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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에타 Aug 25. 2022

여름의 끝자락

30대 초,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번 여름, 아이는 물놀이터에 가는 걸 좋아했지만 메끄럼틀이나 기구가 있는 도전적인 것보단, 얕은 물에서 안정적?으로 노는 것을 선호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좀 더 과감하게 미끄럼틀도 신나게 타고, 첨벙첨벙 놀기를 원하는 한편 아이가 다칠 일은 좀 덜해 안심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겁내지 않고 수영장 미끄럼틀도, 키제한이 있는 높은 미끄럼틀 혹은 놀이기구도 아무렇지 않게 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나의 역할이 또 줄어들겠지. 아이는 계속 크고 언젠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


 인생을 나보다 조금 더 산 사람, 나이가 드신 분들이 나를 본다면 왜 젊은데 더 도전하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를 보며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생각해보면 뭔가 난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기보단 현재의 막연한 너머를 생각했다. 행복은 여기에 있지 않고 어딘가에 있으며,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난 떠나고 싶고, 유랑하고 싶어서 관광 전공을 선택했지만 결국 떠나는 것은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었고, 난 떠나지 않고 내 인생에 그냥 머물렀다.


 남들 다 하는 거라고, 20대 후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줄 알았던 나는 별안간 멈추고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다른 갈래길을 걸어간다. 싱글맘이 되어 한 인생을 키우며, 내 인생의 무게도 감당해야만 하는 거다. 직장생활은 하고 있지만, 이 일은 나에게 쉽다고만 할 수 없지만 그냥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물론 싱글맘에 워킹맘이 쉬운 건 아니다. 친정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조차도 언감생심. 경력단절은 둘째치고라도, 내 힘만으로 풀타임 직장생활은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결혼 생활을 지속했다면 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동안 할 수 있는 파트타임을 찾고 빠듯한 경제활동을 굴려갔을 지도 모른다. 신뢰가 깨지지만 않았다면 그게 내 소명이려니 하며 이어갔을지도. 나에게 이제 그 삶은 없다.


 저녁이 되면, 가족 다 같이 산책을 나간다. 하천 주변을 산책하다 오랜만에 무게추가 달린 훌라후프를 발견한다. 젊고 활기찬 할머니인 우리 엄마는 웃으며 그 무게를 아무렇지 않게 50번정도 돌린다. 나는 50번 돌리기에 도전해본다. 어릴 때 후프 좀 돌려 본 솜씨로,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게추가 들어 있는 데다 안쪽에 돌기가 달린 후프는 내 복부에 모든 곳을 사정없이 공격하는 느낌이다. 나는 육성으로 소리를 질러가며 겨우 30회 내외로 돌려냈다. 내 나이만큼 될지도 모르겠다. 체급 혹은 체격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생 내공을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우리 엄마는 무게와 고통을 감내하는 내공이 깊어져 있다. 그게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다. 오히려 엄살을 부린 건 내 쪽이었다. 엄마 덕에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하고, 책임질 남편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있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생을 계절로 본다면 아직 여름도 채 지나지 않은 나는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고..하지만 난 이미 내 인생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했고, 엄마의 희생도 있었지만 나름의 역할을 다하면서 살고 있다. 엄마의 어깨는 이미 무거웠고, 그 무게를 덜어주며 내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내 삶의 근육을 키워 웬만한 시련쯤은 웃으며 이겨낼 것이다. 나도 엄마로서 자라고 있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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