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저는 요즘 일부러 평소에 잘 안 하던 일을 찾아서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오래전부터 SNS로만 지켜봐 왔던 '두세시간'이라는 유기견 봉사를 다녀온 것인데요. 매달 봉사활동 신청일이 되면 단 몇 분 만에 빠르게 마감이 되어서 놓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게 신청을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조금 망설여졌어요. 공식 SNS를 보면 대부분 20대로 보이는 젊은 분들이 많아 보였거든요. 커뮤니티 기반으로 모임도 진행하는 걸 보면 저 같은 'I' 성향의 사람이 낄 자리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요. 게다가 직장인에게 작고 소듕한 주말인 일요일 아침 9시에 집결해 인천까지 갈 생각을 하니 다음 주의 피곤함이 벌써부터 걱정되기도 했죠.
어찌 됐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법. 평일이었다면 시끌벅적했을 거리가 아직은 고요한 주말 아침, 픽업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꽤 상쾌했어요. 픽업 장소에 도착하자 다른 신청자 한 분이 미리 사둔 커피를 저에게 건네주셨어요. 그리고 곧 우리를 인천까지 데려다줄 봉사활동 리더 분이 나타났고, 예상과 달리(?) 우리는 별다른 스몰토크도 없이 인천까지 함께 이동했죠.
유기견 센터에 도착하니 각 지역에서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청소용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건물로 들어가자 갑자기 수십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너넨 누구야! 통성명을 하라!'라고 외치는 것 같달까요? 저는 평소 강아지를 엄청 좋아하지만, SNS 속 순둥이 강아지들의 모습이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아지들이 크게 짖는 소리가 무섭게 느껴졌고, 대형견보다는 소형견들의 집을 청소하기로 했죠.
크게 힘들여할 일은 없었습니다. 강아지 밥그릇 설거지하기, 강아지 집 청소하기, 사료 옮기기 정도? 봉사자 분들이 많으셔서 제가 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강아지들과 익숙해지고,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주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사람의 손길을 좋아했지만, 봉사자들의 주변을 맴돌 뿐 끝까지 손길을 거부한 강아지도 있었어요. 눈빛은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손을 뻗으면 빠르게 도망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할 일은 강아지들과 함께 하는 산책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은 각자 강아지 한 마리씩 매칭 받아 산책을 다녀왔는데요. 저의 산책 메이트는 '캘리'라는 강아지였습니다. 원래 캘리는 힘이 무척 세고 젠틀한 편이 아니어서 남성 봉사자 분께 맡기셨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강아지가 그날따라 흥분을 해서 널뛰는 바람에 메이트를 바꾸어 제가 캘리와 함께 하게 되었죠. 초반에는 캘리가 여기저기 냄새를 맡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당황했지만, 어느새부턴가 제 보폭에 맞추어 걸어주더라고요. 평소에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고 하니 '얘가 나랑 뭔가 통했나?' 싶었습니다.
딱 두세 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늦잠을 자고 일어나 TV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운이 넘쳤습니다.
저는 봉사에 큰 뜻도,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고 나니 제가 그동안 '봉사'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봉사'를 떠올리면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 속상하고 마음 아픈 광경, 슬픈 감정, 힘든 노동이 필요한 일들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면, 이날부로 저에게 남은 봉사에 대한 기억은, 캘리와 함께 보폭을 맞추며 걸은 시간, 하루 종일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귀염댕댕이들, 사료를 옮길 때 서로의 수고를 덜어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눠 먹은 커피와 초콜릿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일주일에 두세 시간, 아니 한 달에 두세 시간만이라도 평소에 잘 안 하던 일을 찾아서 해보려고 합니다. 평소에 잘못 인식하고 있던 부분들을 깨기에 주말 두세 시간 정도면 충분하니까요. 몸집이 작은 제가 컨트롤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캘리가 세상 가장 젠틀한 산책 메이트가 되어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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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