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의 기도

두 눈 꼭 감고 너는 무엇을 바랐을까

by 나무늘보

어릴 적 두 눈 꼭 감고 두 손 모으고 웅얼거리는 내 입모양을 떠올려 본다. 어떤 말이었을까. 당시엔 심각했을 어떤 걱정 아니면 욕심 덩어리 소원을 풀어내고 있었을까. 하나 떠오르는 건, 매 끼니마다 으레 당연한 의식처럼 주문을 외던 식사기도. 배가 고플 때면 짜 놓은 대본 읊듯 순식간에 기도를 마치곤 했다. "감사합니다. 이 음식 먹고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보내게 해 주세요. 아멘."


그땐 몰랐다. 장 간단하면서도 식사 전에 하면 좋은 말 정도로 생각했다. 밥을 먹고, 오늘 건강하고,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이 어떤 날엔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한다는 걸 그땐 정말 몰랐다. 아버지 칠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다 같이 식사기도를 했다. 집에서 밥 먹을 때마다 늘 길게 이어지는 부모님의 식전 기도는 때론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기도시간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들었다. 그래서인지 기쁜 날 마냥 기쁘지 않았다.


못 본 새 조카는 무럭무럭 자랐고, 아버지의 걸음은 전보다 더 느려졌고, 엄마도 잔병치레가 잦아졌다.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이 이제는 간절한 기도가 된다. 오랜만에 모은 두 손 옆 두 눈 꼭 감은 조카의 얼굴이 보인다. 어릴 적 식사기도 하던 나처럼 게 끝내고 눈 뜰지, 내일 놀러 가는 일을 생각 중일지, 못다 끝낸 숙제에 마음이 조급해하는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을 바라든 그것이 잘 이루어지고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보내길 바라는 삼촌의 기도.




#는 두 눈 꼭 감고


명절보다 더 명절 같았던 날.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과 더불어 주고받는 이야기가 활짝 피어난 봄날에.


사각틀 안에 들어오는, 칠순 맞은 아빠의 미소는 새순 돋듯 수줍고. 곁에서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은 봄햇살처럼 따뜻하고. 어엿한 초딩이 되어버린 조카와 제법 잘 걷고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조카의 키는 시나브로 무럭무럭 자라고.


그저 모두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고 두 손 모았는데. 옆에 너는 두 눈 꼭 감고 무엇을 바랐을까 궁금해지는 그날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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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의 기도


또 오랜만에 마주한 벗들과 함께하는 저녁에. 백일도 안된 예쁜 조카는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정성껏 마련해주신 식탁 위에서 나누는 서로의 근황과. 작고 귀여운 얼굴로 해맑게 웃어주는 미소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네 살배기 조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보드라운 살이 닿는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꾹꾹 눌러 담아서.


잊지 말고 생각하기로, 간절한 마음으로 믿어보기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마주할 날을 기대하는 삼촌의 기도.





#윷놀이 무패행진


어느새 부쩍 커버린 조카들은 윷놀이에 어려운 보드게임까지 척척 해내는데. 친척집을 돌며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형제는 같은 팀이었던 할머니의 맹활약에 힘입어 결국 이겼다고 한다. 짝짝짝.





그저 모두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고
두 손 모았는데.
옆에 너는 두 눈 꼭 감고 무엇을 바랐을까 궁금해지는
그날의 기도.



<조카와 나>, 다섯 번째 이야기



글, 사진 /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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