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이었다. 부모님과 벚꽃놀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초보 운전사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들이 운전하겠다는 한마디에 들뜬 엄마를 보고 용기를 냈다. 그 와중에 예상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막내 조카님이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돌잔치를 마친 조카님을 차로 모시기 위해서는 카시트가 필요했다. 누나는 묵직한 조카의 짐 가방과 함께 카시트를 전해주었다. 요 작은 것 정도야 쉽게 고정시킬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설명서를 찾았고, 그림 보고 따라 해 보는데도 쉽사리 끼울 수가 없었다. 카시트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한 시간 가량 끙끙대고 있는 것인지 몰라 자괴감마저 들었다. 끝내 매형에게 전활 걸었고, 이리저리 돌려 보고 비틀어 보다가 우여곡절 끝에 장착 성공. 땀범벅이 되었으나 삼촌으로서 도리를 다 한 것 같아 뿌듯함에 한껏 취했다. 위에서 한참 기다리던 부모님은 조카님을 모시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삼촌을 보자마자 조카님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아서 낯설었는지, 단단히 삐졌는지, 그것도 아니면 삼촌이 무섭게 생겼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허나 분명한 건 조카님의 울음은 나와 눈이 맞추기 무섭게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네가 편하게 앉은 그 카시트 보이니. 그거 삼촌이 한 거야. 쉬운 게 아니더라.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니.' 한껏 생색을 내고 싶었지만,알아줄 리 없는 조카님은 카시트 위에서 신나서 방방 뛰고 있었다.
운전 중에도 조카님의 밀어내기는 계속되었다. 가끔씩 뒤돌아 조카님을 쳐다보면 조카님 눈에 그렁그렁한 무언가가 맺혔고,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거의 자동반사적인 눈물이었다. 이따금씩 룸미러로 조카님의 모습을 훔쳐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식당에 도착했다. 혹시 모를 울음 폭탄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조카님과 눈 맞춤을 피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탁자에 앉아 막국수를 먹으면서 조심스레 조카님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았다. 순간적으로 삼촌의 눈길을 의식하는 조카님의 눈빛을 발견했다. 마치 삼촌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것 같은. 나의 추측이 맞을까 궁금했지만 조카님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조카님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부모님은 조카님을 교대로 돌보며 힘겹게 식사를 해야 했다. 조카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삼촌은 조카님이 젓가락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젓가락 하나를 들어 조카님에게 슬쩍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전히 눈은 맞추지 않은 채로. "챙챙" 음향효과를 넣으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꽤 오랫동안 칼싸움을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편안히 식사를 마쳤다. 이대로만 가면 조카님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보였다.
조카님의 등 뒤에서 유모차를 모는 일은 수월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았다. 쉬었다 가려고 유모차를 멈추고 벤치에 앉았다. 조카님은 뭐 하고 있나 싶어 유모차의 햇빛 가리개를 들춰보았다. 조카님 눈에 색깔 있는 점이 보였다. 무언가가 들어간 게 분명했다. 바람을 타고 이물질이 들어간 것 같았다. 순간 마음이 다급해졌다. 눈물을 흘리게 해서 빼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조카님에게 삼촌은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정없이 우는 조카님의 눈에서 이물질이 금세 빠져나갔다.
밤이 깊었는데 조카님은 한낮처럼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녔다. 사과 한 알을 오늘의 장난감으로 삼고, 한참을 굴리며 놀았다. 삼촌은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저 멀리 놀던 조카님이 삼촌에게 성큼 다가왔다. 작은 사과 조각 하나를 삼촌 입에 쏙 넣어주었다. 감격한 삼촌은 드디어 친해진 건가 싶어 안아주려고 다가갔다. 갑자기 눈물 뚝뚝 흘리며 도망가는 조카님의 밀당에 괜스레 머리를 긁적거렸다.
또다시 벚꽃이 피었고, 세 살배기 조카는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삼촌과 눈을 맞추어도 울지 않는다. 볼에 살며시 뽀뽀까지 해주는 모습을 보며 그때 그 조카가 맞나 싶어 고갤 갸웃거리게 된다. 그렇게 삼촌의 마음을 밀고 당기던 조카는 안 본 새 또 훌쩍 자라 있었다. 어느새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 가방을 메고,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조카들은 물론, 서른 줄에 접어든 삼촌도 해마다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초딩의 길
이제 곧 초딩이 되는 첫째 조카는 다리꼬기가 자연스러운 어엿한 형으로,
두 달 후면 첫 생일을 맞는 막내 조카는 걸음마를 수월하게 뗀 씩씩한 동생으로.
올해에도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삼촌의 마음
"잘 먹게 뜹니다."
빵 하나에도 고맙다는 조카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두 손 가득한 그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조카의 입모양마저도.
이 짧은 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보다가 그만, 더 좋은 것 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가. 예쁘게 커가는 그 모습이 고맙고 든든해 절로 흐뭇해지는 삼촌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