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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Nov 23. 2021

모든 것이 별일,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날

스페인 한 달 살기 04 : 마드리드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누가 뭐라 해도 자유로움일 것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며 하고 싶을 때 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것은 없다. 여행도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자유로움이 좋았다. 언제나 자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사치라는 것을 언제인가부터 알게 되었고 일상에서 찾기 힘든 이 자유를 찾아 나서야 했다.  


마드리드에 머물며 숙소 앞 카페에 들려 매일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부렸다. 추로스와 핫초코를 한 잔 하거나 빠에야를 먹기도 하고 아침부터 샹그리아에 얼큰하게 취해보기도 했다. 일상에서 벗어나자 자연스럽게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값진 것이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이 자유로움은 자시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혼자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결국은 외로움도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자유로움을 며칠 누리고 나자 혼자 마시는 커피가 조금은 외롭게 느껴졌다. 카페 안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나는 외로워졌다. 서른 살 정도 되면 이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미성숙함에서 벗어나 남들이 봐도 그럴 듯 한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만 알았다. 모든 일에, 그리고 이 외로움에 초연해질 것이라 기대했던 나는 한 방 맞은 듯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되고 있는 서른한 살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에 초연해야 할 나는 일과 사랑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으며, 내가 겪어왔던 아픔 뒤의 성장과도 상관없이 모든 일들이 별일이었다. 몇 번의 헤어짐을 겪은 후 이별에 익숙해진 줄 알았지만 다시 찾아온 이별은 몇 배나 힘들었고, 취직만 성공하면 힘든 일 따위 별거 아닐 줄 알았지만 거대한 장애물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또 혼자서도 잘할 것만 같던 이 여행은 자유로움 뒤를 따라오는 외로움과 정면대결을 해야 했다. 


돌이켜 보면 시련이나 외로움은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다시금 반복됐다. 깊은 동굴 속 어딘가에 앉아 어둠 건너편 나의 미성숙한 모습들을 직면하다 겨우 빠져나오곤 했고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곧 어둠 속에 다시 처박혔다. 혼자 하는 여행은 단연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함께해야 할 미성숙한 나의 아픔을 돌이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별일을 마주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언제쯤 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시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서른 살이 넘으니 세상이 재상영관 같다고.
단 하나의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보는 것만 같다고.
대체 우리는 어떻게 성숙해야 하는 것일까.'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스페인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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