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종말의 눈이 내리던 날

by 진하린


눈이 내린다.
아니, 어쩌면 눈이 아닐 수도 있다.


시야를 가득 채우며 천천히 부유하는 저 하얀 입자들은 겨울의 한기 대신 기묘한 온기를 품고 있다. 하늘의 끝자락에서 나타나 느긋하게 내려앉는 저것이 나의 살갗 위에서 녹아내리지 않고 그저 '쌓여만' 가는 것을 볼 때, 나는 이것을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다만 우리 세상에 아주 깊고 긴 겨울이 찾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을 뒤덮은 구름을 찢어발기며 현현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던 날, 택시 창밖으로 올려다본 하늘도 오늘처럼 어둑어둑하고 침침했다. 어머니의 관이 흙구덩이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던 그때처럼, 하늘은 무표정한 낯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찢겨진 구름 틈으로 거대한 형상을 드러내자,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빛으로 충만해졌다. 마치 신이 강림하듯,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렘브란트 광선이 거대한 빛의 커튼이 되어, 무채색으로 잠들어 있던 대지를 찬란하게 수놓았다. 그것은 숨이 멎을 만큼 낭만적이고 성스러운 풍경이었다. '그것'의 발밑에 개미굴처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짓이겨지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끊기기 직전의 뉴스 화면 속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깨를 짓누르기라도 한 듯 일제히 무릎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신화나 경전 속 활자에서나 튀어나왔음직한 비현실적인 크기, 대기의 흐름조차 비틀어버리는 압도적인 중량감. 무엇보다 천지를 찢어발길 듯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그들의 고동 소리는, 마치 세상의 심장이 밖으로 끄집어내져 뛰는 듯이 공명했다. 스마트폰의 조악한 스피커를 타고 전해지는 그 울림조차 내 오장육부를 움찔하게 만들었으니, 현장에 있던 이들은 오죽했을까.

평생 보이지 않는 신을 비웃으며 살아온 골수 무신론자들조차 이성이 판단하기 전에 세포가 먼저 굴복하는 느낌이 들었겠지.


그것의 등장 이후로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이름의 늪에 빠져 미쳐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세상이 뒤집어지기에는 너무 짧고, 미쳐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종말론자들은 선거철의 정치인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온갖 고전 문헌과 예언서를 들이밀며, 우리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축복하듯 선포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마치 태초부터 세상이 망하기만을 기다려온 광신도들처럼 기묘하게 번들거렸는데, 공포와 희열, 그 두가지 감정의 칵테일에 거나하게 취해버린 모습은 흡사 사랑에 빠진 소년들 같기도 했다.

공포가 안겨주는 현기증을 운명적인 사랑의 떨림으로 오인한다는 흔들다리 효과가 이런 것일까. 그들은 종말이라는 흔들다리 위에서 널뛰기하며, 파멸이 주는 아드레날린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반면, 신앙심도 없고 미치지도 못한 이들은 '그것'들에게 저항하려 했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혹은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각종 최신 무기를 동원하여 '그것'들에게 포격을 퍼부었다. 화염과 굉음이 하늘을 뒤덮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그 존재들에게 인류의 화력은 그저 성가신 모기 떼의 날갯짓에 불과했고 그들의 파멸적인 ‘걸음’을 단 한순간도 늦출 수 없었다.

인간의 적의와는 반대로 그것들은 인류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시늉조차 않았다. 이미 거대한 발걸음 아래 짓이겨져 붉은 얼룩이 된 이들에게는 차마 미안해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지만, 그것들은 그저 전진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염없이, 묵묵히, 정해진 항로를 따라 흐르듯 나아갈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이, 그저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자연 현상처럼 맹목적으로 발을 옮겼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그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인간은 개미보다 작은 미물이었고, 그들의 진로를 방해할 수도, 억울하다고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마치 우리가 걸을 때 발밑의 미생물을 신경 쓰지 않듯, 태풍이 악의를 가지고 집을 부수지 않듯. 그 과정에서 작고 미약한 인간들은 그저 태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스러져 갔을 뿐이다.

그것들의 '자연재해적 무관심’이 무신론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패배감보다 더 짙은 무력감을 심어주었고, 이후로 어느 누구도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이 등장한지 6일차.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들의 행선지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이 보잘것없는 마을이라는 사실이다. 강대국도, 대도시도, 심지어 관광지도 아닌, 지도 위에서 지워져도 아무도 모를 한적한 시골. 지질학자들이 경고한 화산 대폭발의 진원지도 아니었고,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었다. 세계의 석학들도, 미치광이 예언자들도 미처 짐작하지 못한 평범함의 극치. 그 평범함이 종말의 종착지라는 사실은 그 어떠한 합리적 추론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여섯 기의 '그것'이 우중충한 하늘을 뚫고 내려와, 이 작은 마을을 포위하듯 둥글게 둘러섰다. 두꺼운 먹구름을 찢어발기며 쏟아지는 태양 빛이 그들의 거대한 어깨 위로 성스러운 후광처럼 부서져 내렸다. 비스듬히 떨어지는 빛의 커튼을 배경으로 선 여섯 개의 기둥.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입, 혹은 배출구로 보이는 구멍을 열었다.



그리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 '눈' 같은 것을.


옆에 서 있는 이웃집 아이의 뺨 위로 솜털이 곤두서 있었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렘브란트 광선이 그 잔털 하나하나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공포에 질린 어린 얼굴을 역설적으로 성화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방사능 낙진인지, 그들의 포자인지, 아니면 세상을 지우기 위한 신의 지우개 가루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하얗고, 느릿하고, 우아하게 떨어져 내리는 저것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지 며칠만에 세상이 끝나가고 있다. 그리고 웃기게도, 나는 이 현실이 반가웠다.

어머니를 잃고 난 뒤, 나는 이미 끝나버린 세상에서 억지로 숨만 쉬고 있었다. 다음 달 월세를 어떻게 낼지, 장례비 대출은 어떻게 갚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머리가 탁하게 굳어버렸다. 뇌 대신에 비곗덩어리가 자리한 것처럼. 그런데 세상이 먼저 끝나버린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면?

내 입장에서는 도리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솜털이 곤두선 저 아이와 달리, 내 살갗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다. 손끝이 차가운지 따뜻한지도,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알아챌 정도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내 안의 무언가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이제 그것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든 말든 상관없어졌다.



어머니가 떠난 세상 위로, 작별의 눈이 내리고 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요하게.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기억 소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