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딱 기다려, 내가 간다
부제-뒤늦은 미국 여행기 3-미동부/캐나다 패키지 여행기
우리 부부는 1987년 여름에 모임을 통해 만나서 4년의 연애를 거쳐 1991년에 결혼했으니 만난 지는 36년, 결혼한 지는 33년째가 되어가고 있는 쫌 연식이 된 부부이다. 지 인생에 '결혼'이란 절대 없을 일이 라고 주장하는 큰 딸은 어떻게 '한'사람하고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냐고, 특히 아빠하고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냐고 나를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저도 30년 넘게 아빠랑 살았으면서도 아빠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 부부 둘 중에 굳이 트러블 메이커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나라고 말할 수 있다. 남편은 약간 보수적이긴 하지만 FM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점잖고 성실한 사람이다. 남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자기가 손해 보고 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나는 좀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두 번도 생각 않고 바로 결정해 버리는 좀 단순한, 어찌 보면 좀 무식하기도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인 면, 특히 소비 경향이 너무 달라 결혼하고 꽤 오랫동안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켰었고 지금 생각해 보며 그 성격에 나한테 큰소리도 못 내고 끙끙 앓았을 것이다.
여행얘기를 하겠다고 제목을 붙여놓고 시작한 얘기가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꽤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성향이 서로 달라서 나도, 남편도 힘든 점이 있었겠지만 특히 남편이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꽤 심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어느 때부턴가 괜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었다. 경제적인 돈 문제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친정 쪽에 빌려준 꽤나 큰돈을 결국 돌려받지 못했는데도 그것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남도 도와줄 수 있는데 조카들 용돈(그렇게나 많은 용돈을?) 줬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라'라고 했을 때는 그야말로 남편에 대한 고마움에 마음속으로 평생 순종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나 스스로 하기도 했다. 그때 한 약속은 못 지켰지만 언젠가는 내가 느끼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꼭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남편은 여행하는 것을 나만큼이나 좋아하면서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인지 비행기 타는 것은 많이 불편해한다. 그래서인지 긴 시간 비행기를 탈 때도 한 번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만 있기도 했다. 화장실도 가지 않으려고 기내식을 맘껏 먹지 않은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남편을 위해 비행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고 맘먹었고 패키지여행 상품을 선택하면서 좌석 승급과 돌아오는 날짜 조정에 관한 상의를 함께 했었다.
좌석승급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10시 50분 비행기여서 7시쯤 공항에 도착하여 여행사로부터 일정표를 받고 비자, 출국 수속에 관한 성명을 듣고 아시아나 항공 체크인 카운터인 C열로 가서 여권을 내밀었더니 아시아나 비즈니스석 수속은 A열에서 따로 한다고 설명해 줬다. 그때서야 좌석을 업그레이드한 것을 안 남편은 깜짝 놀랐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당신을 위한 깜짝 선물이라고 했더니 활짝 웃으면서 좋아했다.
비즈니스석 탑승 수속은 체크인할 때부터 달랐다. 우선 줄을 길게 서지 않으니 너무 좋았다. 짐을 맡길 때도 짐가방에 Priority라는 종이를 따로 붙여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표시를 보고 짐을 먼저 보내고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검색과 수속을 마치고 면세 구역으로 비즈니스 라운지에 가서 아침도 먹고 탑승할 때까지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면세점에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황홀했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 쏘다니면서 아이쇼핑, 쇼핑을 즐겼었는데 여러 번 가다 보니 그것도 시들해지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쉬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탑승시간. 비즈니스라 많이 기다리지 않고 먼저 타니 기분 좋다. 자리를 찾아 앉으니 승무원이 개별적으로 인사를 하고 다닌다. 우선 자리가 넓으니 좋다. 14~15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정말 누워서도 갈 수 있으니 그나마 고생이 좀 덜하다. 식사도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까지 코스로 제공되고 퀄리티도 좋아서 대접받는 기분이 쏠쏠하다. 편하게 누워서 영화도 보고 잠도 자니 남편도 좋은지 '집을 팔아서라도 여행 갈 때는 비즈니스를 타야겠다'라고 한다. 그건 아니지.
14시간 30분가량의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JFK공항 도착했다.
19일에 출발했는데 다시 19 일인건 경험 할 때마다 신기하다.
비행기는 편하게 타고 왔는데 공항에 도착해서가 문제였다. 일찍 내렸고 우리 앞에 도착했던 비행기가 없었는지 입국 수속 장소로 가니 열댓 명 정도밖에 없었다. 빨리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속도가 장난 아니다. 어찌나 일처리 속도가 느긋한지 한국 사람들은 속 터져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때 우리 차례가 왔다. 남편은 미국이 첨이라 그런지 열손가락 지문을 찍었늣데 난 몇 번 와서인지 얼굴사진만 찍고 통과했다 짐을 찾고 참** 여행사 가이드를 만났는데 일행을 만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미국의 시작은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인내심을 배우는 기회였다고 워로 해야 하나?
드디어 일행을 만나 첫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수제버거 SHAKE SHACK 버거로 점심부터 먹었다.
식사 후에는 리틀아일랜드라는 곳으로 갔는데 강 위에 여자들이 신는 하이힐
뒷굽 모양의 콘크리트를 붓고 그 위에 생 태를 가꾼 곳이었다. 20년 전에는 없었던 곳이다. 패키지여행은 알다시피 점만 찍는 거다. 인증숏을 찍고 예전에 공장 지역이었던 근처 기찻길에 씨들이 날아와 생태가 조성된 산책길인 하이랜로 향했고 역시 이곳에서도 짧은 구간만 산책했다. 산책길 자체가 너무 멋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중에 시간 내서 꼭 오자고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다음 코스는 첼시 마켓이었다. 예전에 오레오 과자를 만들던 공장이었는데 공장이 문을 닫고 우범지역으로 변했던 곳이 쇼핑몰과 푸드마켓으로 변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여기서는 다행히 시간을 넉넉히 주어서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었다. 그 바로 옆에 꽤나 큰 스타벅스매장이 있었는데 굉장히 큰 로스터리로 커피를 볶고 있었고 그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물론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그러려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지하, 1층, 2층까지 있는 엄청 큰 매장이었는데 크다고 사람도 많아서인지 앉을자리도 찾기 어렵고 줄도 길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다음 일정은 베슬이라는 곳이었다. 맨해튼의 허드슨 야드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된 16층 높이의 정교한 벌집 모양의 구조물이다. 토마스 헤더윅이라는 사람이 설계했고 계단의 총길이만 1.6km를 넘는다고 하고 한 번에 1,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인데 2019년에 개방된 이후로 계단을 오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몇 명 생긴 이후로는 아예 문을 닫아서 겉모습만 볼 수 있었다. 높이 올라가면 허드슨강 너머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녁식사로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한식으로 먹었는데 해외여행할 때 특별히 고추장이나 김치 등을 챙기지 않는 나로서는 괜찮았지만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음식이 별로 그립지 않을 때 먹어서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패키지여행이나 자유여행이나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패키지여행의 단점 중의 하나는 숙소가 시내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도 뉴저지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뉴저지에서도 맨해튼과 정말 먼 곳이었는지 미리 와 있던 딸아이한테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자기가 있는 곳에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오려면 두 시간 반이 걸린다고 해서 단체 여행이 끝나면 만나기로 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거의 하루 만에 호텔에 도착하여 길고 긴 첫날의 여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