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이라구요?”
여관지기가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일반적으로 골렘이라 함은 마법사들이 단순한 노역을 도울 요량으로 만들어낸 마법 도구를 뜻했다. 석재를 인간형으로 다듬어서 마치 사람처럼 보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단순한 동작밖에 할 수 없는 ‘도구’. 그런데 그게 현 시대 최강의 검사를 검술로 압도한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여관지기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골렘’이라는 것은 단순한 심부름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소. 나도 골렘이란 단순하고 우둔한 것밖에는 보지 못했지. 그렇게 정교한 움직임을 하는 골렘은 난생 처음이었소. 다른 골렘들처럼 감정 없고, 필요한 동작만 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으나, 그 녀석이 하는 동작 하나하나는 어떤 검술의 고수도 당해낼 수 없는 간결함과 정교함이 있었지.”
골렘을 떠올리는 카맥의 표정에서는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실 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외치려던 모험가들도 그의 표정을 보고서는 그가 장난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 골렘이 사람을 능가하는 움직임을 낼 수 있다니,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대마법사여야지 그런 피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어서 카맥은 말했다.
“분명 생명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소. 애초에 몸이 석재로 이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체형과 똑같았을 뿐, 맥박도 없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주저함이나 당혹감도 느끼지 않았지. 그리고 모든 계산은 정확했고 빨랐소. 마치 이묵의 검이 생각나더군.”
구경꾼들은 일제히 탄식을 내뱉었다. “이묵이라니!”, “돌부처 이묵?”, “골렘 따위가 이묵의 검술을 흉내냈다고!” 등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들렸다.
선대 검성인 이묵. 그는 가장 위대한 검객이라고 불리던 자였다. 감정의 동요도 없고 말수도 적고, 심지어 검술조차도 너무나도 간결하고 정확했다. 사람이 검술을 하는 게 아니라, 검이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그의 검술은 정수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그를 꺾은 카맥조차도 자신은 ‘그저 내려올 때가 된 이를 배웅해드렸을 뿐, 전성기였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이라고 할 정도로….
선대 검성 이묵은 '돌부처'라는 별명답게 감정의 동요 없이 완벽한 검술을 구사하는 자였다.
이묵과의 싸움을 겪은 상대들은 ‘마치 차가운 늪에 천천히 잠기는 듯했다.’고 회고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검투는 단 몇 합만에 끝나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그저 누가 먼저 머리, 허리, 손목을 노리느냐의 싸움에 가까웠다. 상대방을 먼저 무력화시키기만 하면 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묵은 언제나 급소가 아닌 주변부부터 정성들여 깎아나갔다. 그래서 대부분의 검사들은 이묵과의 대전에서 자신이 지고있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자그마한 생채기 따윈 어떠한 검투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법인지라, 그의 검이 애먼곳을 찔렀다는 생각에 방심하는 검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묵은 별명인 '돌부처'와 같은 침착함으로 난전 중에도 모든 수를 계산해내는 사람이었고, 당장에 이기지는 않지만, 절대로 지지 않는 수를 두는 이였다.
처음에는 어깨. 두번 째는 발목, 세번 째는 눈두덩이. 뭔가 자꾸 아쉽게 빗나가는 느낌이 드는 이 검격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쌓이고, 점점 상대 검사의 기동성을 앗아갔다. 눈 두덩이의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나서 시야를 가리고, 어깨의 반응이 약간씩 느려지며, 발목이 마비되어 순발력이 줄어든다. 이묵은 모든 무기를 잃어버린 상대에게 그저 검 끝을 갖다대며, 어떠한 허세도 협박도 없이 정중하게 항복을 받아내곤 했다.
그의 기품있으면서도 고도로 계산된 검술에 본인이 지는지도 모르면서 패배한 많은 이들은, 치를 떨면서도 동시에 이묵이라는 사람 자체를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런 난공불락의 검술을 깨뜨릴 수 있는 자가 나타났으니, 그 사람이 바로 젊은 카맥이었다.
가장 견고한 방패를 뚫을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창. 카맥은 기민하면서도 공격적이었고, 누구와의 싸움도 몇 합 이상 이어가질 않았다. 그는 이묵의 정교한 계산마저 뛰어넘는 변수의 검을 지니고 있었다.
카맥의 검풍은 이묵의 철벽방어를 훌륭하게 뚫어내었다. 계산을 아무리 정확하게 하더라도 결국 검격을 맞대는 것은 신체와 신체의 싸움이었다. 단련된 신체능력과 상식을 뛰어넘는 기민함은 이묵이 계산한 범주를 뛰어넘었고, 카맥의 검은 이묵의 조여오는 공격을 단 한번의 합으로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승리 후, 기세가 한껏 오른 카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뱉을 정도로 기고만장해졌다.
"자신이 없소. 질 자신이."
하지만 이묵을 꺾은 후, 그의 가슴에는 거대한 공허가 자리잡게 되었다.
더 이상 넘을 산이 없어진 그에게는 목적을 잃은 경주마처럼 황망함만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샌가 주방에서 음식들이 모두 조리되었다는 부름이 들려왔다. 여관지기는 양해를 구하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방에서 샐러맨더로 속을 익힌 새끼돼지 통구이와 그리핀의 알로 만든 오믈렛, 그 외 다양한 곁들임 요리들이 나왔다.
여관지기는 요리를 서빙하면서 놀라움에 ‘오’하는 단말마를 내었다. 어느새 많은 손님들이 바테이블에 둥그렇게 모여앉다시피 자리를 하고 있던 것이다. 어느순간 이 장소는 오로지 카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연회장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카맥은 청중들의 기대를 잠시 외면했다. 그의 몸은 생존을 위해 영양을 갈구하고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기나긴 이야기를 위해서라도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그가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먹어갈 무렵, 정말 그 마른 체구의 사람이 이렇게 먹을 수 있을까 신기해하던차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맞다. 이묵을 이긴 후의 공허함을 말했지.”
그는 남아있는 하늘새우 튀김을 손에 든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검술은 혼자 하는 춤이 아니오. 상대가 있어야 의미가 있지. 하지만 더 이상 나와 춤출 상대가 없었소.”
그는 튀김을 그레이비 소스에 찍어 먹고, 손으로 대충 입을 닦고는 꿀주를 한모금 마신 뒤, 이젠 엿듣기를 숨길 생각도 없는 청중들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던전으로 향했지. 인간이 아닌 것들 사이에서라면, 혹시 다시 그 전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카맥이 말을 이었다.
"침묵한 사유의 갱도. 들어보셨소?"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사라진 마법도시 에펠리움의 마법학원이 있던 곳. 한때 가장 진보한 마법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마법 폭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고 던전화 된 곳이었다.
“재물이 목적인 모험가들에게는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였소.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나의 발길을 이끌었지. 나는 보물이 아닌, 내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순수한 위험 그 자체를 원했으니까..”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그리고 그 가장 깊은 곳에서... 그 골렘을 만난 거요.”
골렘과의 대면을 설명하려던 카맥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똑같았소. 이묵의 첫 수와 각도, 타이밍, 심지어 그 담담함까지. 하지만 뭔가 달랐지. 더 느렸지만, 더 막기 힘들었소. 그 말인즉슨, 이묵의 검보다도 더욱 더 정제되고 효율적인 움직임이었다는 거요.”
그의 목소리에 쓴웃음이 섞였다.
"솔직히 말하면... 모욕적이었소. 내 평생을 바쳐 겨우 넘어선 이묵의 검술을, 한낱 돌덩어리가 더 완벽하게 구사한다니. 검의 극의를 추구해온 나보다, 고대 마법사가 만든 피조물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카맥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분통이 터지면서도, 동시에..."
카맥이 남은 꿀주를 들이켰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소. 이묵과의 대결 이후 처음으로."
그의 눈빛이 타올랐다.
“나는 그 완벽한 절망의 끝에서, 잊고 있던 감각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소.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뛰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며 오직 나와 저 돌덩어리의 검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귀를 채웠지. 이것은… 그래, 살아있다는 증거였소."
카맥은 광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정녕 행복해서 미치겠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이묵과의 대결 이후 처음으로, 나는 다시 검을 쥔 학생이 되었던 거요.”
일곱 번째 합.
카맥은 깨달았다. 이묵이 가지고 있던 ‘인간성’이라는 결함. 골렘에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손 끝의 떨림, 근육의 긴장과 호흡의 흐트러짐,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기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주저함.
그렇기에 골렘의 공격은 이묵보다 느림에도 불구하고 더 예리하고 정확했다.
스물 두 번째 합.
그의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어깨, 허벅지, 눈두덩이. 치명상은 아니지만 조금씩 상대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상처들. 종래에는 이묵 본인의 승리로 이어지던 그 거대한 설계도.
아마 카맥이 이묵을 상대해보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유리하다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미묘하게 차이나서 형세파악조차 안 되는 딱 반 보 앞선 싸움이었기에.
서른세 번째 합.
카맥은 깨달았다. 자신이 결코 살아나갈 길이 없는 완벽한 사활문제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모든 활로는 막혔고, 남은 것은 오직 돌을 거두는 수순뿐이었다. 그는 확신했다.
‘나는 정확히 78번째 합에서 죽을 것이다.’
골렘은 이미 모든 계산을 끝냈다.
"이묵보다 더 이묵다운 존재. 인간을 초월한 완벽함. 그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소."
카맥이 쓴웃음을 지었다.
"돌덩어리에게 지는 것이 치욕이라고? 맞는 말이오. 허나, 내가 그 순간 행복했고 환희에 미쳐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