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02 : 영국 런던
한인 민박
런던의 밤은 노란 불빛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도로에는 빨간색의 2층 버스들이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리를 걸어 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도착했다. 번화한 시내에 위치한 숙소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작은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2층에는 부엌이 있었다.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좁은 계단을 따라 캐리어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2층 짐대 2개가 있는 작은 방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줄지어 서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기내식 말고는 먹은 것이 없었고 우리가 챙겨 온 라면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내려갔다. 라면을 먹고 식탁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간식을 먹기 위해 내려온 독일인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한인 민박에는 한국인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그저 신기한 광경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인 민박에 묵게 된 이유를 물었다.
“나는 캠프힐이라는 곳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했었어.”
“정말? 우리도 캠프힐에 방문할 예정이야.”
“캠프힐에는 한국인 코워커(자원봉사자)들이 정말 많았어.”
그녀는 영국의 장애인 커뮤니티인 캠프힐에서 한국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오랜 시간 한국인들과 함께 하며 한국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계기로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동생과 런던 여행을 위해 방문 중이었고 동생과 함께 한 것이다. 또 동생에게 한국인 친구들을 더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한인 민박에서 숙박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긴 대화를 할 수 없어 금세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독일인 자매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노력했고 우리에게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궁을 함께 보러 가자며 제안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었고 저녁을 먹었기에 우린 흔쾌히 그녀들을 따라나섰다. 빅벤 근처에 다 달아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널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큰 의미 없을 소나기였겠지만 맑은 하늘에서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는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이미 맥주 한잔을 하여 기분이 좋았던 우리는 비가 내리자 더 신이 났다. 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뛰며 다리를 건넜고 우산은 쓰지도 않은 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곧 비가 거세졌고 우린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영국에 도착한 첫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독일인 친구가 생겼지만 짧은 영어 때문에 깊은 친구는 될 수가 없었다.
서머힐 학교
다음날 아침 서머힐 학교에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서머힐 학교는 영국의 교육가 A.S. Neill이 설립한 학교로 영국 런던에서 동북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서포크'란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숙사제 사립학교로 자유교육을 바탕으로 한 대안학교인 이 학교는 강요 없는 자유로운 학생 활동을 철저히 보장하며, 학생자치를 강력하게 권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머힐 학교에서의 인터뷰를 위해 5시간 동안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했다. 낯선 길이라 찾아가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막내의 노력으로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 만난 독일인 자매와 짧은 영어 실력으로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인터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인터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유창하지 못한 영어 실력이었다. 우리 팀 모두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막상 학교를 방문한다고 해도 원활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질문지를 바탕으로 질문을 하고 답변은 영상으로 찍어 나중에 편집을 해볼 요량으로 무작정 학교로 들어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서머힐 학교의 인터뷰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우연히 한국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린 학교 정문 옆에 있는 작은 벨을 눌렀다. 그리고 사람이 나오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예쁜 코트를 입은 아시아계 사람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한국인이세요?”
“네, 저희는 인터뷰를 하려고 찾아왔어요. 얼마 전에 방문한다고 연락드렸었는데요.”
그녀는 서머힐 학교의 졸업생이었다.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녀는 방학을 맞아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학교에 들린 것이었다. 마침 그날 우리가 학교에 방문했고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서머힐 학교 졸업생이었던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 자유주의 교육의 장점과 단점, 어려운 점과 극복해야 할 점에 대해 들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졸업생이었던 그녀도 선생님이 전해주는 학교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워했다.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와 교실, 자치 회의가 열리는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서머힐 학교는 영국의 대안학교로 높은 학비와 생활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우린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배낭여행을 오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이 체력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운동을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막상 영국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를 공유하는 여유롭고 풍성한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영어에 유창하지 않더라도 관광을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그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필요로 했다. 많이 늦었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단기간 유창 해지는 것은 힘들겠지만 여행을 통해 그곳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깊게 이해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