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쓰고 조카는 그리고

생각 많은 나는 아빠가 되고, 말 없는 아빠는 내가 된다

by 나무늘보

#삼촌은 쓰고


목표는 지난해 아빠의 칠순이었다. 허나 느린 글쓰기와 팔 할의 게으름이 보태져 책 만들기는 종내 무산되고 말았다. 꾸준히 쓰겠다던 첫 마음이 무색하게 완성된 글이 나오는 날은 들쭉날쭉. 한두 은 기본이고, 반년 만에 글을 발행한 적도 있다. 완성된 글을 차곡차곡 모으는 일은 매일 거는 안부전화와 같을까. 할 말이 없어도 어김없이 거는 전화, 별말 아니라도 안녕하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한 대화,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작은 몸짓처럼 말이다. 어떤 말로 시작할지 망설이다 전화번호 누르듯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써보기로 마음먹는다. 에필로그에 쓰기엔 이미 뒤늦은 후회 또는 변명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구절절한 반성과 다짐을 여기에 적는 건 아직 써내려 갈 이야기가 더 있기 때문이다.


글로 풀어내는 일은 말 없는 아빠에게 생각 많은 아들이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글과 더불어 조카님의 다정한 그림을 보며 이따금씩 아빠의 말풍선을 채워 넣곤 했다. 그렇게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나는 쓰고, 조카님은 그림을 그렸다. 시나브로 아빠의 몸짓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스쳐 지나간 아빠의 말들을 곱씹어 보고, 차마 밖으로 내지 못했을 마음을 끄적이게 되었다. 아빠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은 감정 또한 글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결코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독불장군 같은 아빠의 행동을 애써 피하며, 아빠와 나는 다르다고 선을 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글 몇 편 썼다고 해서 아빠와 극적인 화해를 하거나 화목한 부자관계로 발전한 건 더더욱 아니다. '아빠'라는 이름에 가려진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서른 살의 한 남자는 결혼을 하고, 단칸방을 구해 신혼집을 꾸렸다. 큰누나가 태어난 이듬해, 어떤 책임감이 당신의 어깨에 지워졌을지 이제는 상상해볼 수 있다. 당신의 아버지와 서먹했던 당신이 갓 태어난 날 보며 했을 어떤 다짐이 그려진다. 첫 마음은 오래 못가고 결국 당신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당신 모습을 보며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내 맘대로 '아빠'를 상상하고 쓰고 그리며 당신에게 씌워진 '아빠'라는 가면을 조심스레 벗겨 본다. 가면 때문에 보지 못했던 당신의 불안, 설렘, 외로움, 후회,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생각 많은 나는 아빠가 되고, 말 없는 아빠는 내가 된다.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또 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내딛는다.



# 조카는 그리고


우리는 각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함께 무언가 만들어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한동네 살면서 서로의 집을 드나들던 한 살 터울의 조카와 삼촌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젠 서로의 집은 멀어졌고, 물리적 거리만큼 어떤 일상을 사는지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에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근함이 남아 있었다. 계란 한 판을 넘긴 나이가 되어버린 채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다. 취향이 비슷했던 우리는 지난 공백의 어색함을 금세 뛰어넘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삼촌은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둘이 힘을 합치면 재미난 일을 벌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겼다. 삼촌은 아버지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고모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림 그리기에 앞서 삼촌의 글을 받아 읽었다. 글을 읽고 나니 가족은 친근하면서도 낯선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 가깝다고 느끼는 상대일지라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그건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삼촌의 글을 읽으며 가깝고도 먼 가족의 의미와 따뜻한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쉼을 찾기도 한다. 때로는 혼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거나 즐거운 걸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오랜만에 내 뿌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다가도, 그 누구보다 큰 위로가 되는 가족이란 존재의 끈끈함을 생각해본다. 한 편 한 편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된 지금 삼촌의 지난 글과 나의 그림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계속되는 관계는 과거이자 미래이니까.







생각 많은 나는 아빠가 되고,
말 없는 아빠는 내가 된다.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또 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내딛는다.


<말 없는 아빠와 생각 많은 아들>, 에필로그


글 / 나무늘보, 조카님
그림 / 조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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