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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Sep 23. 2024

함께 나이들어가기

함께 늙지 말고 익어가기


 오랫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작가의 서랍'을 열어보니 오래전에 '함께 나이들어가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놓은게 있다. 7년전에 써 놓은 글인데도 요즘 쓴다 해도 거의 똑같이 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내 생각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 같다. 

 7년전 글-

 부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이라는 말을 젊은 시절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부부로 함께 7산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둘이 만나 살면서 점점 한 발자국씩 방향을 틀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쉽게 방향이 틀어지지는 않았다.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바라봐야 한다고 상대방의 시선을 강요하고 다투고 영원히 반대방향으로만 나갈 뻔했던 위기도 있었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자기의 색깔을 중화시키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질 때는 특히 영화를 볼 때 이다. 나와 남편은 영화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평생지기 남편과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그저 그런 날들로 채워지는 인생길에 좋아하는 것이 같은 짝꿍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 우리는 보고 싶어 하는 영화도 항상 같다. 그것 또한 참 좋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장르가 다르면 곤란 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장르를 좋아했더라면 함께 영화관에 가더라도 다른 영화를 혼자 보거나 둘이 함께 보려면 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를 억지로 봐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도 거의 비슷하다. 하긴 우리가 봤던 영화들이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들이긴 했었다. 귀향, 동주, 노무현입니다. Get Out, 택시운전사 등등 뭔가 다른 시각으로 접근 하기는 참 힘든 영화들 아닌가?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 우린 둘 다 ‘자식들 인생’보다는 ‘우리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부모로서의 지원은 아끼지 않겠지만 그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기로 했고 지금 실천하는 중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를 들어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라든가, 직업을 선택하거나 그만 두는 문제들에 어떤 반응을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아직은 아이들의 독립적인 사고와 생활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그 외에도 재산을 형성하고 지키는 문제나 아주 사소한 집안일 관련 내용에도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때로는 서로가 서로의 머릿속을 탐험하고 나온 건 아니가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지고 볶으면서 지혜롭게 극복한 결과이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양보해준 서로에게 많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이대로 평온하게 함께 나이 들어가기를 소망해본다. 


 오늘 좀 더 내용을 더하자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저녁 아홉시이고 장소는 서울 삼성병원 입원실이다. 남편의 전립선 암 수술을 앞두고 있다. 건강에 이상을 발견해놓고 '다행이다'라는 말을 쓰기는 좀 그렇지만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고 수술만 하면 예후가 좋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지난 두달 간 엄청 나의 뇌를 속이면서 견뎌냈다. 본인은 본인대로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 흔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약 하나 먹지 않으면서 건강을 자신했으니 처음에 받은 충격이 컸고 지켜보는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충격은 좀 완화되었는데 수술을 앞두고 입원실에 있으니 다시 싱숭생숭해진다. 별일 없기를 소망하지만 수술 전 동의서를 받으며 '마취 후에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아무 감정없는 의사선생님의 딕션에 심장이 쿵 내려 않는다. 

 평온하게, 크게 마음 쓸 일 없이 나이들어가기를 소망했는데 그런 삶을 바라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었나 싶다. 7년 전은. 

 오늘 다시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지금까지 지루할 정도록 평온했던 내 삶이 질투가 나서 주는 시련이라면 이걸로 충분하다고, 지난 두달 동안 '내가 그동안 잘 못 살았나?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 건가? 아나면 전생에 큰 죄를 지었나? 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지옥을 겪은 걸로 충분하다고. 

 수술이 잘 끝나고, 건강을 회복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둘이 함께 잘 익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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