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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an 13. 2024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꺼내든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일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너는 여행을 왜 좋아해?"

"왜 그 직업을 선택했어?"

"왜 그 사람과 만나기로 했어?"


'어쩌다 보니'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있던 것들은 '왜'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뾰족한 모양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너는 책을 왜 읽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랬어요. 책을 왜 읽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불현듯 잊고 지냈던 2013년의 어느 날이 떠올랐습니다.



이 모든 건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꺼내든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일


2013년 1월, 저는 대학 졸업 후 한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 겸 동화작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회사 분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중고 서점에 구경을 갔는데요. 책을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었지만, 앞으로 출판편집자를 업으로 삼으려면 억지로라도 책에 관심을 가져야 했죠. (당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출판 편집자뿐이라고 생각한 우물 안 개구리였거든요.)


서점을 돌고 돌다 우연히 꺼내든 책은 김현유(미키김) 작가의 <꿈을 설계하는 힘>이었어요. 수많은 책들 중 왜 그 책을 꺼내 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스물다섯 삼성전자 신입사원, 서른다섯 구글 상무로 점프하다!'라는 카피가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저와는 완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니까, 말로만 듣던 '구글'에 다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요.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충격으로 다가왔던 걸로 기억해요. IT회사는 크고, 차갑고, 신기하고, 빠르고, 어려워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멋진 곳'이라는 인식을 처음 갖게 된 거죠. 얼마 후, 저는 작은 출판사를 퇴사하고 꽤 오래 취업준비생으로 지냈어요. 그러다 두 번째 회사는 조금 더 규모가 큰 출판사로 옮겼지만 여전히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갑갑한 기분이 들어 금방 퇴사를 했죠. 


막막했어요. 그런 제가 갑자기 IT회사, 그것도 대기업에 눈을 돌릴 용기가 대체 어디서 났을까 생각해 보면 그 오래전 중고 서점에서 꺼내든 책 한 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던 IT 회사라는 세계가 혹시 나의 세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진짜 가슴이 설레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던 거죠.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의 권수를 세어 보면 천 권이 넘어요. 누군가의 이야기는 두 시간 넘게 카페에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듯 심도 깊게 읽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접하듯 가볍게 읽었죠.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면서 저는 '세상에는 정말 대단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부자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든, 세계여행에 대한 이야기든, 직업에 대한 이야기든,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든,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이야기든, 천 명이 가진 천 가지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좁고 편협한 우물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죠.


천 가지의 이야기가 제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꺼내든 책 한 권이 저를 가슴 설레는 일로 이끈 것처럼, 제 인생 곳곳에서 1mm씩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당겼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봤는데 영 아니면 다시 되돌아오면 되고, 가봤더니 나와 잘 맞으면 계속 가는 거죠. 중요한 건, 책을 읽다 보니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은 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 좋은 친구,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과도 비슷한 행운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왜 책을 읽으시나요? 이 주제로 밤새 이야기를 나누어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싶네요.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 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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