 잠시 멈추고 병원에 다녀온 지 좀 되면 다시 아팠다. 이러다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 건가 두려웠다.


돌봐야 하는 아이가 둘이니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아이를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남편에게 맡기고 가거나, 정 못 참겠을 때는 가정보육을 하고 있는 10개월 차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하루는 손목을 뜨거운 파라핀 속에 넣고 치료를 받았다. 치료 중 아이가 울면 달래줄 수가 없는데 어쩌지 했는데 엄마가 치료를 받아야 낳는다는 것을 알아챈 것인지 엄마가 파라핀 치료를 받는 동안 얌전하게 유모차에 앉아 끝까지 기다려주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아이를 맡기고 병원에 가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고 이 모든 것과 계속 함께하며 챗바퀴 돌듯 사는 것은 끔찍했다. 이때의 나의 삶의 목표는 오로지 건강회복이었다. 불과 만 34살인데 이런 식으로 병원을 평생 달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다. 오죽 절박했으면 춥디 추운 12월에 야외에서 달리기를 하겠다며 달리기 모임을 신청했을까.


고등학교 시절 수능 공부를 해낼 때도, 임용 고사 재수를 할 때도, 현직에서 일을 하다가 지역 변경을 위해 일과 공부를 병행할 때도 나는 함께 하는 시스템을 이용했고 그럴 때마다 늘 좋은 성과가 있었기에 그런 경험을 떠올리며 달리기도 함께하는 시스템에 있으면 대단하게 하지는 않더라도 지속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꽤나 인식하며 살아가는 나란 사람에게는 역시 함께하는 울타리가 주는 힘이 대단했다. 그리고 짠순이 기질도 크게 기여했다. 목표를 달성하면 기프티콘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내 돈으로 커피를 마시러 갈 수 있음에도 왠지 내 돈으로 카페에 가는 것은 아까웠다. 기왕이면 달리기를 성공해서 받은 기프티콘으로 카페에 가고 싶었다.


달리기를 했던 첫날 2022년 12월 6일의 저녁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새벽에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깜깜한 새벽에 놀라며 나갔다. 런데이 어플의 30분 달리기 1주 차 첫날의 달리기를 했다. 고작 1분 달리기 총 5회 반복이라 달리면서 생각보다 할 만한데? 라며 만만하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1분 달리기였는데도 저녁에 아이들에게 영어 영상을 틀어준 후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감기는 눈꺼풀이 어찌나 무겁던지 아이들이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 데 도저히 그 말이 들리지가 않고 바닥에 앉아있는 채로 졸음이 쏟아져서 단잠에 빠져들었다.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아, 1분 달리기라고 무시할 게 아니구나. 안 그래도 허약체질인 내 몸이 완벽한 허약체력이었구나.’를 깨달았다.

1분 달리기도 달리기였다.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 오히려 좋았던 것도 있었다. 1분 달리기를 했을 뿐인데, 금세 활력이 생긴 게 느껴지고 몸으로 그 효과를 확확 느낄 수 있었다. 달리기를 하고부터는 그 달부터 바로 손목 아픈 게 확 줄어들어서 병원을 안 가게 되었다. 무슨 기도 간증처럼 달리기 인증 톡방에 달리기를 하며 병원을 끊게 되었다며 나를 달리기의 세계로 이끌어준 런예지님과 동료 러너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


처음에 계획했던 6시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내 운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5시에 기상하자마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매일 깜깜한 새벽을 배경으로 달리기 인증을 하니 하루 중 아이들을 케어하며 운동이 가능한 시간이 새벽이었을 뿐이라 그때 달리는 거였는데, 새벽에 1등으로 달리기 인증을 이어가니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은 인정에 목마른 존재가 아니던가. 내 아이 키우는 건 늘 당연한 일이라 딱히 칭찬이나 인정받을 일이 전혀 없었는데, 달리기를 시작하니 대단하다는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그 칭찬에 신이 나서 내가 과연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싶었던 달리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은 달릴 때마다 30분 달리기 코스 진도를 확확 나갔지만, 나는 워낙 몸이 약해져 있던 터라 버겁다 싶다고 느껴지면 1주 차 운동을 다시 한번 더 하는 식으로 나만의 레이스로 천천히 달려 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인생 첫 달리기 운동을 했던 2022년 12월 총 10번의 달리기를 했다. 2주 차 2회까지 달렸다. 쭉쭉 달려 나가는 다른 분들과는 달리 거북이 달리기였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쉬지 않고 30분을 달려야 한다고 하면 엄두도 못 냈을 달리기였는데, 고작 1분만 달려고 달리기를 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다 보니 점점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1분 달리기의 위대한 힘이었다.


*허약체질 자영씨의 팁

어떤 운동을 해야할 지 막막하고 부담스러울 때, 1분 운동을 시도해보세요. 고작 1분이어도 그 1분의 힘이 생각보다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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