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주차_작심한달이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는 오늘
부쩍 따뜻해진 주말에는 조금 기운이 나서 옷장 정리를 끝냈고, 봄버자켓을 꺼내 입었고, 오가던 어떤 진심은 따뜻했고, 또 든든했다. 봄이 오니 몸도 마음도 한 발짝 내딛고, 한결 가벼웁게 시작하는 오늘도.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남은 짬뽕국물을 데우고, 엄마가 주신 들기름볶음김치를 꺼내고, 케일과 양배추 그리고 울릉도에서 온 봄나물인 전호나물을 꺼내고, 그것들을 찍어 먹을 엄마표 특제쌈장을 작은 그릇에 담고, 천혜향 반쪽을 한 알씩 쪼개고, 아몬드우유를 따르 푸짐한 한상차림이 되었다.
작심한달이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는 오늘 나는 기록서랍을 하나 더 장만하고야 말았다. 매일 30분씩 산책하고, 느릿느릿 걷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하는 "오늘의 산보". 아침밥 든든히 챙겨 먹고 느릿느릿 걸으며 봄의 기운을 맘껏 누리는 3월이 되었으면.(22.03.14)
어제는 아침 일찍 눈이 뜨였고, 일찍 출근했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허둥댔고, 눈코 뜰 새 없던 하루가 지났고, 종내 집에 오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일찍 자리에 누웠다. 의욕은 저만치 높은 곳에 있는데 내가 가진 체력은 딱 내 키만큼이었다. 오늘도 할 일은 많지만 어제보단 조금 더 여유를 부려보기로 마음먹기의 시작은.
남은 치킨 살을 발라내어 데운 흰쌀밥 위에 올리고 마요네즈를 뿌리고 김가루를 넣어 치킨마요덥밥을 만들고, 역시 남은 감자튀김을 데우고, 또 역시 남은 치킨무와 김치와 볶음김치를 꺼내고, 천혜향 반쪽을 한 알씩 떼내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담았다.
자전거 타고 달리면 출근길의 찬공기가 온몸에 스미고, 지하철에 서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그렇게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 위에 있고. 나는 오늘도 내가 가진 만큼의 힘으로 뚜벅뚜벅 오늘을 걸어보기로.(22.03.15)
격리 해제 이후로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기침도 많이 줄고, 이틀 연달아 운동도 하는 이번 주는 제대로 건강모드. 집에 오면 씻고 대충 챙겨 먹고 바로 쓰러지고 말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버겁지 않은 오늘도.
조금 남은 흰쌀밥과 전주비빔밥 주먹밥을 반반 담고, 참치통조림 하나 따고, 볶음김치를 꺼내고, 케일과 양배추와 전호나물을 그릇에 가득 눌러 담고, 역시 엄마표 특제쌈장도 덜고, 바나나 하나를 먹기 좋게 썰고, 아몬드우유를 유리컵에 따른다.
점점 밝아지는 출근길의 아침에는 하늘과 구름이 잘 보이고, 앙상한 나무의 가지 끝마다 망울이 맺혀 있고. 느릿느릿 걸으며 그것들을 찬찬히 보고 봄의 기운을 한껏 들이마시는 오늘은 벌써 수요일.(22.03.16)
집정리 좀 해보겠다고 계획만 한가득 세워 놓고, 십 분의 일 끝내니 벌써 열두 시. 결국 어제의 내가 토스한 일을 고스란히 받은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그 일을 결단코 넘기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었으나, 종내 조금 늦게 일어난 아침에도.
우동면을 끓는 물에 삶아 건져내고, 면 위에 비프카레를 붓고, 참치와 올리브와 김치를 꺼내고, 블루베리 그릭요거트와 천혜향과 아몬드우유를 호다닥 준비하면 오늘의 아침밥 완성.
어제는 주문한 바지걸이가 도착했다. 집게 형태는 무거운 바지를 감당 못하고, 옷걸이는 축축 늘어져 고민이었는데 바지걸이로 깔끔하게 정리 완료. 남은 십 분의 구를 한 번에 다 끝내겠다는 욕심 내려놓고, 어제의 성취감에 힘입어 오늘도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22.03.17)
어제는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밀린 집안일을 끝내 보고자 팔을 걷어붙였다. 아니, 다 못해도 괜찮으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하고. 말라죽은 방울토마토를 눈물로 보내주고, 먼지 쌓인 바닥을 닦고 또 닦고, 여기저기 흩어진 책들을 책장으로 돌려보내고, 오랜만에 요리라는 걸 해보았다. 맛이 어떤지 테스트해보는 오늘의 아침은.
지난밤 안친 밥 위에 푹 끓인 카레를 붓고, 쯔유와 무로 우린 국물을 그릇에 담아내고, 볶음김치와 김치와 멸치볶음을 꺼내고, 천혜향 반쪽과 아몬드우유를 준비했다.
맛은 나쁘지 않은데 생각보다 묽은 카레국이 되었고, 어찌해야 적당한 점도에 맛도 좋은 카레로 거듭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출근길의 미션. 레토르트식품과 밀키트에 길들여진 나는 당근과 감자와 양파를 썰고, 고형카레를 물에 개는 일조차 복잡하고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우러나오는 진심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맛없으면 진심이 무슨 소용, 막 이러고.(22.03.18)
작심한달이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는 오늘
나는 기록서랍을 하나 더
장만하고야 말았다.
글, 사진 / 나무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