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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Mar 01. 2022

불낙죽과 쌍화탕

2월 2주차_격리기간 동안 잘 먹고 잘 자서 코로나도 이겨내고

#1 잡곡밥과 곶감


  어제 오후에 받은 전화 한 통에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자가검사를 하고, 혹시 몰라 휴가 내고 느긋하게 일어난 오늘 아침.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동안 계획만 세우고 지킨 적 없던 아침 요가를 해보고. 잔뜩 굳은 몸은 꿈쩍 안 해도 오랜만에 나는 땀이 반갑고 왠지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본가에서 가져온 따뜻한 잡곡밥을 담고, 아직 조금 남은 동치미와 고추장아찌와 블랙올리브를 꺼내고, 엄마 말로는 요즘 제일 맛있다는 배추김치도 조금 꺼내고, 고기가 없는 것 같아 참치캔도 하나 따고, 엄마가 이웃에게 받았다는 곶감도 후식으로 꺼냈다.


  밥 먹고는 다시 자가검사를 하고, 한 줄을 확인하고 마음을 쓸어내린 후에는. 잔잔한 음악 틀어놓고 청소기 돌리고, 바싹 마른빨래를 걷고 반듯하게 개고, 점심을 생각하는 순간이 행복한 월요일.(22.02.07)


잡곡밥, 동치미, 블랙 올리브, 배추김치, 고추장아찌, 참치, 곶감, 아몬드브리즈


#2 검은콩밥과 차돌된장찌개


  생각지 못한 꿀맛 휴가도 잠시, 또다시 출근해야 하는 아침이 도래했다. 일찍 눈은 뜨였으나 몸은 잔뜩 무겁고, 그저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돌덩이 같은 몸을 일으켜 아침밥을 준비했다.


  어제 점심에 먹고 남은 차돌된장찌개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불린 검은콩 넣고 지은 흰밥도 담고, 새콤한 소시지 야채볶음도 살짝 데우고, 사과 한쪽도 자르니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평소보다 많은 양이어서 그런지 다 먹으니 배가 잔뜩 불렀다. 바로 눕고 싶지만, 어제에 이어 아침 요가 유튜브를 틀어 설렁설렁 따라 했다. 잔뜩 굳은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가 여기저기서 들려와도 그저 눕고 싶은 생각만 나도 출근은 해야 한다. 오랜만에 목도리를 두르고 바깥 찬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향하는 아침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지는 오늘.(22.02.08)


검은콩밥, 차돌된장찌개, 소시지야채볶음, 김치, 고추장아찌, 사과, 아몬드브리즈


#3 불낙죽과 쌍화탕


  어제 아침 자가검사 결과 두 줄을 확인하고, 곧바로 받은 PCR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몸은 무겁고, 두통에 목이 붓고 기침하면 몸이 울리며 아프고. 예상 못한 상황에 꼼짝없이 집에 갇히고.


  지난밤 누나가 문 앞에 두고 간 죽과 쌍화탕을 아침으로 꺼내 놓고. 전자레인지에 돌린 따뜻한 죽 한 술 뜨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 또 기침 컹컹. 그래도 잘 먹어야 금방 나을 테니 깨끗하게 싹싹 비웠다.


  방금 전 PCR 검사도 양성으로 나오니 역시 맞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되려 편해지고. 일주일간 격리하면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되는 첫날.(22.02.09)


불고기낙지죽, 동치미, 계란찜, 배추김치, 장조림, 오징어초무침, 바나나, 쌍화탕


#4 삼계죽과 된장국


  검체 채취일로부터 7일이 격리기간이라는데, 그렇다면 오늘이 3일차. 조금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지난밤 가슴을 울리고 목을 긁는 기침 때문에 잠 깨는 횟수가 잦았다. 베개에 머릴 대면 3초면 잠드는 나는 잠을 아예 설치진 않았지만, 일어날 때 몸이 꽤 찌뿌둥했다. 벨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엄마의 모닝콜이었고, 아침 챙겨 먹으라는 말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몸이 아픈 시기에 가까운 곳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따뜻한 마음을 한아름 받고 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그 마음을 잊지 않기로 마음먹고는. 삼계죽과 된장국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죽과 함께 온 반찬들도 꺼내고, 사과즙을 유리컵에 담고, 바나나 한 개를 먹기 좋게 썰었다.


  "밥도 잘 먹고 더 잘 자야지 또 앞으로 있는 일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잖아요"라는 어제 쇼트트랙 1500m 금메달을 딴 황대헌 선수의 말마따나 남은 격리기간 동안 잘 먹고 잘 자서 코로나도 이겨내고 내게 주어진 일들을 다시금 씩씩하게 잘해나가기로 마음먹는 오늘은 햇살 좋은 날.(22.02.10)


삼계죽, 된장국, 계란찜, 오징어젓갈, 장조림, 배추김치, 바나나, 사과즙


#5 트러플전복죽과 그릭요거트


  격리 4일차. 지난밤에는 기침도 거의 안 했고, 물 마시고 싶어서 한 번 일어난 걸 제외하고는 푹 잤다. 무언가에 한참 쫓기는 꿈을 꾼 건 어제 본 드라마 때문인지, 몸이 회복 신호를 보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제 먹고 한 팩 남겨둔 트러플전복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남은 반찬을 꺼내고, 사과 한 조각을 깎아 반으로 나누고, 원래 회사에서 저녁에 먹으려 했던 (유통기한이 임박한) 그릭요거트도 딸기잼과 함께 준비했다.


  지난밤에 한약 5일치가 도착했다. 대한한의사협회 한약무료지원 프로그램이었는데, 신속 친절한 비대면 진료와 더불어 집앞 무료 배송까지. 병원에서 진료 받고 감동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아침 먹고 바로 한약 한 봉지를 컵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따끈한 한약을 천천히 마신 후 몸을 일으켜 창문들을 활짝 열고 환기시키는 금요일 아침.(22.02.11)


트러플전복죽, 동치미, 볶음김치, 장조림, 배추김치, 사과, 그릭요거트, 딸기잼,     아몬드브리즈



그래도
잘 먹어야
금방 나을 테니
깨끗하게
싹싹
비웠다.





        글, 사진 /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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