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 하루의 루틴이 시작된다.
맨손 체조를 하고, 물 한 잔으로 몸을 깨운다.
새벽 5시, 컴퓨터 화면을 켜고 ‘위대한 북클럽’ 모임의 줌회의실에 들어간다.
소중한 글벗들이 독서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만들어내는 창조의 에너지가 컴퓨터 화면을 뚫고 나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무언의 말을 건넨다.
“밤새 잘 잤나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무슨 책을 읽고 이야기해 주실 거죠?”
“오늘 제가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은 ‘새로 읽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황제의 철학’입니다. (주1)
254쪽을 읽다가 다음 부분에서 멈춰서 한동안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읽어드릴게요.”
그대를 지배하는 이성이 과거나 미래의 시간에 대한 모든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엠페도클레스의 말처럼 『자신의 둥근 모양에 만족하는 둥근 원』과 같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대가 소유한 유일한 삶인 현재를 살게 된다면, 모든 근심걱정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자신의 둥근 모양에 만족하는 둥근 원』이라는 말에 꽂혀 버렸나 봐요, 너무 완벽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254쪽에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누군가 말을 건네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자신의 둥근 모양에 만족하는 둥근 원』이라는 비유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완전성과 자족(self-sufficiency)을 상징한다고 한다.
둥근 원은 자기 안에서 충분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무엇을 더 얻을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역시 외부의 끊임없는 욕망이나 결핍에서 벗어나,
내 안에서 충분함을 발견할 때,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과거나 미래의 시간에 대한 모든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게 된다면
원과 같은 온전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도 이와 닮은 가르침이 있다.
동양철학의 원형을 접할 수 있는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에서, 주희는 자기 수양의 첫걸음을 ‘밝은 덕을 밝힌다(明明德)’라고 했다. ‘밝은 덕’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내재된 본성이라고 본다. (주2)
서양의 철학이 현재의 자기 안에서 완전함을 찾는 것이라면,
동양의 철학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두 길은 결국 하나로 만난다.
온전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둥근 모양에 만족하는 둥근 원’이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완전성이다.
이틀 전, 세상에서 가장 둥근 모양의 추석 슈퍼문이 떴다.
달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스스로 빛을 내지도, 화려하게 지구를 향해 떨어지지도 않지만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성을 지킴으로써 완전성을 만들어낸다.
그 달을 바라보며
지금보다 더 부자이길,
나의 실력보다 더 글을 잘 쓸 수 있길,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처리하는 슈퍼우먼이 되길,
내가 아닌 나를 바라왔던 마음이
얼마나 ‘모난 원’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나의 현재에 집중하고,
나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
하루를 성실히 쌓아가기로 했다.
나는 마침내
‘자신의 둥근 모양에 만족하는 둥근 원’이 되어 보려 한다.
(주1) 10세기 말에 편찬된 『수다』라고 하는 동로마 제국의 사전에는 철학자이며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쓴 12권으로 구성된 저서에 대해 ‘그의 개인적인 생활 규범’이라고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12권으로 나눠 각각의 주제에 맞는 짧은 글들을 묶어 놓았다.
(주2) 대학·중용, 주희 엮음, 도서출판 홍익,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