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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Jul 10. 2022

치즈계란말이와 바나나

3월 4주차_오늘의 내가 반갑고 기특하다

#1 깻잎장아찌와 무말랭이


  꿈같이 흘러간 주말을 뒤로하고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 가뿐하게 일어나는 것, 기침 없이 편하게 호흡하는 것,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 어릴 적에는 당연하게 주어졌던 것들이 요즘 나의 아침을, 일상을, 마음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 더없이 소중한 오늘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오늘 아침에도 나는.


  흰쌀밥을 데우고, 주말에 끓이고 남아 냉동시킨 어묵국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엄마가 챙겨주신 멸치볶음과 무말랭이와 깻잎장아찌를 꺼내고, 천혜향 반쪽과 아몬드우유를 내면 오늘의 아침이 준비된다.


  언제 이런 기분을 느껴보았나 싶을 정도로 가벼운 몸과 마음의 무게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게 된다. 한편 꽤나 오랫동안 무기력한 시간들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시간들이 후회되기보다는 다시금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음이 감사한 오늘의 내가 반갑고 기특하다.(22.03.21)


흰쌀밥, 어묵국, 멸치볶음, 무말랭이, 깻잎장아찌, 천혜향, 아몬드브리즈


#2 고등어구이와 브로콜리


  어제는 두 번째 PT를 받았고, 사정없이 찢겼다.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집에 도착해서는 아침 먹을 것만 준비해놓고 잠들었다. 생각보다 가뿐하게 그리고 일찍 일어났어도 고등어 굽느라 결국 자전거로 사정없이 페달을 밟아야 했지만.


  흰쌀밥을 데우고, 부침가루와 카레가루를 묻힌 고등어를 꽤나 오래도록 굽고, 깻잎장아찌와 무말랭이와 김치를 꺼내고, 남은 천혜향 반쪽을 한 알씩 쪼개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따랐다.


  때마침 지하철도 딱 맞춰 와서 또 달려야 해서 생각지 못한 아침운동이 되고 말았다. 전보다 숨이 덜 가쁜 거 보면 뿌듯하지만, 이제 고작 2주 정도 운동해놓고 너무 김칫국 마시는 것 같고. 한두 사발 마시면 또 어떤가 싶고,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을 나에게 아낌없이 하기로 마음먹는 화요일의 출근길.(22.03.22)


흰쌀밥, 고등어구이, 브로콜리, 깻잎장아찌, 무말랭이, 배추김치, 천혜향, 아몬드브리즈


#3 치즈계란말이와 바나나


  아침밥으로 시작한 2022년, 두 달을 채우고 얻은 용기로 산보와 운동에 도전한 3월의 기록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하다 보면 금세 지치고 와르르 무너져 버릴까 두렵기도 하지만,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첫 마음으로 오늘의 아침밥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곱게 푼 계란물에 치즈를 넣고 돌돌 말은 계란말이를 만들고, 엄마가 준 갈비찜을 데우고, 멸치볶음과 무말랭이를 꺼내고, 바나나 하나를 손으로 뚝뚝 자르고, 새 아몬드우유를 따서 컵에 따른다.


  내일이면, 3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밥 거르고, 점심에는 피곤에 못 이겨 엎드려 자는 게 일상이 되는 날이 다시 올 지 모른다. 그럼 또 어떤가 싶은 마음으로 지난 시간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 본다. 새 마음과 성취감과 용기가 고스란히 녹아든 기록이 나를 보여주고, 또 오늘도 내 등을 두드리며 그저 오늘을 살라고 한다.(22.03.23)


흰쌀밥, 치즈계란말이, 멸치볶음, 무말랭이, 바나나, 아몬드브리즈


#4 계란후라이와 볶음김치


  취기가 잔뜩 오른 지난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몰라도, 조금 늦게 일어났어도 눈 뜨자마자 아침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거나하게 취한 어제의 나는 자기 전에 내일 아침으로 뭘 먹을지 생각했던 게 기억났고, 그런 내가 조금 웃겼고, 기특했다. 제대로 늑장 부리는 오늘도 아침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열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계란 두 알을 깨뜨려 후라이를 만들고, 깻잎장아찌와 멸치볶음과 볶음김치를 꺼내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담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만큼 속이 좋지 않았지만, 아침밥을 꾹꾹 밀어 넣으니 안 먹은 것보단 나은 것도 같고. 첫 단추를 잘 잠근 오늘 하루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 아침밥 챙겨 먹길 참 잘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술은 적당히 마시기로 의미없는 다짐을 기어코 또 하고 마는 오늘의 나.(22.03.24)


흰쌀밥, 계란후라이, 깻잎장아찌, 멸치볶음, 볶음김치, 아몬드브리즈


#5 모찌식빵과 해쉬브라운


  어제도 헬스장 문턱을 넘었다. 생각보다 열심히 하는 내가 신통방통한 요즘. 고작 2주 하고서는, 자전거 페달 밟는 힘이 좋아진 것도 같고, 팔도 조금 두꺼워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다이어트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도 하고(?), 오히려 식욕이 좋아져 저녁엔 치킨을 우걱우걱 먹었고, 오늘 아침도 거하게 차리는데.


  냉동해둔 식빵을 토스터기에 굽고, 후라이팬에 계란 한 알을 깨고, 해쉬브라운 세 개나 굽고, 어제 끓여둔 크림스프를 데우고, 레몬딜크림과 카야잼과 치즈와 케챱을 준비하고, 배불러서 먹지 않았지만 그릭요거트 하나도 꺼냈다.


  벌써 금요일이 되었고, 든든히 아침 챙겨 먹고 밖을 나서는데 오늘의 출근길은 어제보다 한층 밝아졌다. 하늘과 길과 횡단보도와 신호등과 차와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신나게 페달 밟는 오늘 나의 마음도 또렷하게 보이는 듯하다.(22.03.25)


모찌식빵, 크림스프, 해쉬브라운, 계란후라이, 레몬딜크림, 카야잼, 치즈, 아몬드브리즈, 그릭요거트



새 마음과 성취감과 용기가 고스란히 녹아든 기록이 나를 보여주고, 또 오늘도 내 등을 두드리며 그저 오늘을 살라고 한다.





글, 사진 /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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