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할 건데 슬리퍼를 신고 시작하면 되겠어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부터 갖춰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곱게 써지지 않는 선에 대해 물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린 선의 문제는 내 손끝이 아니라 준비물에서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연필은 뾰족하게 깎여 있나요? 끝이 무뎌졌을 때 사용할 여분의 연필은요? 흐린 선을 지워줄 지우개는 깨끗하고 각지게 준비되었나요?"
선생님은 기본적인 준비를 하나하나 짚어 주셨다.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기본을 소홀히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리고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연필이 무뎌진 상태로 그리기를 고집하면서 선이 곱게 그려지길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태도일 뿐이다. 작은 준비조차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태도의 문제라는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너무 사소해서 중요함을 쉽게 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사소한 준비는 그 자체로 큰 그림의 시작이다. 깨끗한 지우개와 뾰족하게 깎인 연필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나의 태도를 반영하는 준비물이다.
오늘은 미술학원에서 돌아와 연필 10자루를 곱게 깎았다. 연필 하나하나를 깎으며 다짐했다. 기본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준비가 갖춰져야 그림도 선명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작은 준비가 큰 변화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