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에
지난 화요일 12시 10분에 수술실로 향하는 남편을 수술실 앞까지 배웅하고 입원실로 돌아왔다. 수술실 앞에 부적이라도 붙여놓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소환하고 싶었지만 수술 하는 동안 보호자는 입원실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대신 000환자분이 수술실에서 대기중입니다. 000환자분이 수술실로 입실하셨습니다. 회복실로 이동중입니다. 등등의 메시지를 핸드폰으로 알려준다고 한다. 수술중이나 수술후에라도 의사선생님이 보호자를 만나야 할 일이 있으면 입원실로 올라가서 보호자를 찾을 수 있으니 '반드시' 입원실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입원실로 돌아왔는데 마음이 싱숭생숭 안정이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밥 때가 되었다고 배가 고프다니 어이가 없다. 당뇨가 온지 꽤 되어 속이 비면 저혈당증세가 한번씩 나타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끼니를 때운다. 무슨 맛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티비도 보다가 책도 폈다가 해보지만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립선암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된 책자에는 분명 두세시간이면 된다고 했는데 세시가 넘었는데도 별 소식이 없다. 다 별일 없지만 걔 중에 한 두명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더니 혹시 못 깨어 나는 건가? 수술하다 잘 못 된건가? 일각이 여삼추라고 억겁의 세 시간이다.
세 시 반쯤 되니 수술 끝나고 회복실로 이동했다는 문자가 온다. 휴.... 잘 되었나보다. 그런데 입원실로 돌아온다는 문자가 올 생각을 안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시계 보면 겨우 십분, 겨우 오분. 기다리다 지칠 무렵 000환자분이 입원실로 올라가십니다 라는 문자가 온다. 한걸음에 엘리베이터까지 뛰어 갔더니 마취에서 막 깨어난 듯 얼굴을 찌푸린 남편이 침대에 누워서 온다. 고생했어... 손을 잡았다. 아직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손을 행여 놓칠까 꼭 잡고 따라온다. 간호사가 환자를 침대에 옮기고 수액과 진통제 등을 다는 동안 문앞에 서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겨우 눈물을 참고 괜찮은척 병실로 들어가니 피주머니, 소변줄, 수액, 진통제 등을 주렁 주렁 달고 누워있다.
수술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바로 뒤따라 들어오셔서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이제 잘 회복할 일만 남았다. 수술 다음 날 부터는 물도 조금씩 마시고 조금씩 걸으면서 서서히 움직였다. 수술 하기 위해 전신 마취를 하면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기능을 멈추었다 깨어 나는 것이므로 폐도 줄어 있고 장 기능도 정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자꾸 기침을 하면서 가래도 생기면 뱉어 내야 하고 심호흡도 자주 해야하며 - 심호흡을 잘 하기 위한 도구도 따로 있다- 조금씩 걸으면서 장기능을 회복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한다. 아픈 배를 부여 잡고 복도를 천천히 걷는 남편과 함께 걸으니 그저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하고 고맙다. '죽을 때까지 착하게 살아야지, 다른 사람 맘 아프게 하는 행동이나 말은 절대 안해야지'
수술당일은 물도 못마시고 다음 날은 물은 좀 마셔도 된다고 한다. 아주 조금씩, 목을 축이는 정도로만. 그 다음날이 되니 완전 미음으로 식사가 나온다. 모든 것이 물이다. 나박 김치도 유자차도 사과 주스도. 세 번쯤 먹으니 '밥은 안주고 물만 주네' 남편 입이 댓발이나 나온다.
마취 후엔 장기능도 마비 되어 있어서 장기능이 회복되어야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데 가스가 배출 되는 것으로 장기능의 회복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가스가 잘 나오게 하려면 무조건 걷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하루 종일 틈만 나면 병동 복도를 걸어 다녔다. 배는 더부룩한데 가스가 나오지 않아 결국 엑스레이까지 찍었다. 엑스레이 상으로 가스가 가득 차있는데 배출이 안된다고 한다. 오늘 오전까지 기다려 보다 안나오면 관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배출 되지 않는 가스를 그대로 방치하면 장 꼬임이 발생 하여 수술할 때보다 더 큰 통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관장까지 하는 것은 좀 그래서 어서 방귀가 나와 주기를 기다렸다. 수술 부위가 당기고 아픈 것도 힘든데 배속까지 더부룩하여 힘들어 하던 남편은 어떻게든 가스를 배출해보겠다고 좀 심하다 싶게 자주 걸었다. 오전 10시가 거의 되 갈 무렵 걷고 들어온 남편이 침대에 누울려고 하는데 방귀 뀌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방귀소리 듣는게 이렇게 기쁘다니. 그 어떤 명곡보다 더 감미롭다. 새벽에라도 방귀를 뀌면 바로 얘기 해야 한다고 해서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방귀가 안나온다고 함께 걱정해주던 간호사분께 '성공했어요, 나왔어요' 라고 말하니 '잘했어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준다. 남편 보다 먼저 수술한 환자 분중엔 관장까지 한 사람이 몇명 있다며 참 다행이라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점심 식사부터는 죽이 나왔다. 월요일 점심 먹고 나서 금식했으니 5일만에 제대로된 식사를 하는 셈이다. 비록 죽이지만. 내일부터는 밥으로 바뀐다고 한다. 카페인 성분이 들어간 커피나 녹차를 제외하곤 과일이며 빵, 과자 등도 먹을 수 있다니 하루 세 끼 먹는 일이 이리 고마울 데가 없다. 물도 못 먹는 환자를 옆에 두고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이젠 나도 당당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
암일지 모른 다는 것으로 시작해 검사하고 진단 받고 수술 날짜 정하고 수술 하기 까지 거의 세달 간 깜깜한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아직 회복하려면 멀었고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를 해야 할 지도 모르지만 이만하기가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복도를 걸으면서 앞으로 술도 끊을 것이고 (암일지 모른다고 했을 때 부터 그 좋아하던 술을 확 줄였다.)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만 골라 먹을테니 백살도 넘게 사는 거아니냐고 농담아닌 농담도 주고 받았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 함께 잘 나이들어가라고, 늙지 말고 잘 익어가라고 하느님이 미리 주신 시련, 아니 선물이라고 생각하련다. 일찍 잠든 남편의 방귀 소리가 정겨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