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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Oct 22. 2021

캠프힐 커뮤니티의 사람들

유럽 여행기 03 : 영국 캠프힐 커뮤니티

글로벌 챌린저 프로젝트는 우연의 연속과 현지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진행되고 있었다. 서머힐 학교 다음 목적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장애인 생활 공동체인 캠프힐 커뮤니티였다. 영국에는 6군데 캠프힐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중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캠프힐 커뮤니티를 방문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이동하여 런던 외곽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한 길을 따라 예쁜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넓은 주택 단지 안쪽에 캠프힐 커뮤니티가 위치하여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캠프힐 커뮤니티

캠프힐 커뮤니티의 입구는 담장 없이 오픈되어 있었다. 안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영국식 2층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또 하나의 작은 마을이 있는 듯했다. 구경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매니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곳에 오기 전에 메일을 통해 매니저와 인터뷰 약속을 했었다. 건물에서 나온 누군가가 우리를 맞이했다. 

"한국인이세요?"

그는 캠프힐 커뮤니티의 한국인 자원 봉사자였다. 그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장애인들과 매니저 그리고 코워커라 부르는 자원 봉사자가 지내는 곳이었다. 건물 안에는 매니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코워커는 매니저에게 우리를 소개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영국의 교육과 장애인 복지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영국에 왔어요."

우린 또다시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캠프힐 커뮤니티의 운영방법과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이곳에 많은 한국인 자원 봉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캠프힐 커뮤니티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 캠프힐 안에는 새로운 손님의 방문이 알려진 듯했다.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밝게 인사해주는 그곳의 구성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은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여느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흔히 보통의 사람들이 장애인 커뮤니티를 떠올릴 때는 차갑고 보호의 느낌을 갖기 마련이지만 캠프힐은 보통의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곳이었다. 이곳은 웃음과 행복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캠프힐 커뮤니티

한국인 코워커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카페에 모여 앉았다.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여기에 한국분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캠프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유학생활 중에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고, 한국에서부터 자원봉사에 관심이 많아 직접 코워커에 지원해 온 친구들도 있었다. 급여는 따로 없지만 숙식이 제공되고 소정의 용돈도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유학을 고려하는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었다. 코워커들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영어를 배우고 쉬는 날에는 런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캠프힐 커뮤니티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대부분 1~2층짜리 건물로 거주지, 카페, 창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 동별로 4명의 장애인과 2명의 코워커가 함께 거주한다고 했다. 코워커들은 장애인들과 살면서 아침, 저녁 식사를 같이하고 장애인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며 하루 일과를 함께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이러한 운영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되었다. 

"너무 멋져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편견 없이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간식을 먹으며 한국인 코워커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친해지게 되어 코워커들은 오늘 밤에 있을 커뮤니티의 파티에 초대했다. 하지만 타이트한 일정으로 내가 몸이 좋지 않았고 캠프힐에서의 1박을 계획하지 않아 모든 짐이 런던의 숙소에 있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긴 고민 끝에 코워커들의 제안을 뒤로하고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런던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렇게 다시 3시간이 걸려 런던 숙소에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감기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다음날 일정으로 런던 소재의 대학에 방문하여 교수님과 전공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후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인터뷰 일정을 친구들과 함께 진행할 수 없었고 대신 친구들의 짐을 가지고 카페에 앉아 기다렸다. 몸이 아프게 되자 설렜던 런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런던이 마치 무채색이 된 거 같았다. 체력이 약해지자 마음에서도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2시간 정도 카페에 앉아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인터뷰를 마친 친구들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카페로 돌아왔고 친구들 얼굴을 보자 미안한과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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