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한 주간 잘 지냈나요 일글러 여러분! 어쩌다 보니 조금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설 연휴도 잘 보내셨나요? 저는 정말 정말 잘 보냈어요.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짧은 연휴였고,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오지도 않았지만 이번 설 연휴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드디어 미루고 미루어왔던 저의 작업실을 대청소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청소광 브라이언 씨가 저의 작업실에 방문했다면 "I hate people!!"을 외치고 도망갔을 정도로 저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어요. 사실 작업실뿐만 아니라 본가의 제 방도, 회사 책상도, 자동차 내부도 엉망진창이죠. (회사 책상 크기는 모두 똑같은데 다들 제 책상만 유독 작아보인대요^^;)
예전에는 제가 청소를 안 하는 게으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저는 청소를 안 하지는 않습니다. 청소를 하는 데도 주변이 지저분한 이유는 제대로 된 정리 방법을 모르거나 더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진단해 보건대 저의 문제점은 '의지가 없다' 쪽에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선 저는 타인보다 주변의 지저분함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학창 시절에 몇몇 친구들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꼭 책상 정리부터 하곤 했는데, 저는 그게 괜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주변에 물건들이 쌓여 있어야 더 집중이 잘 되는 저는 어른이 된 후에도 글을 쓸 때 굳이 책상 정리를 하지 않거든요. 이것은 주변을 정리하고 싶은 의지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 문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진짜 문제는,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업실이 집중력을 높여줄 수준의 지저분함을 넘어섰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저는 작업실을 청소할 의지를 오랫동안 갖지 못했어요. 좋은 핑곗거리는 '몸의 피곤함'이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게 불만스러우면서도 저의 일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3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을 매일 오가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라고, 그러니 청소를 할 체력과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속여왔죠.
그것이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건 연휴를 맞아 언니와 함께 대청소를 한 후였습니다. 저의 작업실 꼬락서니를 본 언니는 연휴에 시간을 내어 같이 청소해 주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청소광인 그녀는, 쓸고 닦는 청소뿐만 아니라 쓸모 없어진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 보기좋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작업실이 이렇게나 큰 공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넓어 보이더라고요.
일주일 뒤, 저는 그동안 마음만 먹고 시작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해나갔습니다. 몇 년간 '하겠다 하겠다' 말만 했던 유튜브 운영을 위해 드디어 마이크를 구입하고, 영어 원서 읽기 스터디를 신청하고, 머릿속에만 복잡하게 꼬여 있던 생각들을 언어와 행동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알겠습니다. 저는 작업실을 대청소한 게 아니라 마음의 짐을 대청소했다는 것을요.
마음의 짐이 무거울 땐 집안의 짐을 밖으로 꺼내 버리세요. 그 짐을 꺼낼 의지가 도저히 생기지 않을 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버리면 저절로 새로운 것이 채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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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