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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 달리기를 올리면 생기는 일

part2 : 달리기가 쏘아 올린 공

by 다우

보통 사람이라면 굳이 러닝 크루까지 가입하지 않아도 달릴 수 있는 1분 30초 달리기를 해냈다며 신이 나서 달리기 첫 달을 보냈다. 거북이 달리기였어도, 매번 까먹지 않은 루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운동 후 인스타 계정에 달리기 기록 남기기!


달리기라고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 달리기를 시작한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한 나머지 보잘것없는 달리기 실력에도 신이 나서 기록을 이어갔다. 내가 애정하는 에세이 작가님인 김신지 작가님이 소소한 행복의 ㅎ을 매일 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SNS에 달리기 기록을 해놓으니 좋은 점은 소소한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팔로워가 소소한 내 계정임에도 내 기록을 보고 체인지 러닝 크루에 동참하게 된 친구도 생겼다. 친구에게만큼은 내가 인플루언서가 된 듯한 느낌이 꽤나 짜릿했다.


또 다른 장점은 내 달리기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오랜만에 2년 전 달리기 기록을 찾아봤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날 남긴 글도 있었다. 우와. 스스로가 기특했다. 첫 달리기의 설렘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 요새 인생 최악의 몸 상태. 몸이 너무 아파서 살기 위해 달리기 모임을 시작했다. 어제 여행 다녀오고 밤새웠다고 집에서 내내 누워있고.. 끄떡하면 몸살ㅠㅠ 달리기라고 말하기 민망한 기록이지만.. 이 새벽에 했다는 것만으로 셀프 토닥. 런예지님과 그리고 모임원과 함께 끝까지 해내길 바라며 -


이 기록을 보니 내 기억보다도 몸이 더 안 좋았구나 싶었다. 툭하면 몸살에 걸려서 매일 누워서 아이들을 돌봤던 그 기억이 소환됐다.


일명 눕육. 아이들을 챙겨줄 것들이 끝나면 누워서 있으면 아이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고 물건을 떨어뜨려 공포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이들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가 또 다른 곳에 누울 자리가 있나 하고 열심히 찾아다녔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나만큼이나 체력이 떨어져 가는 게 눈으로 보이는 동생에게도 달리기를 같이 하자고 했다. 몸이 웬만큼 좋으면 12월의 이 추운 날의 새벽에 달리자고 해도 무시할 법한데, 동생도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일주일에 두 번은 같이 달리기를 하겠다고 했다.


체인지 러닝 크루와 더불어 동생과의 약속이 있으니 나도 달리러 나가기 힘들고 추운 새벽에도 어쩔 수 없이 달리러 나가게 됐다.


하루는 밤에 잘 안 깨는 둘째가 깨서 울고 난리가 났었다. 새벽에 깨서 아이를 달래주다가 아이도 나도 다시 잠이 든 터라 제대로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가기가 힘들고 싫었는데, 체인지 러닝 크루에도 인증을 올려야 하고 무엇보다 동생과 함께 달리기를 하러 가기로 약속한 날이라 눈이 떠졌다.


그래도 동생이 자고 있으면 슬며시 다시 잠들어볼까 싶어서 동생이 깨었는지 살며시 가보니, 이미 일어나서 주섬주섬 달리기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생에게 나 어제 잠을 설쳐서 못 달릴 것 같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방금 일어나서 얼른 옷 입고 나올게.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말하고 후다닥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러 갔다.


어느 순간부터 삶이 비슷하고, 이미 다 해본 것들의 재탕 같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심을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만이 새롭다 여겼던 것 같았다. 눈이 내린 날 달리기를 하며 눈길을 저벅저벅 소리가 나며 달려 나갈 때였다. 내가 눈길을 달리며 만들어 내는 이런 소리를 살면서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새롭게 살아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게 새로웠다. 언제든 올 수 있던 집 근처 수변에서 이토록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니!


새벽 물안개를 처음 봤고, 내가 눈길을 달리며 만드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물에서 잠든 오리와 새도 처음 봤고, 살면서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달리기가 엄마의 몸만 살린 게 아니라, 생각도 살려가고 있었다. 내가 종종 올렸던 해시태그인 #살기위해하는달리기 가 정말 맞았다.


인스타에 달리기 기록을 남기는 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내가 달리기를 하고는 해시태그에 #살기위해하는운동 이라고 올리니 한 지인은 “어디 죽을병 걸렸어요?”라며 비아냥거렸다. 그 댓글을 보고는 하루 종일 그 말이 동동거리며 떠올랐다. 왜 그런 댓글을 달았을까. 생각에 생각을 했다.


정말로 순수하게 내가 어디 병에 걸린 줄 알았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처지인데, 본인은 운동을 못하는데 내가 꾸준히 운동 기록을 올리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내가 좋아서 하는 기록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었겠구나를 처음 느꼈다.


운동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기록하는 일은 귀찮은 일이었는데, 큰마음먹고 운동만 기록하는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운동 기록만 모아서 하기 시작했다.


안 좋은 계기로 만들게 되었지만, 운동 계정을 만드니 나 스스로도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팔로워가 하나 없어도 자유롭게 사진과 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더욱 좋았다. 소소한 나의 본 계정보다도 더 소소한 나의 운동 계정은 팔로워 수와 상관없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온라인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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