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꽤나 자주 상상하게 되었다. 머리를 깎은 내 모습.
우리 절은 워낙 자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수행처라 때때마다 많은 스님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고, 그러다 보니 여자 스님인 비구니 스님들도 자주 뵙게 되었다. 오래 머물다 가시는 분들과는 꽤 친밀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듣게 되는 한 마디. “보살님도 머리 깎으면 참 잘할 것 같은데...”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언젠가부터 마냥 웃어넘기는 마음은 아니게 되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스님인 사람이 어디 있나, 다들 나처럼 살다가 나처럼 인연 되어 출가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책방에서 스님들의 출가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꺼내와 밤새 읽어보기도 했다. 고민을 하는 중에도 내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사실이 정말 웃기기도 했고, 지금 열심히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들에게 실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나보다 오랜 시간 절에서 일하고 있는 재무 보살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도 있다. 마치 나는 아무 관심도 없지만 자꾸 비구니 스님들이 권한다는 식으로. 그러자 보살님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결정은 스스로 하는 것이겠지만, 당신은 절대 말리고 싶다고 했다. 특히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비구니 스님이 되는 것은 나를 아끼기에 꼭 막고 싶다고 했다.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으시고 오랜 세월 절에서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고만 했을 뿐.
나와 친해진 한 스님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만일 당신이 상좌(불교에서 제자를 이르는 말)를 받는다면 그가 속세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연인들에게 한껏 사랑을 받았고, 공부도 양껏 해보았고, 놀기도, 즐기기도, 원하는 만큼 해본 사람만을 받을 것이라고.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아쉬울 것 없는 잘난 사람을 상좌 삼고 싶다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하는 말씀을 들어보니 속세 삶에서 누군가 미워서, 무언가를 하지 못해서 출가를 결심할게 된다면 그건 어긋난 출발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주지스님은 이런 내 맘을 아셨던 건지 더 강한 말로 경종을 울려주시기도 했다. 공부하고 수행하는 건 꼭 중이 되어 중 놀이를 해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있는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항상 깨어 있는 것이 더욱 제대로 된 공부라고.
내가 만약 지금 출가를 한다면 그것은 도피의 성질이 강한 것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정말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한다면 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커서라기보다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라는 이유가 더 클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 얻게 되는 수행자라는 나의 신분이 나를 더 단단히 만들어주기보다는 나의 약점을 보호하는 가짜 방패가 될 것 같았다.