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했다

나의 첫 고백은 이렇게

by 하영

나는 올해 서른이다. (만으로는 스물여덟이지만) 하지만 지금껏 누군가에게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해 본 적이 없었다. 아, 비슷한 것은 있었나? 누군가 자기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한 것을 고백으로 치지 않는다면, 고백한 경험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해 본 적이 있지만, 자존심이 강한 것은 사실이라 좋아하는 이가 생기면 무슨 짓을 해서든 그가 나에게 선 고백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세상 빛을 본 지 28년 하고도 5개월이 더 된 지난 2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이란 것을 했다. 그것도 무려 5+a살 연하의, 아직 대학생인, 군입대를 열흘 남짓 앞둔 남성에게. 죄를 고백한 것도 아니고, 정체를 고백한 것도 아니다. 정말로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해 버리고야 말았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은 어쩌다 일어났을까? 뭐 무시무시 까지냐고 할 수도 있다만, 그의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상대와 나 모두의 신상보호를 위해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적지 않겠다. 그저 나의 마음만 적어볼까 한다.

사실 그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그를 처음 본 날을 떠올리려 달력을 보았다. 달력어플을 보니 그를 처음 본 날은 일기를 써두었다. 거기에는 꽤 괜찮은 사람을 찾았다는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 이상형의 외모와는 거리가 먼데도.

그는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 까칠한 태도를 지니진 않았지만, 민감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세하게 해석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나도 예민한 사람이기에 알 수가 있었다. 보통 예민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동족혐오가 일곤 하는데, 신기하게 그의 예민함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의 민감한 시선에 내가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뭐였을지 아직도 생각 중이다. 저음을 싫어하는 내게조차 좋게 들리는 중저음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 때문일까, 생각에 잠기면 나오는 특유의 표정 때문일까.

그가 지나가듯 던진 농담에 빵 터진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이토록 별 것 아닌 일로 나를 웃게 하는 이가 바로 그다.

그가 떠오르는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밴드의 노래를 듣다가 초록색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초록. 초록색이라는 말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초록색이라는 말에 꽂히듯 그에게도 그냥 꽂혔구나, 깨달아버렸다.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나의 존재를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 잘하지 않던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했다. 평소에는 구경만 했는데 갑자기 숨 쉬듯 글을 올렸다. 글도 그의 감성에 맞을 법한 문체로 올렸다. 친구들은 뒤늦게 이유를 알고는 어쩐지 이상했다며 나를 놀렸다.

나는 미신을 맹신하지 않는다. 사실 안 믿는다고 보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좋은 점괘가 나오면 그냥 기분전환하는 명언 정도로 생각한달까? 그런데 그를 만나고 사주타로 어플에 오만 원을 썼다. 점괘에 일희일비하는 날과 밤이 늘어갔다. 그는 나를 참 많이 변하게 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냈다.


그의 무거운 고민이 좋다. 어두운 우울이 눈부시다. 썰렁한 유머감각이 날 웃음 짓게 한다. 그가 항상 보고 싶다. 그의 예민한 성격이, 민감한 시선이, 고독한 사유가 마음에 든다. 이 말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든다. 그가 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마음이 차오르고 차올라, 더는 차오를 곳이 없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와 그만 길거리에 흘릴 것만 같아서 나는 그에게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고백은 정말 멋이 없었다.

만나서 하지도 못했고, 하다못해 전화도 아니었다. 최악이라는 ‘카톡고백’. 그것도 새벽에. 처음에는 술 취한 척하려고 했는데 그나마 그 방법은 아니라고 판단한 나 자신에게 조그만 칭찬을 건넨다.

그에게 사귀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카톡은 일종의 출사표 내지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 알아두라는 내용의.

그는 카톡을 잘 읽지 않는다. 방학엔 카톡 알림을 모두 꺼두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여부야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동안 그의 답을 받는 데는 평균 12시간 정도가 걸렸을 정도다. 내 고백은 새벽 세시였는데 그의 답은 아침 아홉 시. 생각보다 너무나 빨랐다. 물론 새벽에 고백을 저질러놓고 선잠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나름 새벽감성에서 깨어난 나는 찬찬히 그의 답을 읽어보았다.

그는 지금 모종의 사건으로 마음이 많이 힘든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힘들다고, 좋은 연이라면 또 볼 것이라고 했다.

신기한 것은, 처음 읽는 내용인데도 이미 한번 읽은 글을 읽는 것처럼 내가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그를 좋아하고, 관찰하는 동안 그의 행동에서 내 고백에 대한 그의 답도 얻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그것까지 좋아한 것이겠지. 실제로, 예상한 답이었고 그래서 마음에는 전혀 슬픔이 없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겨났다.

그 알 수 없는 오기란 건 이런 거다. ‘그래? 힘들어? 그럼 회복할 시간을 줄게. 그 뒤에는 꼭 널 꼬시고 말 거야!’

그리고 이 또한 고백해 버렸다

나는 그에게 3개월의 시간을 줄 테니 그동안 꼭 회복해라. 그리고 3개월 뒤에도 내 마음이 그대로라면, 나는 또 고백하겠다. 그때는 당신의 이유가 아닌 나에 대한 평가로 우리의 관계를 결정 지어 달라 말했다. 굉장히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고백을 또 저질러버렸다.


그 후로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연락을 끊었다. 입대하는 날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사실은 잘 다녀오라고 정말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뒤죽박죽인 이 글처럼 엉망진창이었던 나의 마음과, 나의 첫 고백은 일단 이렇게 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끝일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기적을,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기쁨을 글로써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할 뿐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