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을 사랑하는 이유
사실 내가 사소한 행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속으로 작은 것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거나 행복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사소한 것의 소중함이나 내가 사소한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방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며 내가 사소한 것을 꽤나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를 서울로 가게 되면서 본가를 떠나 20살 때부터 23살까지 혼자 서울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살아가던 도중 코로나로 인해 권고사직을 당하고, 실급길을 따라 다시 본가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본가에서 살면서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집밥을 먹으니 경제적인 부분에서 쓰는 돈이 줄어들었다는 것과 매일 긴장하며 혼자 서울에서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사니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가장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는 변화는 내 방에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었다.
사실 자취방에 살 때는 꽤나 따사롭고, 적당히 눈부시지 않을 정도로 햇빛이 든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본가에 있는 내 방에 오자 서울에서는 잊고 있었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발에 닿아있는 햇살이 너무 따뜻했고, 햇살로 밝혀지는 방의 분위기도 너무나 활기찼다.
'햇살 따위야 없어도 그만 있어도 작은 것'이라 생각하며 지냈는데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햇살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서울에서는 자취방에 햇빛이 반절만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장소 또한 실내였기에 하루에 햇빛을 받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 몸에 기운이 없어지고, 충분히 잠을 자도 항상 피곤해 비타민D를 포함한 각종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본가에서 제대로 된 햇빛을 받은 이후로 오후 2시에 일어나던 내가 오전 10시에 눈을 뜨게 되었고, 오후 5시에나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 내가 오후 12시부터 알차게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안 하던 등산을 가고, 글 쓰는 시간이 늘고, 비타민 없이도 하루 종일 밝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소한 것들이 만든 변화나 행복을 느낄 때면 항상 놀랍다.
행복했던 과거를 잊고 살다가 문득 우연히 들은 노래를 통해 떠올릴 수 있으며
어떤 장소에 갔던 기억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맡은 향기 나 냄새를 통해 추억할 수 있다.
또 반대로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티끌 같은 것이 내겐 거대한 흉터로 남는 경우가 생긴다.
"사소한 행복보다는 거대한 행복을 주세요."
요즘 사람들이 소원처럼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갑자기 뚝 떨어지는 거대한 행복은 인생에서 어쩌다 가끔 찾아오거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갑자기 뚝 떨어진 것 같은 거대한 행복 또한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생겼을 가능성이 크기에 사소한 것은 사실 사소하지 않다.
때문에 어쩌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것을 작다고 착각해 '사소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소한 행복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과하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외부에서 얻은 상처를 함부로 티끌이라 여기며 방치하지 않아야 단단한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사소한 것을 사랑하는 100가지 이유 중 하나이다.
삶에서 어떤 사소한 것이 나를 추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며, 때로는 괴로움을 줄까?
그게 뭐든 내게 영향을 준다면 남들이 사소하다 해도 내겐 사소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