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한 달 살기 04 : 마드리드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누가 뭐라 해도 자유로움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 만큼 자유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여행도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했기에 여행 중 얻을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이 좋았다. 언제나 자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지만 일상에선 커피 한 잔을 하며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사치에 불가했다.
마드리드에 머물며 숙소 앞 카페에 들려 매일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타지에서 할 일 없이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리는 것은 자유 그 자체였다. 때로는 추로스와 핫초코를 한 잔 했으며, 아침부터 샹그리아에 얼큰하게 취해보기도 했다. 일상에서 벗어나자 자연스럽게 자유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값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쑥뿔쑥 외롭고 심심했다. 혼자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이 자유도 외로움과 함께했다.
자유로움을 며칠 누리고 나자 혼자 마시는 커피가 조금은 외롭게 느껴졌다. 카페 안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나는 외로워졌다. 서른 살 정도 되면 이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미성숙함에서 벗어나 남들이 봐도 그럴 듯 한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만 알았다. 모든 일에, 그리고 이 외로움에 초연해질 것이라 기대했던 나는 한 방 맞은 듯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되고 있는 서른한 살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에 초연해야 할 나는 일과 사랑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으며, 내가 겪어왔던 아픔 뒤의 성장과도 상관없이 모든 일들이 별일이었다. 몇 번의 헤어짐을 겪은 후 이별에 익숙해진 줄 알았지만 다시 찾아온 이별은 몇 배나 힘들었고, 취직만 성공하면 힘든 일 따위 별거 아닐 줄 알았지만 여러 장애물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또 혼자서도 잘할 것만 같던 이 여행은 자유로움 뒤를 따라오는 외로움과 정면 대결을 해야 했다.
돌이켜 보면 시련이나 외로움은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다시금 반복됐다. 깊은 동굴 속 어딘가에 앉아 어둠 건너편 나의 미성숙한 모습들을 직면하다 겨우 빠져나오곤 했고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곧 어둠 속에 다시 처박혔다. 혼자 하는 여행은 단연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함께해야 할 미성숙한 나의 아픔을 돌이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별일을 마주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언제쯤 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시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서른 살이 넘으니 세상이 재상영관 같다고.
단 하나의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보는 것만 같다고.
대체 우리는 어떻게 성숙해야 하는 것일까.'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